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대 Nov 14. 2016

한국인은 왜 메탈리카에 열광하는가?

덴마크 드러머 라스 울리히가 L.A 지역 신문 [The Recycler]에 아이언 메이든과 다이아몬드 헤드 팬을 찾는다는 구인 광고를 올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원자가 나왔으니 발신지는 마침 라스가 제안한 밴드들을 카피 메뉴로 삼고 있던 레더 참(Leather Charm)의 멤버 둘, 제임스 헷필드와 휴 태너로부터였다. 그렇게 라스와 제임스가 처음 만나고 5개월이 지난 1981년 10월,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록밴드가 될 메탈리카가 결성된다.


‘메탈리카’라는 이름은 라스가 자신의 친구 론 퀸타나와 팬진(fanzine) 이름을 짓기 위해 감행한 브레인스토밍에서 나온 것인데 당시 후보에 오른 ‘메탈마니아’와 ‘메탈리카’ 중 라스가 “메탈마니아가 더 낫다”며 거짓말을 하고 가로채 온 것이다. 이어 리드 기타리스트를 구하는 두 번째 구인 광고에 데이브 머스테인이라는 인물이 응했고, 그의 비싼 장비들에 현혹된 제임스와 라스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데이브를 식구로 맞아들였다.


[Metal Massacre I]


82년 벽두. 자신들의 첫 오리지널 곡 ‘hit the lights’를 컴필레이션 [Metal Massacre I]에 수록하기 위해 밴드는 녹음에 들어간다. 이는 밴드 라인업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던 때에 동물적인 비즈니스 감각을 소유한 라스가 메탈 블레이드(Metal Blade Records) 설립자인 브라이언 슬라겔에게 반 공갈로 컴필레이션 수록곡을 녹음할 수 있다고 말해 성사된 일이었다. 당시 베이스는 제임스가 연주했고 리드 기타는 로이드 그랜트라는 인물이 맡았었다. 그해 여름 나온 컴필레이션에는 밴드 이름에 ‘t’가 하나 더 들어가면서 ‘Mettallica’로 잘못 표기, 그럼에도 곡은 좋은 반응을 얻어 헷필드가 자신의 첫 커버 밴드였던 옵세션(Obssesion) 시절부터 알고 지낸 론 맥고브니를 베이시스트로 영입하기까지 이른다.


색슨(Saxon)의 82년 미국 투어 오프닝 밴드로 무대에 서며 메탈리카는 자신들의 가능성을 증명했지만 론 맥고브니는 “밴드에 기여하는 게 없다”는 소극성이 빌미가 되어 곧 밴드를 떠나고 만다. 그 자리에는 라스와 제임스가 할리우드에 있는 나이트클럽 ‘위스키 어 고 고’에서 발견한 트라우마(Trauma)의 베이시스트 클리프 버튼이 들어왔다. 와(wah-wah) 페달을 밟으며 야생마처럼 베이스를 다루던 클리프의 연주에 둘은 그 자리에서 넋을 잃었던 것이다.


메탈리카 초기 라인업. 왼쪽부터 클리프 버튼, 데이브 머스테인, 라스 울리히, 그리고 제임스 헷필드


83년 5월, 데뷔작 [Metal Up Your Ass](소속사의 반대로 ‘Kill’em All’이 된 것이다) 녹음을 시작하기 전 약물 남용과 폭력성을 이유로 데이브 머스테인마저 해고된다. 엑소더스의 기타리스트였던 커크 해밋이 그 자리에 들어온 건 이젠 팬이라면 모를 리 없는 에피소드. 머스테인은 자기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이유로 커크 해밋을 ‘도둑’으로 몰며 자신의 밴드 메가데스를 결성한다. 이후에도 커크에 대한 머스테인의 화는 쉬 가라앉질 않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만들어놓은 기타 솔로로 커크가 유명세를 탔기 때문이다. 라스와 제임스와 클리프는 83년 4월16일 뉴저지 도버에 있는 나이트클럽 ‘더 쇼플레이스’에서 커크와 첫 무대를 가졌다. 이날은 댄 릴커와 닐 터빈이 있었던 앤스랙스가 메탈리카와 처음으로 같은 무대에 선 날이기도 하다.


메탈리카 데뷔 앨범 [Kill’em All]


이것이 대략적인 메탈리카의 시작이다. 하지만 나는  글을 처음 의뢰받았을  단순히 저런 ‘역사 나열로만 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스마트폰이 정점을 찍은 디지털 인터넷 시대에 뮤지션 바이오그래피는 도처에 널렸고 그것은 정치인들의 거짓말만큼이나 지겹게 반복되어온 것이므로 굳이 나까지 나서서 앵무새처럼 떠들 필요를 느끼지 못한 탓이다. 그래서 나는 8 만에 나오는 메탈리카 신보의 마중물이   글을 옛날부터 가져온 의문 하나에서 풀어나가 보기로 했다. 의문은 바로 이것이다. 한국인이 메탈리카를 좋아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감미로운 사이먼  가펑클도 아니고 섹시한 마이클 잭슨은 더더욱 아닌  순혈 헤비메탈 밴드를 한국인들이 그토록 사랑해온 데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 나는 오랜 기간 생각해왔다. 물론  이유라는 것은 어쩌면  세계 메탈 팬들이 메탈리카를 대하며 가졌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일지 모른다. 다만 나는 이번 기회에 메탈리카가 어떻게 고작 인구 5천만 명에 대중의 음악 취향도 다소 편향된  작디작은 나라의 돔구장에서 자신들의 단독 공연을 치를  있게  것인지 단서 하나라도 건지고 싶었다. 그것이  글의 목적이며 평론하는 자로서 내가   있는 조금은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겼다.


직관적인 기타 리프


나 역시 그랬지만 한국 팬들은 메탈리카 첫 경험을 [Metallica](이하 ‘블랙앨범’)나 1986년을 스래쉬 메탈의 해로 만든 [Master Of Puppets]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두 앨범이 확립한 메탈리카의 이미지는 바로 ‘리프를 기똥차게 뽑아낸다’였고 이후 메탈리카 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 역시 대부분 여기에서 출발했다. 가령 벤자민 프랭클린이 ‘미국 정신의 상징’이라 말한 방울뱀을 앨범 재킷으로 쓴 블랙앨범의 첫 곡 ‘Enter Sandman’은 그 좋은 예로, 유아 돌연사 증후군(sudden infant death syndrome, 12개월 이하 영아가 잠든 뒤 사망한 상태로 발견 되었음에도 딱히 그 사망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경우를 일컫는 용어:편집자주)을 주제로 삼았고 잡지 롤링스톤이 “최초의 헤비메탈 자장가”라 정의내린 이 곡의 마칭 리프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헤비메탈 기타 리프일 것이다. 그것은 케랑!의 말콤 돔이 앤스랙스의 ‘Metal Thrashing Mad’를 듣고 ‘파워메탈’로 여겨진 메탈리카 음악에 ‘스래쉬메탈’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주기 3년 전에 메탈리카가 결성된 것 이상으로 역사적인 기타 리프였다. 참고로 이 곡의 리프를 만든 커크 해밋은 솔로의 마지막 릭(lick)을 하트(Heart)의 ‘Magic Man’에서 영감 받아 마무리 지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헤비메탈 앨범 [Metallica]


'Enter Sandman' 뮤직비디오


이어진 ‘Sad But True’의 쇳덩이 그루브, 질주하는 ‘Holier Than Thou’의 메인 리프들 역시 마약처럼 팬들을 빨아들였을 것이고 덜컹이는 ‘Don’t Tread On Me’와 직관적인 ‘Through The Never’의 파상공세를 지나 마지막 곡 ‘Struggle Within’’에 이르렀을 땐 이 앨범을 들은 사람 대부분이 메탈리카라는 밴드,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기적 같은 기타 리프에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지경이 되었을 것이다. ‘박근혜 게이트’에 충격 먹은 대한민국 메탈 팬들이 거의 동시에 떠올렸을 ‘Master Of Puppets’ 역시 그런 직관의 메탈리카 리프가 스민 대표 사례라고 나는 본다. 빗발치는 다운 피킹 리프, 극적인 코드 진행, 드라마틱 구성, 사나운 질주를 잠재우려 틈날 때마다 쉼표를 찍는 심벌 브레이크. 이것은 일종의 역추적 같은 것인데 그렇게 블랙앨범을 듣고 3집 또는 4집을, 그걸 듣고 다시 ‘Creeping Death’의 2집과 ‘Whiplash’의 1집을 한국인들은 차례로 들어나갔을 것이라는 게 내 짐작이다. 메탈리카의 리프들은 그런 식으로, 마치 ‘Eye Of The Beholder’의 인트로 마냥 한국 팬들에게 조용히 하지만 강렬하게 다가왔고 지금의 메탈리카 팬덤을 이 나라에 깊이 뿌리내리도록 했다.


리듬의 박진감 


라스 울리히는 의심과 인기를 한 몸에 받는 드러머다. 사람들은 그의 박진감 넘치는 리듬 라인을 흠모하면서도 한 편으론 그 실력에 의심을 품는다. 그는 항상 과소평가 되거나 과대평가 된다. 극단의 평가로 인해 그의 실력은 또 그만큼 왜곡되어왔다. 33년 전, 조 새트리아니로부터 슈레딩(shredding) 주법을 전수 받은 커크 해밋의 펜타토닉 리드 기타에 맞서 200bpm 더블 타임 비트를 칠 때만 해도 라스의 실력에 의심을 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스래쉬 메탈의 시발점으로 간주된 그 역사적인 플레이가 2집과 3집을 거치며 리듬의 건축 양식을 일구어 나갈 때에도 라스는 자기가 좋아하는 원초주의 화가 장 미쉘 바스키아처럼 모든 면에서 창의적이었다. 그런 그가 드러머로서 왜 의심을 받게 된 것일까? 무엇이, 어떤 기준이 그의 드러밍을 시험에 들게 한 것인가.


'Master of Puppets' 시애틀 라이브 영상


드러머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솔로 지향형이 있으면 밴드 지향형이 있고, 화려한 테크닉을 중시하는 드러머가 있는 반면 묵묵히 구성에 더 신경을 쓰는 드러머도 있다. 눈치 챘겠지만 라스는 이 중 모두 후자에 해당하는 드러머이다. 머시풀 페이트의 [Return Of The Vampire… 1993]에서 딱 한 번 자신의 재능을 빌려줄 만큼 메탈리카라는 소집단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 라스는 언젠가 제임스의 리듬 기타에 최적의 드럼 라인을 만들 수 있는 드러머는 자신 밖에 없다고 자신했다. 메탈리카의 양대 미드 템포 넘버 ‘For Whom The Bell Tolls’와 ‘Harvester Of Sorrow’는 그 좋은 예일 것이다. 두 곡에서 라스의 드러밍은 행여 놓칠세라 제임스의 기타 리프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잠시 잠깐 리프를 풀어줄 때조차 그루브를 취한 그의 드러밍은 푸석해진 곡에 탱탱한 탄력을 불어넣으며 곡의 리듬 반경을 철저히 자신의 통제 아래 둔다. 음표를 그리지 않아도 메탈리카 작곡 크레딧에 항상 라스 울리히의 이름이 들어가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Blackened' 님(Nimes) 라이브 영상


그리고 테크닉. 라스는 기본적으로 ‘밴드’와 ‘구성’을 지향하는 드러머다. 그 말은 곧 멤버들과 호흡, 곡과 드러밍 사이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과 같다. 라스는 코지 파웰이나 딘 카스트로노보 같은 드러머가 아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그는 ‘블랙앨범’에서 참고한 찰리 왓츠(롤링 스톤스)나 필 루드(ex. AC/DC)에 더 가까운 드러머이다. 그의 드러밍에서 기교를 찾고자 할 땐 ‘one’의 6연타 더블 베이스 드러밍과 ‘Battery’의 블래스트 비트 정도를 얘기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다른 헤비메탈 드러머들과 비교했을 때 분명 놀랄만한 수준은 아니다. 라스 본인도 말했듯 그는 조이 조디슨도 마이크 포트노이도 아닌 ‘메탈리카의 드러머’일 뿐이다. 반전을 거듭하는 ‘...And Justice For All’과 ‘All Nightmare Long’을 들어보라. 밴드와 곡, 그리고 라스 울리히가 쫓고 쫓기는 모습을 어렵잖게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라스의 실력을 의심하는 이들은 결국 라스가 솔로 지향형 테크니션이라는 틀린 전제를 들고 접근했기 때문에 '라스는 드럼을 못 친다'라는 틀린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었다. 메탈리카 음악이 왜 박진감 넘치는지 아는가? 그건 바로 라스의 철저한 밴드를 위한, 밴드를 향한 드러밍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면 'Orion'과 'Blackened'를 들어보면 된다. 라스만이 구축할 수 있는 '메탈리카 리듬'의 세계가 그 두 곡에는 있다.


진지한 가사, 서사적 구성


진지하고 서사적인 것에 대한 사람들의 호감도는 제각각이겠지만 메탈리카 음악에서 어쨌든 그것은 장점이 되었다. 제임스가 옛 여자 친구를 추억한 'Nothing Else Matters' 정도를 빼면 메탈리카의 가사는 거의가 진지하고 어둡고 때론 장엄하다. 그들의 이런 성향은 초기 때부터였다. 가령 레더 참 시절 코드 4개로 만든 ‘Motorbreath’가 수록된 데뷔작의 대곡 'The Four Horsemen'에 담긴 최종 내용은 요한계시록의 네 기사 이야기였고(데이브 머스테인이 쓴 이 곡의 본래 주제는 '주유소에서 나누는 섹스'였다), 머스테인의 10대 시절 섹스 경험이 담길 뻔한 'Jump In The Fire'는 서로 물고 뜯는 인간 군상을 바라보는 악마의 시점을 제임스가 대입한 끝에 비로소 우리가 아는 버전으로 완성되었다.


메탈리카를 세계에 알린 걸작 [Master of Puppets]


이들의 이런 진지함은 스티븐 킹의 소설 [스탠드(The Stand)]에서 영감을 얻은 두 번째 앨범 [Ride The Lightning]에서 더 구체화 된다. 어여쁜 메이저 키 어쿠스틱 기타 인트로를 무참히 짓밟는 트레몰로 피킹으로 핵폭탄 참사를 묘사한 'Fight Fire With Fire', 밴드가 부당한 사법제도를 직시한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된 'Ride The Lightning',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동명 소설 주제인 현대전 속 공포와 불명예를 다룬 'For Whom The Bell Tolls', 냉동 보존술에서 깨어난 인간이 도피처도 구조자도 없는 절박한 상황에 직면한 'Trapped Under Ice', 클리프 버튼의 집에서 멤버들이 함께 관람한 세실 B. 데밀의 역작 [십계]를 참조한 'Creeping Death', 그리고 'The Thing That Should Not Be'와 더불어 호러 판타지 소설가 러브 크래프트의 [인스머스의 그림자(The Shadow Over Innsmouth)]에 주제의 뿌리를 둔 'The Call Of Ktulu'까지.


메탈리카의 처음 두 장 앨범은 마약 문제를 다룬 'Master Of Puppets'와 환경 문제를 다룬 'Blackened'로 각각 대표되는 3, 4집의 서문격으로 일찍부터 그 심각함을 뼛속까지 새겨 나갔다. 이 두렵고 황량한 정서는 이후 제임스가 16세 때 생을 등진 자신의 모친에게 그리움과 원망을 담아 바친 ‘The God That Failed’, ‘Until It Sleeps’, ‘Mama Said’에 그대로 이어진다. 태어나는 고통, 살아가는 고통, 죽음의 고통이라는 이른바 '3고'를 주제로 삼은 [St. Anger]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화두로 제시한 [Death Magnetic] 역시 이들의 진지한 주제 의식이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는 증거로 남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켄 케시의 소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참고한 'Welcome Home (Sanitarium)'과 반전의 송가 'One' 등 메탈리카표 파워 발라드의 전조가 된 'Fade To Black' 같은 서사형 구성 패턴과 보기 좋게 짝을 이루었다.


라스의 6연타 더블 베이스 드러밍을 들을 수 있는 메탈리카표 파워 발라드의 전형 'One' 뮤직비디오


헤비메탈로 소설을 써나갈 듯 정색하고 저돌적이었던 이들(특히 라스 울리히)의 프로그레시브 성향은 '모두를 위한 정의'를 외친 4집과 그 4집을 추억한 9집에서 마음껏 표현되고 또 소화되었다. 큰 주목을 받진 못했지만 [Load]의 'Bleeding Me', 'The Outlaw Torn'과 'Some Kind Of Monster', 'Invisible Kid'가 수록된 [St. Anger]에서도 이들의 대곡 지향은 마치 본능처럼 전개되어 나갔다. 사실 멤버들은 자신들의 이 늘어진 감성에 스스로 질려 블랙앨범으로 변신을 시도했지만 적어도 한국 팬들은 메탈리카의 이 심각함과 그물 같은 서사성에 처음부터 마음을 빼앗겼던 것인지 모른다. 이번 고척 스카이돔 단독 공연에서 또 한 번 증명되겠지만 8분이 넘는 대곡을 처음부터 끝까지(메인 리프는 물론 기타 솔로와 브릿지 등 거의 모든 전개를)따라 부른다는 건 바로 메탈리카 음악에 담긴 프로그레시브 성향을 한국인들이 사랑한다는 방증일 것이다.


명반 또 명반


만드는 사람과 사는 사람, 그러니까 밴드(뮤지션)와 팬 사이 신뢰 여부는 결국 만드는 측이 좋은 음반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내느냐에 달려 있다. 데뷔 앨범이 ‘대박’ 나고 2집까지 그럭저럭 버텨도 3집부터 주춤해버리면 팬들은 미련 없이 그 뮤지션과 밴드에게 등을 돌려버리는 게 이 바닥의 생리다. 큰 뮤지션, 이른바 '거장'이 되려면 최소 4집까지는 범작 수준 이상을 유지해줘야 그 집단의 후보에라도 들 수 있다. 비틀즈와 레드 제플린이 괜히 위대한 게 아니다. 그들은 시작부터 내는 앨범마다 평균 이상을 들려주었고 더 발전된 음악으로 차기작들을 향한 팬들의 기대에 부흥했다. 메탈리카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데뷔 시절 이미 한 장르를 책임질 만한 음악을 들려주고 불어나는 디스코그래피가 부끄럽지 않게 이후 작품들을 차례로 명반 반열에 올려놓았다. 요컨대 모든 것은 다이아몬드 헤드의 'Dead Reckoning'을 참조한 ‘Seek & Destroy’부터 시작된 거였다.


때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 데뷔작 레코딩을 앞둔 메탈리카에게 메탈 블레이드 측이 레코딩 비용을 댈 수 없다고 한 것은 이들에게 처음으로 닥친 위기였다. 데모 [No Life 'til Leather]를 듣고 메탈리카에 관심을 가진 콘서트 프로모터 존 자줄라가 뉴욕의 레이블들과 메탈리카 사이 브로커를 자처했지만 그마저도 무산, 차라리 대출을 통해 존 자신의 레이블을 차려 이 밴드를 구명하려 했으니 바로 메가포스 레코드(Megaforce Records)였다. 바로 여기서 스래쉬 메탈의 시작이라 일컫는 [Kill'em All]이 나왔고 반半 철학적에다 사회적인 가사를 앞세워 “익스트림 메탈이 예술의 경지에 오른 순간”을 이끌어낸 [Ride The Lightning]이 이어 세상과 만났다. 즉 84년 9월, 일렉트라 레코드(Elektra Records)의 디렉터인 마이클 알라고와 큐프라임 매니지먼트의 공동 설립자 클리프 번스타인이 메탈리카의 콘서트 퍼포먼스에 반해 아직 수면 아래 있던 메탈리카를 수면 위(메이저)로 끌어올린 것인데, 이 때부터 메탈리카는 와스프(W.A.S.P.)와 공동 헤드라이너를 서거나 몬스터스 오브 락, 도닝턴 페스티발에 초대되어 본 조비, 래트 같은 거물급 밴드들과 과거 7천 관중에 ‘0’이 하나 더 붙은 7만 관중 앞에 자신들을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1985년 클리프 버튼이 함께 한 'Ride the Lightning' 라이브 영상


물론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86년 3월, 빌보드 앨범 차트 29까지 오른 [Master Of Puppets]는 이들에게 첫 골드(50만장 이상 판매고)를 안긴 뒤 올뮤직(Allmusic.com)의 스티브 휴이가 쓴 것처럼 여태껏 “메탈리카의 가장 위대한 성취”로 남아 있다. 화와 폭력을 주제로 한 매머드급 스래쉬 폭탄 'battery', 우는 아이도 그치게 할 타이틀 트랙의 대전차 기타 리프, 'sad but true'가 나오기 전까지 메탈리카 곡들 중 가장 헤비했던 'The Thing That Should Not Be', 전쟁터에서 맞는 젊은 사병들의 허무한 죽음을 다룬 숨은 명곡 'Disposable Heroes', 미디어를 통해 종교를 파는 '사이비'들을 겨냥한 'Leper Messiah', 그리고 스웨덴 스톡홀름 투어 도중 빙판길에서 버스가 전복돼 그 자리에서 즉사한 클리프 버튼의 아름다운 흔적 'Orion'까지. 메탈리카의 세 번째 앨범은 메탈리카 역사를 넘어 헤비메탈의 지축을 뒤흔든 앨범이 되면서 한국 팬들은 물론 세계 모든 메탈 팬들의 다른 취향을 하나로 묶어버렸다. 바야흐로 메탈리카의 본격적인 전성기가 고개를 들 무렵이었다.


살아남은 이들에게 씻지 못할 죄책감을 안긴 클리프 버튼의 죽음. 그럼에도 밴드는 앞으로 나아가야 했기에 멤버들은 곧 클리프의 빈 자리를 대신할 베이시스트를 물색한다. 당시 공개 오디션에는 커크의 고추 친구이자 프라이머스의 리더인 레스 클레이풀(Les Claypool)과 프롱의 트로이 그레고리(Troy Gregory) 등 40명에 가까운 실력파들이 메탈리카의 문을 두드렸다. 밴드는 그 중 플롯섬 앤 젯섬의 제이슨 뉴스테드(Jason Newsted)를 발탁했고 선택받은 제이슨은 이들과 함께 또 다른 대작 [...And Justice For All]을 서울올림픽이 열린 88년 세상에 내놓았다. 라스의 완벽한 프로그레시브 드러밍이 담긴 'Blackened'를 비롯 도덕적 타락을 다룬 '...And Justice For All', 권력의 통제와 억압에 맞선 'Eye Of The Beholder', 사지가 잘린 병사의 이미지를 통해 반전 메시지를 전한 'One', 감시와 차별을 노래한 'The Shortest Straw', 연쇄 살인마의 심리를 담은 'Harvester Of Sorrow', 클리프 버튼의 마지막 흔적 'To Live Is To Die' 등 곡당 평균 러닝 타임만 7분에 육박한 이 거대한 헤비메탈 앨범은 메탈리카라는 밴드에 확고한 명성을 안겨주게 된다. 참고로 제이슨 뉴스테드는 메탈리카에 몸담았던 시절 'Orion'이 싫어 그 곡을 연주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는 'Orion'의 광팬이었지만 클리프 버튼의 베이스 솔로 파트를 제대로 들려줄 자신이 없어 연주를 피한 것이다. 언젠가 이 점은 분명히 해두고 싶었다.


1991년 모스크바 석양에 수놓은 'Harvester of Sorrow'


그리고 그 유명한 블랙앨범이 91년 8월12일 세상에 나와 세상을 뒤집었다. 장황했던 프로그레시브 콘셉트를 접고 심플한 음악에 접근한(때문에 기존 팬들에게 반감도 많이 샀던) 이 새까만 결과물은 메탈리카 전성기 아니, 메탈리카 역사의 정점에 선 명반 중에 명반으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고 또 팔리고 있다. 글의 시작에서 말했듯 한국 팬들은 대부분 이 앨범부터 메탈리카를 받아들여 역으로 메탈리카를 흡수해나갔을 것이다. 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거대한 사운드. 세 가지로 튜닝된 기타를 사용한 첫 번째 앨범이자 스튜디오에서 합주 방식으로 녹음한 첫 앨범인 본작을 위해 멤버들은 본 조비와 컬트, 머틀리 크루와 작업한 밥 락을 프로듀서로 영입했다. 수록된 12곡 중 버릴 곡이 단 하나도 없었던 이 완벽한 앨범에서 라스와 제임스는 자신들이 '뮤지션'이자 '송라이터'임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썼는데 실제 이 시절 헷필드의 송라이팅은 밥 딜런과 밥 말리, 그리고 존 레논에게서 부분적으로 영향 받은 것들이다. 멜로디 메이커 지의 지적대로 지난 작품들에 비해 더 느리고 덜 복잡하고 더 헤비해진 메탈리카 5집은 빌보드 200 차트에 무려 390주를 머물며 핑크 플로이드의 [Dark Side Of the Moon]과 캐롤 킹의 [Tapestry] 인기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블랙앨범은 또한 90년 이후 가장 많이 팔린 팝록 앨범으로도 남았는데 2016년 11월 현재 미국에서만 1,620만장이 나갔다. 1위는 샤니아 트웨인의 [Come On Over]로 무려 1,760만장을 팔아치웠다.


'All Nightmare Long' 멕시코 라이브 영상


이처럼 메탈리카는 데뷔 때부터 5장 앨범으로 부동의 최고 록밴드 자리에 올랐다. 96년과 97년에 걸쳐 나온 메탈리카의 음악적 탐험 [Load]와 [Reload]는 팬들과 평단으로부터 똑같은 야유를 받아 밴드의 흑역사로 남았고, 이보다 더 큰 비아냥(물론 그 야수적인 톤에 대한 반대편 호평도 만만치 않았다)을 산 [St. Anger]는 '차고에서 첫 합주 하는 느낌'이라는 밥 록의 의도에 얼음물을 끼얹은 웹진 피치포크의 별점(10점 만점에 0.8점) 앞에서 한 없이 작아져야 했다. 비판의 화살은 대부분 라스의 드럼 톤으로 집중되었는데 피치포크의 혹평을 빌면 그것은 "양철북과 알루미늄 탐탐, 프로그램 된 더블 킥, 그리고 부서진 교회 종소리 같은" 것이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밴드는 거장 프로듀서 릭 루빈을 초빙해 5년 뒤 [Death Magnetic]을 내놓은 것인데, 대작 지향으로 과거 영광을 탐한 이 앨범 역시 극명한 호불호를 낳으며 5집까지 메탈리카 명성을 완전히 회복시켜주진 못했다. 그럼에도 'The End Of The Line'이나 'Broken, Beat & Scarred'의 기타 리프는 분명 인상적이었고 'All Nightmare Long'의 구성과 'Cyanide'의 상업성은 확실히 [St. Anger]보단 더 메탈리카스러운 성과였다. 그리고 흐른 8년. 메탈리카는 데뷔 이후 가장 긴 침묵의 시간을 갖게 된다.


분업에 기반 한 성실함


그 거친 헤비니스 음압에도 불구 메탈리카가 유독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마지막 이유는 바로 분업에 기반 한 성실함이다. 조직을 꾸미고 각자에게 임무를 배정한 뒤 맡은 자리에서 성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것.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이를 성공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당연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아니, 이는 어쩌면 국경을 넘은 성공의 전제일지 모른다. 메탈리카는 바로 그 분업과 성실성으로 우직하게 30여 년을 달려왔기에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


메탈리카의 분업 시스템은 매우 견고하다. 프론트맨 제임스 헷필드는 타고난 리듬 기타 감각으로 곡의 뼈대를 세우고 오페라 가수였던 모친의 끼를 물려받아 노래를 부른다. 한때 그는 기타와 보컬을 함께 맡는 일에 한계를 느껴 아모드 세인트(Armored Saint)의 존 부쉬에게 보컬 자리를 제안했지만 존의 거절로 제임스는 지금까지 메탈리카의 리듬 기타/리드 보컬 자리를 도맡고 있다. 가사에도 물론 그의 입김과 사상이 많이 녹아 있지만 언젠가부터 가사는 멤버 모두가 함께 쓴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를 백 퍼센트 제임스의 역할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분업은 견고는 하지만 때로 유동적이어서 철저하진 않은 셈이다.


커크는 이 곡에서 기타 솔로에 가장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지미 헨드릭스와 스티비 레이 본, 그리고 메탈리카 멤버들이 모두 사랑하는 씬 리지의 프레이즈를 즐기는 커크 해밋은 리듬/리드 기타 외 가끔씩 백킹 코러스까지를 담당하며 자신의 존재를 밴드에 새겼다. 그는 라스와 마찬가지로 테크니컬 솔로 보다는 밴드의 곡에 최적인 릭을 뽑아내는데 항상 집중하는 연주자이다. 가령 4집의 ‘One’과 그가 가장 뿌듯해하는 [Load]의 ‘Hero Of The Day’ 기타 솔로를 들어보면 커크의 기타리스트로서 지향점을 대략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다.


클리프 버튼과 제이스 뉴스테드에 이어 메탈리카의 베이스를 잡은 로버트 트루히오. 그는 수어사이덜 텐던시스, 인펙셔스 그루브, 오지 오스본 밴드, 그리고 일본에서만 정규 앨범과 라이브 앨범을 각 한 장씩 남기고 산화한 매스 멘탈(Mass Mental)을 거친 나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베이시스트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Some Kind Of Monster]에서도 다뤄졌듯 트루히오의 메탈리카에서 역할은 ‘세션 멤버’가 아닌 ‘정식 멤버’로서 메탈리카에 몸 담는 것 즉, 잠시 스쳐가는 손님이 아닌 주인의식을 가지고 밴드 활동에 임해주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터프한 핑거링 주법과 그르렁대는 이펙터로 오디션에서 단박에 멤버들을 사로잡은 그는 밥 락이 스튜디오에서 베이스를 잡은 [St. Anger] 때부터 이번 신보까지 잘 버티어 이젠 명실상부 ‘메탈리카의 베이시스트’가 되었다. 로버트에겐 ‘존재’가 곧 밴드에서 자신의 역할이요 의무였던 것이다.


헤비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역작 [...And Justice for All]


그리고 메탈리카 음악의 ‘디렉터’ 라스 울리히가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밴드의 드러머이지만 본질적으론 메탈리카의 음악 감독에 가깝다. 예컨대 과거 휴 태너와 제임스 헷필드가 함께 쓴 ‘hit the lights’는 라스가 관여하면서 좀 더 나은 어레인징을 입힐 수 있었고, 레인보우의 [Difficult To Cure]에서 솜씨가 마음에 들어 당시 엔지니어였던 플레밍 라스무센을 프로듀서로 과감히 섭외해 [Master Of Puppets]와 [...And Justice For All]을 발매한 일도 분명 라스의 안목과 감각에 힘 입은 것이었다. 물론 그는 믹싱 장비의 수치 하나까지 따지고 넘어가는 완벽주의자여서 때론 스태프들과 멤버들을 힘들게 하기도 했는데 4집에서 제이슨 뉴스테드의 베이스 소리가 증발한 것은 그 중 대표적인 예이다. 자기 주장이 강한 라스가 자신의 드럼 톤을 부각시키기 위해 제이슨의 베이스를 제물로 삼고 만 것이다. 이러한 라스의 강박 성향은 종종 밴드의 또 다른 핵심인 제임스 헷필드와 불화를 낳기도 하는데 이는 타고난 성정이자 밴드를 위한 발전적 마찰이므로 이젠 당사자들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 보인다. 메탈리카의 역할분담은 이처럼 유기적으로 그러면서도 각자의 고유 영역을 꼼꼼히 확보한 가운데 이루어져 왔다. 유연하면서도 옹골찬 것이다. 당연히 빈틈이 있을 리 없다.


제이스 뉴스테드가 함께 할 당시 메탈리카. 헤어스타일을 보니 [Load], [Reload] 시절 같다.


그리고 성실함. 성실은 기본적으로 집중력과 체계에서 비롯된다. 메탈리카 멤버들이 유난히 성실해보이는 이유는 앞서 말한 밴드 내 분업 체계, 그리고 집중력 없인 연주해낼 수 없는 곡들의 꽉찬 구성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발매 간격은 길어도 꾸준히 실험과 회귀를 병행하는 음반 활동, 세계 구석구석을 다니며 팬들과 소통하는 공연 활동이라는 팩트 역시 메탈리카가 얼만큼 성실한 밴드인지를 보여주는 요소들이다. 성공했다 해서 앨범도 공연도 모두 게을리 했거나 손을 놓아버렸다면, 그리고 매 결과물이 실망의 연속이었다면 메탈리카는 결코 이번 고척 스카이돔 공연을 성사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신곡 3곡, 과거와 현재를 잇는 사다리


오는 11월18일 공개될 메탈리카의 통산 10번째 정규작 [Hardwired... To Self-Destruct]


한국인이 메탈리카를 좋아하는 이유에 관해 이렇다 저렇다 말이 길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좋은 음악’일 수 밖에 없다. “지식이 없는 성실은 허약하고 쓸모 없다”는 사무엘 존슨의 말처럼 메탈리카가 제아무리 성실해도 정작 곡이 별로라면 그 부지런함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다. [Death Magnetic] 이후 메탈리카가 신곡을 쓰기 시작했다고 트루히오로부터 소식이 전해진 것이 지난 2011년 10월의 일. 당시만 해도 메탈리카는 릭 루빈과 새 앨범을 논의 중이었다고 한다. 라스 역시 신작은 9집의 연장선이 될 것이라고 말해 이번에도 프로듀서는 릭 루빈이 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라스가 앨범 완성을 장담한 2013년이 다 지나도록 밴드의 복귀는 요원해보였다. 다음 해인 2014년도 속절없이 지나나 싶었는데 그해 3월 ‘Lords Of Summer’라는 싱글을 발표하며 기다림에 지친 팬들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축여주었다. 물론 그게 다였지만.


1집과 5집을 더한 듯한 신보의 첫 싱글 'Hardwired' 뮤직비디오


다시 1년 뒤 새 앨범을 위해 20곡을 써두었다고 라스가 롤링스톤에서 언급, 2015년 11월에 커크가 최종 데드라인으로 못을 박은 시기(2016년 말이나 2017년 초)가 마지막 약속이 되면서 메탈리카의 통산 열 번째 정규 앨범 발매는 공식 통보되었다. 프로듀서는 예상했던 릭 루빈이 아니었고 식 오브 잇 올의 [Built To Last]와 시스템 오브 어 다운의 데뷔작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렉 피델만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렉은 마이크 포트노이가 극찬한 [Death Magnetic]에서 이미 릭 루빈과 함께 메탈리카 사운드를 디자인 해본 인물. 먼 발치에서 전체를 총괄하는 릭 루빈의 스타일과 달리 디테일을 챙길 줄 아는 피델만의 스타일은 확실히 흐트러졌던 카메라 초점을 맞춘 듯 메탈리카의 사운드에 시원하게 숨통을 터준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중순부터 차례차례 공개된 신곡 3곡을 들어봤을 때 그것은 블랙앨범 이후 최고의 톤이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죽음에 영감 받아 쓴 신보의 두 번째 싱글 'Moth Into Flame' 뮤직비디오


뮤직비디오는 ‘Enter Sandman’을 떠올리게 하고 곡 스타일은 ‘Holier Than Thou’와 ‘Metal Militia’를 합친 듯 했던 첫 싱글 ‘Hardwired’는 짧고 빠른 곡으로 10집의 대문을 열고 싶어 한 라스와 제임스의 의지가 반영된 하드코어 펑크 트랙으로, 과연 미스피츠의 ‘Green Hell’을 좋아하는 이들의 성향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었다. 여기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역시 라스의 드럼 톤이었는데 특히 5집 이후 가장 예리한 스네어 톤은 신작을 지탱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으로 보였다.


기습 공개해 팬들의 뒤통수를 갈긴 ‘Hardwired’ 발표 후 한 달이 지나고 두 번째 싱글 ‘Moth Into Flame’이 팬들을 찾았다. 알코올 중독으로 불과 27세에 생을 마감한 천재 싱어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다큐멘터리 영화 [Amy]를 본 제임스가 그의 재능을 안타까워 한 끝에 써내려간 이 5분50초짜리 곡은 분명 4집과 9집의 복잡한 구성, 대곡 성향을 물려받은 트랙이다. 그렉 피델만의 섬세한 손길이 그대로 느껴지는 악기 톤, 멜로디를 강조한 코러스, 팬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다운 피킹 헤드뱅잉 타임, 라이브에서 더블 베이스 드러밍이 느려졌거나 아예 플레이를 누락시킨다는 일각의 비판을 듣기라도 한 듯 미련 없이 밟아주는 라스의 빠른 킥 플레이는 차라리 ‘회춘’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이다. 이 성향과 수준은 세 번째 싱글 ‘Atlas, Rise!’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메탈리카 스타일의 모든 것이 담긴 신보의 세 번째 싱글 'Atlas, Rise!' 뮤직비디오


할로윈 데이에 맞춰 나온 [Hardwired... To Self-Destruct]의 세 번째 싱글은 두 번째 싱글보다 41초가 더 긴 6분31초 러닝 타임을 가진 트랙으로, 그 구성에서 극적인 성향은 앞 싱글과 거의 비슷한 느낌을 준다. 전체 곡을 리드하는 것은 라스의 드럼이지만 4분25초 브릿지에서 들리는 트윈 기타의 유니즌 플레이는 분명 이들이 젊은 시절 영향 받은 영국 헤비메탈(NWOBHM)의 환영이다. 메탈리카의 트레이드 마크인 싱코페이션 다운 피킹이 시작부터 끝까지 작렬하는 모습이 아직 들어보지 못한 더블 앨범 속 9곡을 더욱 기대케 한다. 이처럼 세월이 지나도 세월을 비웃는 좋은 음악을 만들 줄 알기에 메탈리카는 다시 메탈리카로서 팬들 앞에 당당할 수 있는 것이리라. 라스의 말처럼 이들은 긍정적인 에너지로 공격적인 음악을 들려주는 세상 단 하나의 록밴드이다.


* 이 글은 '음악을 듣는 새로운 기준' 그루버스(groovers+)에 실린 글을 옮긴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Lady GaGa - Joann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