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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NOB팀
by 김익명 Feb 14. 2018

친구에게서 느꼈던 불편함을 '잘' 토로하는 법

 밥상은 저희가 차릴게요, 숟가락만 얹어주세요. - 구뉴펠 관찰일기 2화

20살 이전엔 언제든 만날 수 있던 친구들이 대학에 가면 뿔뿔이 흩어진다. 물리적 거리와 마음의 거리가 멀어진다. 그렇게 멀어지는 동안 친구가 눈치챌 틈도 없이 나만의 생각, 나만의 취향, 나만의 것이 생겨난다. 한 달에 한 번, 혹은 일 년에 한 번씩 10년 지기 친구를 만난다. 여전히 친구의 기억 속 ‘나’는 어떤 대화를 해도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던 과거의 ‘나’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의 생각, 취향 등이 달라졌다는 점을 친구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본인의 기준으로 나를 함부로 재단하기 때문이다. 10년이라는 시간은 우리에게 '서로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없다'라고 오해하기 쉽게 만든다. 이런 오해는 친구가 나를 함부로 판단하게 하고, 이야기하게 하는 구실을 제공한다. 친구가 나를 멋대로 판단하고 재단하는 장면을 마주칠 때마다 마음 한편엔 표현하기 애매한 불편함이 조금씩 싹튼다. 하지만 함께한 시간의 축적은 관계를 깨기 어렵게, 그리고 불편함을 묵묵히 감당하게 만든다.


함께한 시간만큼 불편함을 감수하는 사람들


우리는 이런 불편함을 불편하다고 이야기하지 못하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견뎌야만 하는 상황을 '친밀한 폭력'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 친밀한 폭력을 친구사이에서 경험해본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취재에 나섰다.


A: 초등학교,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오랜만에 만나면 "니 눈썹 뭔데?"가 인사다. 친구들만의 애정이 담겨있는 인사인 거다. 걔네 눈에서는 내가 예뻐졌으면 좋겠으니까, 화장도 좀 예쁘게 하고 머리도 예쁘게 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내 기준에 맞는 '예쁨'은 아니다. 본인들의 기준에 맞춰서 얘기를 하고. 그래서 마음에서 거리를 두지만… 고민이기도 하다. 오래된 친구들이다 보니까 쉽게 관계를 끊지 못하는 그런 것도 있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친구들한테 말을 해보기도 했다. "너네가 이렇게 말하는 거 되게 싫다. 특히 외모적인 거, 다이어트, 성형 등 여성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 너무 싫고 지적 안 했으면 좋겠다. 난 내 스타일이 좋다." 그랬더니 친구들이 "그래? 그럼 A는 싫어하니까 하지 말자. 그렇지만 우리끼리는 하자!" 이렇게 되더라. (웃음) 그래서 막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하기엔 너무 지치고 그래서 "나한테만 하지 마!"로 결론이 났다. 말하기 귀찮아서.


B: 친구사이에도 유대관계가 형성되어온 시간의 축적이 있는데 그런 말 하나로 관계를 깨뜨리기가 싫으니까. 이 정도는 내가 감내를 해야 될 거 같아서 감내한다. 점점 무감각해진다. 항상 감내해야 되니까. 열을 내면 예민한 사람 취급받기도 하고. 그럴 거면 (친구들을 만난) 처음 그 당시부터 예민했어야 됐는데. 내가 아무 말 안 하니까 상대방은 그냥 괜찮은 줄 아는데 사실은 그런 게 아니라는 거. 내가 참을 정도로 나한테 있어서 소중한 사람이니까 그런 거를 감내하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앞에선 두 분만 소개했지만 거의 20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취재했다. 그 결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겪고 있다는 걸 알아냈다. 하지만 해결책은 없었다. 그들은 그저 '감내'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었다. 또 그들이 그런 불편함을 겪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란 보장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가해자와 피해자 이분법적 구도로 이 주제를 다루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보다는 감내의 무게를 덜어주는 장치를 모두에게 제공하고자 했다. '가까운 사이니까 무엇이든 잘 알 거다'라고 착각하는 생각의 폭을, 그 상상력을 좀 더 풍부하고 다양하게 가져보는 계기를 제공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탄생한 콘텐츠, <이런 말 어때?>

그래서 탄생한 콘텐츠, <이런 말 어때?> by NOB 놉

'이렇게 해야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정확한 답이 있진 않다. 하지만 대화를 통해 적어도 시도는 해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영상은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실험이었다. 우선 10년, 5년, 1년, 한 달 친구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앉혀놓고 평소 지나치며 들었던(혹은 했었던) 대화의 조각들을 뽑기를 이용해 뽑아보도록 했다. 굳이 뽑기를 매개체로 사용한 이유는 '네가 그때 이런 말 했었잖아. 솔직히 그때 나 감정 상했어'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뽑기를 뽑은 후, 그런 말이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류의 반응을 보여달라고 했고 썰을 풀고 싶으면 마음껏 해도 좋다고 미리 이야기했다.


촬영을 하면서 놀랐던 점은 이런 소박한 실험을 통해서 서로 이야기를 해보고, 자기 자신도 한 번쯤은 돌아봤으면 좋겠다는 우리의 나이브한 의도가 성공했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상처를 이야기하는 순간, 타인의 상처를 존중하고 공감하는 일이 어렵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예컨대 영상에 싣지는 못했지만 함께 룸메이트로 지내고 있는 H님, Y님이 그 본보기를(?) 아주 잘 보여줬다. 평소 "네가 그렇게 입고 다니니까 애인이 안 생기는 거야. 스타일 좀 바꿔봐"라는 소리를 H님이 Y님한테 많이 했었다고 한다. Y님은 그게 불편했지만 친구가 조언을 해준다 생각하고 스타일을 실제로 바꿨다고 했다. H님은 Y님을 생각해서 해준 말이기 때문에 불편해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어찌어찌 넘어가고 진행이 되다가 H님이 (안경 낀 친구에게) '안경 좀 벗고 렌즈 끼고 다녀'라는 말을 뽑았다. 그러자 H님의 반응은 아래와 같다. (왜인진 모르겠지만 엄마 미소를 짓게 된다.)

아~ 아~~ 아~~!!!의 연속, H님 (왼쪽) "네가 그래서..!! (깨달음)"

앞서 첨부한 영상 말미에 덧붙인 출연진끼리 내린 결론도 거의 하나로 모였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친밀한 폭력을 조심해야 한다.' 또 다른 출연진 간 공통점은, '자아성찰 좀 해주세요.'라는 요구를 한 적이 없는데도 다들 그렇게 영상 속 저 의자에 앉아서 본인을 되돌아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한건 서로 불쾌하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준 것뿐이었다.


"그래서 대안은?", "그럼 친구랑 무슨 말을 할 수 있죠?"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정말 가깝고 소중한 친구라면, 요즘 서로가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로 대화를 시작해보는 것도 각자의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친구가 조언을 구하지도 않은 외모, 진로, 취향, 연애에 대한 참견은 접어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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