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중 작품에 대한 해석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짧은 고민 후 답안지에 ④를 썼다. 정답은 ②번이었다. 그는 다음 문제도, 그다음 문제도 틀리고야 말았다. 어이쿠. 문제를 푼 그뿐만 아니라 함께 있던 모든 이들이 당혹스러워했다.
2009년에 있었던 일이다. 문제를 푼 '그'는 최승호 시인. '함께 있던 이들'은 중앙일보 취재팀이었다. 최 시인 푼 '문제'는 2004년 서울시교육청 모의고사 언어영역 문제였다. 이들 모두가 '당혹스러워' 한 이유는 그 문제가 최 시인의 작품 <아마존 수족관>의 해석을 묻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시인이, 자기 시의 해석을 묻는 문제를, 틀리고야, 말았다.
'나도 생각하지 못한 정답이 어떻게 나오는지 정말 궁금하다. 내가 바보라서 모르는 건지...'
최 시인의 소고처럼 그가 바보라서 답을 못 맞혔을까? 그는 시를 오독해서 틀린 것인데 '자기 작품을 오독한다'는 게 성립할 수 있는 문장인가?
그럴 리가.
오독은 없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주류 해석과 그의 해석이 달랐을 뿐.
누구든 자기 생각과 경험에 따라 작품을 해석한다. 감동도 지루함도 각자 다른 부분에서 느끼기 마련이다. 모두가 다른 사람이니, 당연한 일이다. 해서, 모든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는 정독은 있을 수 없다. 모든 독서는 오독이다.
학교에서 지겹도록 맞는 것과 틀린 것을 찾았던 과정은 사고 연습에 그치는 것이지, 현실에 적용되지 않는다. 해석이 맞다 틀리다 옥신각신 할 필요 없다. 내가 그렇게 느꼈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니 나는, 오독의 두려움일랑 훨훨 날려버리고 마음껏 오독하겠다.
그 오독의 결과물을 남기겠다는 방대한 계획을 세웠다.
되도록 재미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첫 번째 희망이었고, 짧고 간결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두 번째였다.
'오독하지?'
고심 끝에 해경을 해ㅊ.. 아 아니, 고심 끝에 글을 해체하기로 했다. 오독(다섯 오)에 맞춰서 말이다. 간략하게 책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나의 오독을 다섯 가지로 남겨 오독을 채워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