캄캄해진 저녁시간 우리 네 식구는 낯선 동네를 배회하고 있다. 딱히 여행지도 아닌 것이 동네도 생소하고 괜히 우중충한 느낌이다. 멋모르는 이방인처럼 낯선 지역을 두리번 거린다.
"딸! 뭐 먹고 싶어?"
"음... 저기 갈까요? 갈빗집?"
가깝게 낯익은 냄새가 나는 곳을 돌아보니 갈빗집이 보인다.
"그래! 중요한 날 앞두고는 고기지, 무조건!"
그렇게 네 식구는 낯설지만 괜히 친근한 가게에 이끌려 들어간다.
치이이익~
"맛있게 구워지네~ 자 먹어봐, 기가 막힌다!"
노련한 솜씨로 고기를 굽던 문은 내 앞접시에 먹음직스러운 고기를 올려준다.
"오~ 맛있다!! 아빠! 여기 잘 왔네요"
"많이 먹어둬~ 내일 하루 종일 실기에 면접까지 보려면 힘들 텐데. 걱정 말고!"
그렇다. 내일은 나의 면접날이다. 그런데 왜 우린 이리도 낯선 동네에 있는가.
가고 싶은 한 기업에 서류가 통과가 되어 면접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면접이 서울 본사가 아닌, 경기 남부 쪽의 연구개발원 건물에서 진행된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거리도 있는 데다가 직무가 디자인이라 면접이 하루 종일 예정되어 있었다. 이른 오전 디자인 실기부터 시작해 점심을 먹고 오후 면접까지 진행되는 터라 당일에 가기엔 여간 부담되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딸의 고민을 들은 문이 제안을 했다. 전날 가족들 모두 함께 그 근처에 숙소를 잡아 잠을 자고 아침에 데려다주는 게 어떻겠냐고 말이다. 누구도 거절의 의사가 없었고 우리 넷(문과 현, 동생과 나)은 똘똘 뭉치기로 했다. 딸 면접에 온 가족이 출동이라니. 좀 웃기지만 그러한 연유로 우리 네 식구는 생소하고 낯선 동네에서 고기를 먹고 있는 것이다.
벌써 몇 번째의 서류이고 몇 번째의 면접인지.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살이에 지칠 대로 지쳤지만, 든든한 가족들이 있음에 감사했고 또 한편으로는 부담도됐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떨어지면 어쩌지, 잘해야 할 텐데, 이번엔 꼭 붙었으면 좋겠다는 온갖 걱정과 기대로 뒤섞인 생각의 틈으로 '그러니 잘해보자'라는 용기를 어렵사리 피워냈다.
그리고 다음날, 간단히 아침을 먹고 가족들의 격려와 응원 속에 면접장으로 갔다. 긴장감으로 실기를 어떻게 봤는지도 모르겠다.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엉망인 실기시간을 보내고 구내식당에서 넘어가지도 않는 점심을 꾸역꾸역 먹었다. 그리고 다가온 면접시간. 당당히 잘했으면 좋으련만 내 생에 정말 최악의 면접을 경험했다. 그 기업의 디자인인턴을 진행 중인 세상 여유로운 지원자를 비롯해 해외 유학파, 외국대학 출신 등 쟁쟁한 지원자들의 기에 눌려 더듬대고 위축 댔던 압박면접이었다. 그간의 면접 중 가장 이방인스럽고 볼품없는 내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해야 했고 쉴 틈 없이 모든 수고로움을 견뎌내야만 했다.
모든 면접이 끝나고 몸과 정신을 모두 소진한 상태로 축 처져 버렸다. 그냥 어디론가 도망쳐 내달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정문을 통과하자마자 날 반기며 여전히 안아주는 내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휴~ 고생 많았어~"
문과 현의 토닥임에 너무 미안해 눈물이 쏟아질 뻔했지만 울 수는 없었다. 그들의 작은 기대감의 불꽃을 서러운 눈물로 꺼버릴 순 없었다. 아무 말 없이 내달리는 고속도로에서 까마득하고 알 수 없는 내 미래를 숨 가쁘게 헤치고 또 헤쳐보며 좌절했다.
결국 내 예상대로 그 기업에 합격할 수 없었다. 한참 뒤에 원하는 다른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그날을 한 번씩 떠올리면 여지없이 눈물이 난다.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가족들의 응원 속에 결국에는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 멋지게 입사하는 순탄한 결과가 아니어서 괜히 아쉽다. 또 문과 현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때 입사했더라면 문과 현이 얼마나 기뻐했을까라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몇 번이고 연출하고 상상해 보며 아쉬워진다. 생각해 보면 나는 항상 목표한 것들을 쉽게 얻어내지를 못했다. 운에 기대기보다는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야 해내는 그런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는 늘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늘 해냈다. 어쩌면 이런 나의 불운은 결국 행운이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여 얻은 것들에 대한 대가를 경시하지 않게 되었고 내 삶에 주어진 것들에 대해 누구보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온 가족이 면접을 위해 출동했던 그날 역시 오래도록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감사로 자리 잡아 내 삶의 동력이 되고 있다.
"그날 기억나지? 우리 다 같이 나 면접 볼 그 회사 동네에서 전날 고기도 먹고 잠도 자고~"
"그랬지, 진짜 잊지 못할 추억이다"
그날이 벌써 열다섯 해 조금 안되게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생생히 추억한다. 고된 면접의 기억만 남았다면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겠지만, 함께 미래를 그리고 용기로 어깨동무해 준 가족들의 따스함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기에 그날을 계속 꺼내보게 된다. 그러고 보니 감사한 날들은 나 혼자서 만들어낸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가족의 존재 자체로부터 온 것이었다. 시시때때로 지칠 때 언제든 다시 일으켜주고 팔 벌려 안아줄 가족이 있었기에 힘을 내고 더 잘할 수 있었다. 한 번씩 꺼내보는 그런 추억들은 여전히 나의 큰 힘이고 감사다. 오늘도 마음속 감사를 더 깊게 새겨 넣으며 그날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