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은 마치 암페타민을 먹은 공작새 같았어요. 너무 포스가 넘쳐 믿을 수가 없었죠. 인위적이고 성적sexual인 그 모습이 부끄러웠고, 역겨웠습니다.
커트 코베인
어느 날 위스콘신 주 매디슨Madison에 있는 멘도타 호수Lake Mendota를 산책하던 중 크리스가 커트에게 말했다. “제이슨이 들어온 뒤로 밴드가 좀 이상해진 것 같지 않아? 이전과 같은 밴드가 아니잖아.” 브루스 파빗의 의견대로 분명 너바나의 외모와 사운드는 전에 비해 더 ‘록’에 가까워져 있었다. 커트와 크리스는 이를 제이슨 탓으로 돌렸다. 제이슨의 퍼포먼스는 다른 멤버들보다 더 ‘쇼 비즈니스’적이었다.
크리스에 따르면 제이슨은 기존 곡들 연주에만 관심이 있었지, 잼을 하려는 순간 기타를 내려놓곤 했다. 그런데 제이슨의 말은 다르다. “너바나는 워낙 급조된 밴드여서 투어 전 리허설을 몇 번밖에 하지 않았고, 대부분 시간을 커트가 작곡한 곡을 배우는 데 할애했기 때문에 잼을 할 수 없었어요.” 사실 제이슨은 제이슨대로 불만이었다. 언젠가부터 커트는 무대에서 계속 기타를 부숴대고 있었는데 88년 10월 30일 에버그린 주립대 할로윈 파티에서도 그랬고, 피츠버그의 소닉 템플Sonic Temple에서도 그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펜더 머스탱Fender Mustang을 미련 없이 박살 내버렸다.
투어 중엔 전당포에서 값싼 기타를 구하기도 하고, 팬들이 줄 때도 있었다. 급할 땐 조나단이 택배로 보내준 기타를 그날 밤 부숴버리곤 했다. 재미있었고, 형편없는 공연을 하고 있을 때면 그 공연이 더 멋지게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중독성이 생겼다.
크리스 노보셀릭
기타를 부술 땐 명분도 단순했다. 공연이 형편없을 땐 화를 내며 부쉈고, 공연이 괜찮았으면 기뻐서 부쉈다. 크리스는 이를 ‘우리가 해냈다’는 뜻으로 한 밴드의 자축gala 엔딩이었다고 했다. 91년 6월, 너바나의 로디였던 프란츠Franz Stahl의 목격담에 따르면 “기타를 부수면 기분이 좋아진다”던 커트의 악기엔 늘 피가 묻어 있었다고 한다. “왜 그래? 이건 로큰롤이라구!” 자꾸 기타를 부수는 데 화가 나 있는 제이슨에게 커트는 능청스럽게 대꾸하곤 했다. 제이슨이 화를 낸 이유는 한 가지. 공연 자금을 자신이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리스와 커트에겐 축제나 자기만족의 수단이었을지 몰라도, 제이슨에게 악기는 돈이었다.
결정적으로 제이슨은 젠더 감성에서 커트, 크리스와 달랐다. 장소는 매사추세츠 자메이카 플레인Jamaica Plain. 너바나는 여기서 J.J. 곤슨J.J. Gonson이라는 사진가와 그의 남자 친구 집에 묵었는데, 제이슨이 실수를 저질렀다. 공연을 끝내고 여자 팬을 집에 데리고 온 것이다. 찰스 R. 크로스의 책에도 나와 있듯, 다른 건 몰라도 여성 팬과의 관계엔 커트와 크리스는 보수적이었다. 둘은 여자 때문에 밴드를 하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찰스는 또한 스스로 고독을 좋아하면서도, 상대의 고독으로 본인이 위협을 당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는 등 많은 면에서 커트와 제이슨이 비슷한 성격인 점도 둘이 잘 지내지 못한 이유라고 썼다.
결국 89년 7월 18일 뉴욕 이스트 빌리지East Village에서 열린 뉴 뮤직 세미나New Music Seminar 행사 일환이던 피라미드 클럽 공연을 한 뒷날 커트는 제이슨을 해고하기로 마음먹는다. 술 취한 진상 관객이 무대에 올라온 이 형편없던 공연은 제이슨과의 마지막 공연이기도 했다. 팀 분위기가 뒤숭숭했는지 남아 있는 2주 공연 일정을 취소한 4인조 너바나는 뉴욕에서 시애틀까지 50시간 ‘미국 횡단’ 중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제이슨에 따르면 그나마 차를 세운 것도 주유를 할 때뿐이었다고 한다.
제이슨은 투어의 부담감과 우리와 함께 하는 것에 대한 압박감을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 그는 우리가 더 ‘록’이 되길 원한 반면, 커트와 나는 펑크가 되길 원했기 때문에 제이슨의 만족감은 한계적이었다. 뉴욕으로 향했을 때부터 제이슨은 이미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크리스 노보셀릭
제이슨의 침묵은 뉴욕에 있던 머드허니 멤버들이 ‘쟨 왜 저렇게 조용하냐’라고 물을 정도였다. 너바나는 뉴저지 호보켄에 있는 맥스웰스Maxwell’s에서 좋은 공연을 했지만 제이슨은 거기서도 조용했다. 너바나는 뉴욕에서 나흘 정도를 보냈다. 커트, 크리스, 채드가 리츠Ritz에 소닉 유스와 머드허니, 래핑 하이에나스Laughing Hyenas를 보러 갈 때 크리에이터Kreator와 인페르노Inferno를 좋아했던 제이슨은 CBGB 무대에 선 프롱Prong을 보러 갔다. 소외감을 느꼈을 제이슨과 달리 커트와 크리스, 채드는 이때 더 돈독해졌다.
제이슨의 탈퇴가 가까워진 때에도 커트는 제이슨과 직접 만나 문제를 풀 생각은 않았다. “커트는 절대 대면하지 않았어요.” 채드의 기억이다. “감정이 쌓이고 쌓인 뒤 ‘더는 못 참겠다’고 말하는 쪽은 언제나 커트의 상대측이었죠. 제이슨의 경우도 크리스와 난 그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 한 반면, 커트는 늘 침묵으로 일관했어요. 내 생각에 커트는 대화하는 걸 두려워했던 게 아닐까 싶네요. 커트는 ‘팀이 잘 안 굴러가니까 네가 밴드에서 나가줘야겠어’ 하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그는 대립을 원치 않았어요. 커트는 사형 집행자나 못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던 거죠.” 채드는 음악적 이견이 불거진 제이슨이 떠난 데 대해선 안도감을, 그의 탈퇴에 따른 뉴욕 투어 취소에는 힘들었다고 했다.
제이슨은 실제 커트에게 해고 통보를 받은 적이 없다. 데이브 포스터가 그랬듯 커트의 해고 방식은 언제나 ‘무소식’이었다. “그 밴드(너바나)가 곡에 대한 의견을 나한테 물어본 기억이 없어 결국 탈퇴한 거예요. 난 늘 주변인 같았죠.” 그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에 만족할 인물이 아니었다. 작곡가이기도 했던 제이슨은 너바나 음악에 더 많은 의견을 반영하고 싶었다. 제이슨의 탈퇴가 어쩌면 자신의 변덕스러운 성격 때문일지 모른다고 말한 커트는 “《Bleach》의 메탈 성향을 밴드의 타협이 아닌 본질인 걸로 제이슨이 착각한 것 같다”고 했다. 커트의 말은 사실이었다. 제이슨이 <Paper Cuts>나 <Sifting>, <Big Long Now> 같은 곡을 좋아한 반면, 커트는 멜로딕한 것들을 더 좋아했으니까. 요컨대 제이슨은 메탈을 좋아했고 커트와 크리스는 메탈을 쿨하지 않은 걸로 여겼다. 멤버 한 명의 탈퇴가 기정사실화 되면서 밴드는 제이슨의 말처럼 주유, 도넛 먹기, 화장실 가기 외엔 쉬지 않고 50시간을 워싱턴으로 운전해 왔다. 훗날 제이슨은 해고가 아닌, 스스로 밴드를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했다. 그렇게 제이슨은 샌프란시스코 커버드 왜건 살룬Covered Wagon Saloon이 포함된 첫 미국 투어였던 《Bleach》 프로모션 투어를 포함해 5개월간 너바나 멤버로 활동했지만 더는 인연을 못 이어갔다.
아마 너바나가 유명해졌어도 그냥 돈 받고 ‘다음에 보자!’ 말했을 거다. 너바나를 떠난 건 경제적으론 아닐지언정, 예술적으론 무조건 옳은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제이슨 에버맨
너바나를 나오고 2주 뒤 사운드가든의 킴 테일이 제이슨에게 연락을 했다. 히로Hiro Yamamoto, 베이스가 팀을 나갔으니 오디션 생각이 있느냐는 용건이었다. 당시 히로는 메이저 레이블이 사운드가든에게 원하는 메탈 성향과 잦은 투어에 따른 ‘떠돌이 생활’이 싫어 밴드를 떠났다고 한다. 제이슨은 히로의 자리에 들어가 몇 달간 활동하다 벤 셰퍼드에게 자리를 내준 뒤 사운드가든을 나왔다. 크리스 코넬의 말이다. "오디션 때 제이슨은 정말 수줍어했고 또 위축돼 있었어요. 몇 달 지나면 극복해 내리라 생각했지만 잘 풀리지 않았죠. 곪아 터지도록 내버려 두기보단 그를 내보내는 쪽을 택한 겁니다." 해고와 관련해 제이슨과 나머지 멤버들이 논의한 시간은 단 2분이었다.
『기타 월드』의 제프 길버트Jeff Gilbert는 제이슨이 사운드가든과 어울리지 않았다고 했다. "제이슨은 무대에서 연주도 잘하고 헤드뱅잉도 하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어요. 단, 그는 늘 변덕스러웠죠. 마치 젖은 신발을 신은 느낌이랄까. 발에는 맞지만 편하지는 않은 그런 거 있잖아요." 킴 테일도 제이슨의 존재가 야마모토를 잃고 겪은 밴드의 상처를 들춘 꼴만 됐다고 했다. "제이슨은 크리스, 맷과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려 노력하는 데 시간을 덜 쏟았어요." 사운드가든에서 나온 제이슨은 3일 동안 방에 틀어박혀 지냈다. "완전히 사랑하던 여자한테 차인 것 같았어요. 가라앉을지 계속 헤엄을 칠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는 자기가 좋아한 프롱의 고향 뉴욕으로 이사 가 메가포스Megaforce Records 소속 밴드인 마인드펑크Mindfunk에서 기타를 쳤다. 그리곤 입대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했고 제대하고선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그 친구(벤 셰퍼드)를 정말 좋아해서 너바나에 합류했으면 싶었는데, 아직도 후회하고 있어요. 벤은 가끔 미치광이 같았지만 괜찮아요. 변덕스러운 메탈헤드(제이슨 에버맨)보다는 차라리 그런 사람이 낫죠.
커트 코베인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건 벤 셰퍼드가 너바나에 아주 잠깐 머문 사실이다. 커트는 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기타 치는 걸 알았으면 제이슨과 장난치지 않았을 텐데!” 밴드와 합까지 맞춰본 벤은 너바나 투어에도 동행했지만 무대에서 연주하진 않았다. 그때 너바나는 《Bleach》 곡들만 무대에 올렸기 때문이다. 벤이 합주한 곡들은 모두 《Nevermind》에 실릴 곡들이었다. “제이슨 자리에 내가 들어가기로 했는데 ‘너흰 그냥 3인조가 어울려’ 말해주고 나온 거죠.” 너바나 트리오 체제는 스크리밍 트리스, 태드, 머드허니 멤버들도 “기타리스트가 추가되면 사운드가 복잡해진다”며 강력히 권한 바 있다.
제이슨이 나간 뒤 크리스는 말했다. “우린 행복했다. 안도감이 들었다.” 너바나는 끝내 제이슨이 《Bleach》를 위해 빌려준 돈을 갚지 않았다. 커트는 나중 그 돈이 (제이슨이) 자신들에게 입힌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이라고 주장했다. 커트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