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CCI May 09. 2023

사랑하는 조카들에게




산책하다 갑자기 영어공부 하는 조카들이 생각이 나서 집에 오자마자 급하게 손을 씻고 적어본다.


(남편이 어디가서 말하고 다니지 말라고 했지만... 햇살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음)


중학생 때 나는 '모 아니면 도' 인간형으로 등교시간이 극단적이었다. 대략 두 개의 트렌드를 오고 갔는데 새벽 6시에 등교하다가 또 어떨 땐 9:00시 수업시작 땡! 맞춰 아무렇지 않게 내 자리에 '사악-' 앉기도 했다.


둘 다 담을 넘어 다녔으나 월담을 즐긴 건 아니고 공교롭게도 내가 가고싶은 시간대에 정문이 열려있지 않았다. 뒤돌아보면 정상 등교 시간에 누군가 교문을 지키고 있는게 싫었던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아침이 정말 소중한 사람이기에 아침에 명찰을 잘 챙겼는지 용모가 단정한지 따위에 힘 쓰거나 검사받고싶지 않았다. 남편은 월요일에 학교를 잘 가지 않았다고 한다. 세상 모범생같은 남편도 적절히 금기를 깨며 살아온 것이 기특했다.


그래서 새벽 6시에 등교해서 뭘 하냐면 운동장을 뱅뱅 돌면서 걷는다. 부처님 오신 날 탑돌이도 아니고 운동장을 왜 그렇게 뱅뱅 돌았냐면 학교를 사랑해서. 담은 넘고 다녔을지언정 학교를 사랑했다. 뭔가를 배우는 신나는 공간인데 그 안에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들도 있고 친구들도 있는 것이 왠지 벅찼다. 나는 혼자 있는 걸 제일 좋아했지만 어울리는 것도 못지 않게 즐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 복이 있었다 (여기서 학교 복이란 인구대비 인격자 비율. 소위 좋은 학군이나 엘리티즘 아님).


하루는 운동장을 뱅뱅 돌다가 마음에 시원한 바람이 한줄기 들어왔는데


별안간 내가 한국사람이 아니라 그냥 사람임을 깨달았다. 내가 발 붙인 곳이 한국이 아니라 지구임이 느껴지면서 그간 한국어로 코딩된 세계에서 살았구나 싶었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보고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힌 나는 당장은 보러 갈 수가 없으니 여행 준비물 챙기듯 영어를 아무렇지 않게 시작했다.


그날 새벽에 얻어걸린 발심은 스무살이 될 때 까지 지속되었고, 공부할수록 영어처럼 토착화(creolization)가 광범위하게 일어난 언어를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는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원래 미국땅에서 살던 지혜로운자들에 이르기까지의 언어적 습성이 녹아있는 거대 유기체로 각기 다른 문화권의 인간이 동일한 현상에 어떤식으로 이름을 붙이는지 관찰하기 좋은 언어였다.


영어는 나를 학교 운동장 대신 지구를 뱅뱅 도는 삶으로 인도하더니 영어 쓰는 남편을 만나게 하고 영어 쓰는 나라에 살게 했다. 친정에서는 한국에 우리 딸내미처럼 희한한 여자를 좋아할 남자가 없는데 영어라도 해서 미리 시장을 넓혀놓길 잘 했다는 평이다. 영어는 내 프라이빗 제트가 되어 정식 공항이 없는 온갖 희한한 정신적 물리적 지점에 나를 데려다 주었다.




영어공부를 하는 일반적 방법론은 너무나 많고 나는 그런 걸 하나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했던 방식은 너무 이상했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상기설'에 가까웠다. 나는 영어를 이미 알고, 이미 내 일부라 생각했고 아는 걸 기억해내는 게임이라 확신했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몰라요~) 한가지 중요한 것은 방법론이 아니라 방향성이라는 것.


'영어해서 좋은 데 취직해서 보란듯이 성공해야지'하는 사람과 '영어 배워서 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미안하지만 후자는 샘솟는 지혜와 영감의 축복을 피할 길이 없다. 전자의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어디서 힘을 끌어다 쓰느냐의 문제고 의식폭의 문제다. 둘 다 목적지에 갈 수는 있지만 전자는 애를 써서 '열심히' 가는 길이고 후자는 호연지기가 이끄는 자연스런 길.


자신이 인간임을 인지하고 범우주적 의도를 품고 공부하는 사람에겐 영어 아니라 뭐든 한없이 내 아래의 것으로 보이기에 그것들은 저항없이 쉽게 흡수된다. 최근에 베니토랑 얘기하다가 이런 비슷한 류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도 공부를 이런식으로 한다고 고백했다. 뒤돌아보면 공부량은 엄청났지만 애를 쓴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그니까 사랑하는 조카들아,


영어해서 좋은 데 취직하는 것도 내 집 마련의 꿈도 좋지만 

니가 인간이라는 걸 먼저 느껴봐. 알았지? 사랑해!




남편이 퇴근 길에 가져다 준 음료수. 현란한 문구가 왠지 무섭다. 이거 먹고 명상하면 극락 다녀오는거 아닌가 싶은. 일단 먹어보고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다.



작가의 이전글 Since 198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