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이곳에 뭔가 끄적여 놓으면 재밌게 봐주시는 분들이 참 고맙다. 내 글은 읽는 이를 배려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그저 쓰는 게 재밌는 순간에만 쓰기 때문에 어떠한 고뇌도 녹아있지 않다. 한 없이 나풀거리는 문장들을 예삐 봐주시는 분들로부터 얼마나 큰 힘을 받는지.
그래서 나는 이 매거진을 통해 나를 만든 것들에 대해 돌아보고 싶어졌다. 내가 나를 잘 아는 상태로 존재할수록 빚을 갚는 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스스로에 대한 앎이 깊은 사람은 자신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깊기에 타자도 자연히 그런 시선으로 본다. 주변에 멋지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것 같았다.
최초의 취미
부모님께서 항상 바빴다. 홀로 있는 날이 많았지만 그들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았기에 문제 되지 않았다. 네다섯 살 무렵 내 인생 최초의 취미가 생겼는데, 뒤돌아보면 이 취미는 내가 지금 하는 모든 선禪스러운 것들의 기반이 되었다.
기찻길이 있는 동네에 살았을 때 벽지가 물결 땡땡이 무늬였다. 눈에 힘을 풀고 멍하니 벽지를 바라보다 보면 내 심상이 벽지에 도드라졌다. 시시각각 변하는 무늬를 들여다보는 일이 즐거웠고, 마음먹을 때마다 할 수 있었기에 혼자 있어도 괜찮았다.
어린아이가 혼자 벽지를 보고 노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불쌍해 보일 수도 있지만 본인은 그렇지 않았다. 미세 땡땡이가 물결치는 그 벽지는 정말 좋은 친구였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돌돌 말아 들고 다닐 수 있었기에 심심할 때마다 펼쳐보았다. 밤비 내린 아스팔트의 반짝임, 반복해서 몰아치는 파도, 아무도 없는 학교 운동장, 차창으로 스쳐 지나가는 가로수, 졸졸 흐르는 시냇물, 다 그 땡땡이 벽지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각성 상태였다. 이 상태에서 나는 운동장을 걷고 영어공부도 하고, 글씨도 쓰고, 여행도 했다. 의도치 않게 선정禪定적 삶으로 나를 이끈 땡땡이 벽지를 유년기에 만난 건 행운이었다.
홀로 벽지와 함께하는 시간에는 외로움과 자유함이 혼재했다. 나란 존재가 세상에 태어났구나. 그리고 곧 죽는구나. 그렇다면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등의 질문이 올라왔고 옛 현자들의 말이나 옛날 사람들이 쓰던 글씨 같은 것들에 매료되어 서예와 고전에 빠져들었다. 제일 처음으로 사랑했던 철인은 장자였다. 읽다가 갸우뚱하는 부분은 질문을 한참 품고 있다가 새벽 운동장을 돌면서 장자에게 직접 물어보면 스르륵 알아지기도 하였다.
벽지를 펼친 상태에서 영어 공부를 하면 '이미 나는 영어를 아는 존재'의 차원으로 입장되었다. 아는 걸 기억하는 게임은 재밌었고, 수많은 시간을 할애했으나 애를 써서 공부한 기억은 없었다.
영어를 공부하면서 얻은 가장 큰 가르침이었다. 애쓰지 말고 재미를 따르는 것. 그 뒤로 내가 재밌다고 느낀 것들은 죄다 나를 좋은 곳으로 이끌었기에 뭔가가 재밌으면 마치 신탁이라도 받은 듯 귀하게 대했다.
엊그제 남편과 하이킹하다 싸우고 시냇가에서 땡땡이 벽지를 펼쳐보았다. 콸콸 물소리는 내 안의 잡음을 소거시켰고, 물거품과 물줄기가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물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내 의식이 고향에 도착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고향은 언제나처럼 창조와 생명의 기운이 한없이 유출되었고, 거기서 한참을 쉬다 나오면 나는 새 사람이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