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은 미미하고 인심은 위태로운 나의 결혼
내게 누군가 지옥이 뭐냐고 묻는다면 남편이 섬유용 진공청소기로 소파 닦는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소음은 내게 성가신 무엇을 넘어 신체적 상해를 일으키기에 아주 긴 산책을 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침도 안 먹고 피난 가듯 떠났더니 돌아올 때쯤 허기가졌다. 작은 희망을 품은 채 현관을 조심스레 열어보니 지옥은 피날레 즈음에 와 있다. 이곳에선 희망을 버리라 했던 이탈리아 현인의 말을 무시한 채 잠시나마 희망을 품었던 죄를 씻어내러 욕실로 향했다.
물소리는 구원이다. 지옥의 분진이 서서히 씻겨나가고 감각차단(sensory deprivation)에 들어갔다. 한참을 텅 비어있는데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손바닥에 등고선이 생겼다. 더 있다간 온몸에 등고선이 생길 것 같아 급히 물을 잠그며 나도 모르게 작은 희망을 다시 품어본다.
물기를 닦는데 거실의 진동이 여전하다. 남편이 좋아하는 저 섬유용 진공청소기 속에는 나를 돌게 하는 한 음이 있는데 남편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어떻게 저게 안 들릴 수가 있지 하는 순간, 뭔가 맑고 시원한 걸 마셔야 부부관계가 보전될 것 같아 서둘러 부엌으로 향한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다행히 잘 칠링 된 코코넛 하나가 자기를 잡숴보라 추천한다. 지금 나는 배고프고 목마르며 귀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위태로운 짐승. 묵직한 열매를 한 손으로 낚아채 식칼과 빨대도 급히 챙겨 안방으로 향한다.
이제 코코넛을 따서 마시면 짐승에서 인간이 될 것 같은데 매번 남편이 드릴로 구멍을 내서 빨대를 꽂아줬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이걸 혼자 할 수 있을까. 마치 미뤄놨던 은행 업무를 보러 가는 심정에 사로잡혔으나 - 나는 은행이나 공공기관 업무 보러 가는 것에 큰 결단이 필요한 사람이다. '은행 업무'라는 글자만 적는데도 기 빨림 - 다행히 내 안에는 무력한 내 모습에 분개하는 나도 있기에 굶어 죽지 않고 살아간다.
온 힘 다해 내리쳤으나 상상 이상으로 단단한 과일이었다. 속껍질은 접근조차 못한 채 겉껍질에 귀엽게 남은 칼집이 나의 광오한 각오를 비웃었다. 아무리 봐도 이기지 못할 싸움 같아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와중에 이런 일로 우는 내가 웃겼지만 나는 내가 우는 모든 울음에 대해 울어 마땅한 일이라고 선포하고 당당히 운다.
공공장소에서도 눈물이 흐를 것 같으면 저항하지 않는다. 그렇게 꼬박꼬박 부지런히 울었더니 이토록 가벼운 사람이 되었다.
이제 눈물까지 나온 마당에 이 과업을 성사시키지 못한다면 스스로에게 면목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눈을 바르게 고쳐 뜨고 한 지점을 반복해서 내려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등변 삼각형 모양의 - 수메르인의 쐐기문자를 닮은 - 구멍이 생기며 입구에 흥건히 물이 차올랐다. 흥분에 찬 손놀림으로 빨대를 욱여넣고 한 모금 길게 빨았다. 목구멍으로 한겨울 오대산 전나무 숲이 쑥- 내려가며 감정의 수승화강이 다시 자리를 찾았다.
이 모오-든 수고를 거치지 않고 남편한테 그만하라고 해도 되지만 나는 그가 청소할 때 표정이 너무 해맑아서 그것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살다 보니 내가 '결혼'이란 걸 했는데, 그 단어에 내가 직접 동의하지 않은 것들을 다 털어내면 '서로 호의를 품은 타자와 함께 사는 행위'정도가 되는 것 같았다.
‘서로 사랑해서 백년해로하기로 한 부부'가 아니기에 '어떻게 니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가 웬만해선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가 내게 베푸는 모든 친절이 새삼스럽고 그의 해맑음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불편을 감수한다. 이런 식으로 나의 결혼은 매일 갱신된다.
그렇게 살기로 한 건 아니고 그냥 최근에 우리 관계가 그렇다는 걸 눈치챘다. 편의상 남편으로 부르지만 그냥 사람이다. 도심은 미미하고 인심은 위태로움에도 11년째 내게 한결같은 호의를 지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