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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Sep 14. 2023

흉터를 대하는 자세




책상에 앉아있다가 아무 생각 없이 팔을 쳐다볼 때가 있다. 오른팔 안쪽에 흉터가 있는데, 생김새로 따지자면 어릴 적 먹던 꽃게랑 과자의 몸통 부분을 닮았고 크기도 딱 그 크기에다 좌우 대칭도 절묘하다.


이 흉터는 일곱 살 때 생겼다. 아주 가끔, 왜 제거 수술을 하지 않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이 시어머니. 자신은 목과 어깨 사이에 작은 흉터가 하나 있어서 평생 가리고 사셨다고 한다.


"어머님, 여름인데 목이 그렇게 덮이면 답답해요. 이런 거 시원하고 예쁘지 않아요?"


"어, 예쁘긴 한데... 나는 여기 흉터가 있어서... 사람들 보기 그럴까 봐... 봐봐, 흉하지?"


어머님께서 내게 보여준 흉터는 작았고 흉하지 않았다.


"예에...?! 어머님, 하나도 안 그래요! 그냥 편하게 어머님 맘대로 예쁜 옷 입고 사세요."


그제야 나는 어머님이 왜 우리 며느리는 팔에 있는 흉터를 지우지도 않고 매번 공공연히 드러나 보이는 옷을 아무렇지 않게 입고 돌아다니는 것이 의아한지를 알게 되었다.


어머님 말씀을 듣고 보니 내가 주변사람들 눈을 너무 고려를 안 했나 싶을 지경이었다. 분명 어머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열에 서넛은 되었을 텐데...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예닐곱이었을지도.




어머님을 통해서 나는 내 흉터에 대해 그 어떤 생각도 붙이지 않은 채 살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저 가끔 그날의 신체적 통증이 떠오를 뿐. 대상포진으로 인한 일주일 정도의 고통이, 피부 밑에서 수 만개의 바늘이 쉬지 않고 찔러대던 그 느낌이 팔을 볼 때면 가끔 상기될 뿐이었다.


통증 역치가 낮은 예민한 어린이였던 나는 그때 잠시나마 지옥을 경험했고, 이따금 그날의 흔적을 바라보며 신체에 아무런 고통이 없는 상태가 얼마나 기념할 일인지 알게 되었다.


흉터 얘기를 하시며 수치심과 열등감, 그리고 배려심이 한데 섞여 자기도 이게 무슨 감정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계시던 어머님. 아무도 들고 다니라 한 적 없는 그 짐을 평생 지고 사신 건 아닌가 마음 한켠이 시큰했다. 매사 당당하고 자기주장 확실한 분이 자기 흉터에 대해서는 또 그런 자세를 취하시는 모습이 어딘가 짠했다.


남편은 몸에 자잘한 흉터가 많은데, 이를 활동적 라이프스타일을 지닌 남성의 훈장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런 뉘앙스의 발언을 서슴없이 하기도 하고, 가끔은 어떤 흉터에 관한 무용담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때마다 그를 향한 나의 호감도가 떨어지긴 했지만 (남성성 짙은 남성을 좋아하지만 스스로 그렇다고 생각하는 부류를 싫어하는 편) 흉터를 대하는 자세가 엄마를 닮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엊그제 친구들이랑 잔디밭에서 놀다가 벌에 쏘였다. 오른쪽 발목에 누가 주사를 놓는 느낌이 나서 쳐다보니 새카만 침이 박혀있었다. 나는 섬세한 손길로 아무렇지 않게 침을 제거하고 갈 길을 갔다. 벌에 쏘일 일이 많은 라이프스타일을 지닌 내겐 익숙한 동작이지만 친구들은 벌에 쏘이고 호들갑 떨지 않는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멀쩡하다가 이틀이 지나자 붓기 시작하고 미친 듯 가렵다. 오늘 아침이 최고조였다. 보통 아침에 눈 뜨자마자 기분이 좋은 편인데 가려움 때문에 불쾌했다. 통통하게 부은 발목을 적당히 거친 800수 이집트 면 침대시트에 벅벅 비비자 시원함과 한층 더 강화된 가려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비명을 질러야 해소될 것 같은 가려움이었다.


이틀 전 벌에 쏘이기 전의 내 발목이 너무 그립다. 고마운 줄도 모르고 충분히 기념하지 않았다.


발목에 벌 쏘이지 않은 세상 모든 이들이 부러운 아침.




벌 쏘이기 전 산책길에 본 것들. 발목에 붓기 빠질 때 까지 걷지 않기로 한다. 선인장 꽃, 열매, 새 잎, 다양한 하늘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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