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쓰려고 하지 말고
대학 시절, 수업 중에 교수님 말씀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필기에 매우 열중했던 기억이 있다. 어느 날, 교수님이 나를 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꾸 쓰려고 하지 말고, 그 시간에 하나라도 더 이해하려고 해.
기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때는 그 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 교수님은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전공 과목 중에서도 어려운 과목을 가르치셨고, 필기 없이는 좋은 성적을 받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씀이 계속 떠올랐다. 그것이 단순히 수업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교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목표나 결과에만 집착하다 보면 중요한 순간들을 놓치기 쉽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회사에서 일할 때 성과에만 집중하다가, 과정에서 얻는 배움과 성장의 기회를 놓친 기억이 떠올랐다. 그뿐만 아니라, 회의나 강의 때 열심히 적어놓고는 나중에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안 되어 다른 이에게 다시 물어봤던 적도 있었다.
등산할 때도 정상 오르는 데만 집중하다가, 중간중간의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는 경우가 있었다.
무거운 DSLR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수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어떻게 잘 찍을지에만 몰두하다가 순간의 감정과 추억을 종종 잊어버리곤 했다. 글을 쓸 때도 표현에만 치중하다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잊어버린 적도 있었다.
그런 순간들을 겪으면서, 20년 전 교수님이 나에게 했던 이야기가 무겁게 다가왔다.
물론 기록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서 나는 기록이 우리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 경험 자체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표면적인 정보나 지식에 대한 '기록' 그 자체가 아니라, 기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혜’와 ‘통찰’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가 맞이하는 순간들을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기록의 가치도 더욱 빛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모든 행복과 성장은 산을 오르는 동안 일어난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한다.
(Everyone wants to live on top of the mountain, but all the happiness and growth occurs while you're climbing it.)
- Andy Roone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