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신곡 한글패치 ver 1.0
낮도 밤도 없는 곳. 단테 지음, 유영희 옮김
성서교재간행사. 1984. 296p. 3,000
"내 이름은 김 병연이다. 사람들은 김 삿갓이라고 해야 더 잘 알지. 하하하!"
"뭐, 김 삿갓? 아니 그럼 이조 말기의 유명한 방랑 시인 김 삿갓 말씀입니까?"
"I need money"란 문장이 있다. 'I = 나', 'need = 필요하다', 'money = 돈'으로 각각 등치 시켜 "나는 돈이 필요하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오늘이 마침 카드 결제일인 나도 돈이 필요하ㄷ.. 아, 아니다. 이렇게 간단한 문장은 어렵지 않게 번역할 수 있고, 그 의미도 완벽하게 통한다는 거다.
여기에 '내 통장을 털어간 건 빌어먹을 월세와 살인적인 물가다'는 말을 더해 한 문단을 만든다고 생각해보자. 번역은 한층 까다로워진다. 거기에 '빈곤한 삶의 시작'부터 '나는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를 더해 짠내 나는 이야기를 한 편 쓴다고 하면, 이를 번역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테다.
혹여 완벽에 가까운 번역을 한다 하더라도 작품의 의미까지 완벽하게 옮길 수는 없다. 언어를 옮기는 것만으로는 작품이 담고 있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온전히 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비둘기 사육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부리가 어떤지, 깃털은 무슨 색인지, 어떤 벌레를 좋아하는지 등 지루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에 지나치게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번역된 「종의 기원」을 읽는 우리들의 고개가 졸음을 참지 못하고 비둘기처럼 꾸꾸- 허공을 쪼게 만드는 대목이다.
허나 다윈이 비둘기 체험을 해보라며 비둘기 이야기를 넣었을 리는 없을 터. 그가 「종의 기원」을 비둘기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비둘기를 기르고 교배시키는 것이 다윈 시대에 가장 핫한 엔터테인먼트였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치자면 아이돌 이야기로 학술서적을 시작했다고 할까. 다윈 나름대로는 독자들의 흥미를 유도하기 위한 비책이었던 셈이다.
번역으로는 이와 같은 맥락을 온전히 담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해서 번역서를 읽을 때마다 불완전한 독서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오래된 고전은 어쩔 수 없이 그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고 생각하던 내 머리를 둔탁하게 내려친 작품이 있었으니...
1. 「낮도 밤도 없는 곳」이라는 제목부터 엄청난 초월 번역이다. 원작은 단테의 신곡(La divina commedia). 지옥에 떨어진 단테가 지옥과 연옥, 천국을 여행하고 돌아온다는 그 고전 신곡이 맞다. 무려 700년 전 작품의 이도 저도 아닌 제목을, 그것도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제목을 과감히 바꾼 유영희 선생께 찬사를.
2. "싫어하는 사람을 마음껏 고문할 수 있습니다. 어떤 방법을 택하겠습니까?"라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단테의 「신곡」을 앉은자리에서 다 읽으라고 하겠습니다!"라고 외치겠다. 「신곡」의 가치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어렵고 안 읽히기 때문이다. 게다가 3권짜리 책을 비유와 상징이 난무하는 산문시로 써놔서 읽으면 읽을수록 혼이 비정상이 되는 느낌이다. 그런 「신곡」을 소설로 각색했다. 그것도 재미있게.
3. 원작 「신곡」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지옥에 빠진 단테가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지옥과 연옥을 탈출하고, 천국에 있는 연인 베아트리체를 만난다는 것이다. 이 스토리가 유영희 선생의 놀라운 번역, 아니 한글패치를 거치자, 철수(.)가 방랑 시인 김삿갓(..)의 안내를 받아 천국에 계신 김옥순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이야기가 되었다.
4. 스크롤을 올려 표지를 보자. 김삿갓 왼쪽 아래에 강아지가 있다. 이름은 바둑이다. (당연히) 원작에는 없었으나, 초등학생 신분으로 지옥을 여행해야 하는 철수의 운명을 가혹하게 여긴 유영희 선생께서 길동무로 넣어주셨다. 그리고 다시 표지를 보자. 철수의 손에 스케치북이 들려 있다. 이는 단순히 초등학생 설정을 살리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중요한 장면 장면마다 철수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게 하고, 그 그림을 삽화로 넣음으로써 현장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놀라운 복선인 것이다(초등학생 그림 치고는 지나치게 그로테스크하지만).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산문시로 쓰인 원작과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 김삿갓이 중요 장면마다 시조를 짓는다는 설정으로 산문시 형식의 「신곡」을 그대로 인용하는 창조적인 전개를 해나가고 있다.
5. 그럼에도 옥에 티 하나는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단테의 「신곡」이 고전의 반열에 오르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이 작품이 중세 암흑기에서 르네상스로 나아가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는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길잡이로 등장하거나, 단테가 짝사랑했던 베아트리체를 천국에서 만난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허나 한글패치 후 김삿갓, 김옥순 선생님으로는... 르네상스는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이 사라져 버렸다. 원작의 핵심 메시지가 증발한 것. 더 아쉬운 건, 유영희 선생의 개인적 신념에 의해 그 빈자리를 되려 기독교 사상이 차지하고 있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