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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Oct 15. 2024

포도가 너무 달아서

위로받았다




“이번 정거장은 반월당입니다."


잠시 졸았다. 내리는 일은 귀찮고 서운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세한 긴장감마저 자아낸다. 어딘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며 가방을 튕겨 매는 찰나


오른발 엄지발가락에 전기충격이 가해진다.


구토처럼 나와버린 비명. 사람들의 시선은 나를 향해있다. 발톱이 이상하다. 앞 좌석을 고정하는 볼트에 걸려 엄지발톱이 들려버린 것. 들렸다는 표현을 쓰면서 팔에 소름이 돋지만 어쩔 수 없다.


엄살이 심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는데 커서 보니 그냥 감각기관이 섬세해서 통증역치가 낮은 것이었다. 그 말이 그 말이라고 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나는 엄살 심한 나를 데리고 사는 것이 그럭저럭 괜찮았다.


흰색 스트랩샌들 위로 찐득거리는 피를 느낄 때마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시내에서 - 대구 사람들이 시내라고 하면 동성로 부근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처음 서울에 살기 시작했을 때 시내의 개념이 희미하다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았다. 서울은 온통 시내인 곳이었다 - 급히 볼일을 보고 집에 갔다.


거실엔 아빠가 사과 한 조각을 포크에 꽂아 열두 번 베어 먹고 계셨다. 나와 아버지에게 사과 한 조각은 두세 번으로 끝내기엔 다소 벅찬 맛이었기에 응당 그렇게 먹었고 서로를 공감했다. 나처럼 아빠도 엄살이 심한 걸 보면 고통과 쾌감의 역치는 함께 가는 모양이었다.



"발가락이 와 그카노?"


아부지가 물었다.


"어, 버스 내리다가 앞 좌석 볼트에 걸릿다."



"(온통 찡그리며 먹던 사과를 쟁반에 곱게 내려놓음) 아니, 버스를 얼마나 빌나게 내릿길래 발톱이 들릿어! 어? 니 이거 다시 날라믄 삼 년은 걸릴낀데 우얄래? 어? 조심 좀 하지 해필 다쳐도 엄지발가락을 다쳤어, 내 진짜 몬산다 니 때미로."


이제 두 번만 더 베어 먹으면 끝날 것 같던 사과를 내팽개친 채, 아부지는 삶의 큰 고난을 맞닥뜨린 사람처럼 진노했다.


아빠의 무시무시한 예언과는 다르게 발톱은 몇 달이 지나자 새것이 톡 튀어나왔고, 어느덧 내 삶의 터전이 경상도에서 캘리포니아로 바뀌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고통에 전혀 다르게 반응하는 남자와 살고 있었다.



"아야!"


"왜? 다쳤어?"


"어."


"음… 이 정도면 괜찮아. 자고 나면 낫겠네."



그는 내 고통을 보고 진노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그저 강 건너 불구경 정도의 온도를 발산하는 그를 보며 우리 사이가 빛의 속도로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날 후로 나는 살기 위해 그의 위로로부터 달아났다.


그렇게 멀리멀리 달아나다가 다시 원점에 다다랐는지


불현듯 어느 날

그의 위로가 사뭇 마음에 들었고 더 이상 도망가지 않게 되었다.


'이 정도면 괜찮다'는 말이

정말 나를 괜찮게 했다.


아빠의 위로는 팔팔 끓는 순두부찌개라서 냄비 받침대와 오븐 장갑이 필요하고 호호- 불어가며 '맛있제?! 맛있제?!' 호들갑 떠는 재미가 있다면 남편의 위로는 차가운 연두부 샐러드였다. 숟가락으로 폭 퍼먹고 '음- 맛있네' 하면 끝나는. 재료 본연의 맛으로 바로 들어가는 맛.


죽기 전에 남편의 위로를 해석할 수 있게 되어 이제 나는 여한이 없다.




"도로 포장 공사 중입니다 통행에 유의 바랍니다"를 두 마디로 하면 "후레시 오일". 남편이 나를 위로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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