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칸 마켓에는 막 수확한 옥수수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파는 섹션이 있다.
나는 그 섹션에서 풍기는 삶의 에너지를 사랑한다. 참고로 오크라, 페르시안 오이, 에어룸토마토 섹션의 열기도 좋지만 옥수수만큼은 아니다. 나는 옥수수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멕시칸 마켓의 옥수수를 먹고는 좋아하게 되었다.
동네에 옥수수 좀 먹는 사람들이 죄다 몰려있는 섹션인지라, 전투력이 살짝 요구되지만 감수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한 가지 애석한 점은 멕시칸 마켓엔 나 같은 아시안계 사람들이 극히 드물다는 것. 그래서 본의 아니게 체급차가 많이 나는 경쟁구도에 처하게 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당당한 기세로 옥수수 섹션으로 걸어간다. 수박 고를 때의 점잖은 나와는 이별이다. 튼튼한 히스패닉 어머님들 사이에서 나도 한 자리 차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힘으로는 밀리기 때문에 얇은 몸을 우아하게 틈새로 밀어 넣으면 된다.
이제 자리를 잡았으니 고지를 선점할 차례. 대부분의 히스패닉 어머님들은 나보다 팔 길이와 유연성에서 불리한 조건을 지녔다. 이때를 놓칠세라 손 타지 않은 옥수수가 많은 쪽으로 팔을 쭉쭉 뻗는다.
속이 꽉 들어찬 놈들은 겉모양부터 무겁다. 그런 놈들을 먼저 잡아 껍질까지 다 제거한 후, 한아름 안고 뿌듯한 표정으로 신생아 눕히듯 살모시 카트에 싣는다. 이이이- 얼마나 재밌는지 모른다.
옥수수를 향한 사랑에 불타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 간의 신체 접촉을 불사하며 이리저리 팔을 뻗는 모습이 현대무용이 따로 없으므로 나도 내 파트에 충실히 임하는데,
겹겹이 촉촉한 껍질의 감촉을 통과하며 산발한 수염을 한쪽으로 싸악- 빗어 넘기면 마침내 ‘쨍긋!’하고 얼굴을 드러내는 샛노랑.
뻗고, 까고, 샛노랑
뻗고, 까고, 샛노랑
정신을 차려보니 껍질이 수북.
오크라 섹션에서는 주로 이란계 혈통으로 보이는 분들과의 은은한 광기 대결이 펼쳐진다. 나는 오크라 알레르기가 있지만 좋아해서 그냥 먹는다. 고통 대비 기쁨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오크라처럼 잔털이 많은 채소는 눈으로 한참 훑다가 마음의 결정이 나면 손을 뻗는데, 대부분의 오크라 섹션 사람들의 심리가 나와 같다는 걸 알게 된 후로 눈알 굴리는 속도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에어룸토마토 같은 경우는 매니아층이 확실한 섹션이라 붐비진 않지만, 그만큼 가차 없는 경쟁이다. 아침에 갔는데도 굵고 진한 것들이 남아있지 않다면 그날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배한 것.
미국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멕시칸 마켓에 잘 가지 않는 듯하다. 주로 에이치마트(H-Mart), 코스트코, 트레이더조스를 선호하는 것 같은데, 혹시나 수렵 채집 느낌의 본능적 장보기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에게 멕시칸 마켓을 추천한다.
물론 나는 위에 나열한 마트들을 다 가고, 알디(Aldi, 독일계 마트)도 가고, 멕시칸 마켓마저 가는 것이다. 먹는 걸 너어어어무 좋아하기 때무네. 하나의 맛이 정곡을 찌르지 않고 주변을 맴돌 때 화가 많이 나는 편이라.
멕시칸 마켓엔 참나물, 민들레, 쇠비름, 쑥갓도 있다. 히스패닉계 사람들도 이런 걸 먹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그들이 더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옥수수 고를 때 본의 아니게 좀 봐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