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대 Oct 13. 2019

음악을 통한 자아실현

대중음악계의 한 경향 '싱어송라이터'

* 이 글은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발간하는 웹진 <KOMCA TODAY> 7, 8, 9월호에 기고한 것입니다.


지난 5월20일 워너원의 메인보컬 김재환이 발표한 앨범 [Another]는 김재환 본인이 모든 트랙의 작곡에 관여한 것은 물론 작사가로도 6곡 중 4곡에 참여한 야심찬 결과물이었다. 모든 곡들에 김재환 외 공동 작곡가들 이름이 첨부돼있고, 가사 역시 김재환 혼자 힘으로 쓴 것이 없었음에도 세간은 이를 ‘싱어송라이터로서 가능성을 입증’한 김재환의 솔로 데뷔로 화려하게 수식했다. 김재환은 관련 쇼케이스 현장에서 “제가 어렸을 때부터 싱어송라이터에 대한 욕심과 꿈이 있어 연습을 많이 했다”는 말로 언론과 팬들의 관심에 화답했는데, 그것은 수동적 아이돌 가수에서 벗어난 능동적 ‘싱어송라이터 김재환’으로서 내비친 일종의 자신감이기도 했다.     


걸그룹 원더걸스 출신 뮤지션 선미는 2018년작 [WARNING]에서 ‘Addict’와 ‘사이렌 (Siren)’, ‘Black Pearl’과 ‘비밀테이프’ 작곡에 참여했다. 가사는 수록된 7곡들 중 ‘가시나’와 ‘주인공’을 뺀 전곡을 선미 자신이 직접 썼다. 그는 2019년 8월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14곡 저작물을 등록한 저작권자로, 아이돌 출신이라는 혹자들의 편견에도 아랑곳 않고 싱어송라이터로서 입지를 꾸준히 다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싱어송라이터의 유행. 과거 한대수가 촉발시킨 낯선 개념이 반세기 가까이 지나 비로소 대중화 되고 있다.


지난 7월 22일엔 세훈과 찬열도 엑소의 첫 듀오로서 미니앨범 [What A Life]를 발매했다. 둘은 남들의 곡을 받기만 한 엑소 때와 달리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앨범 제작에 참여한 것을 강조하며 자신들이 들려주고 싶은 음악, 그 음악이 가진 진솔함과 진중함을 거듭 피력했다. 아이돌의 싱어송라이터 선언은 세계적인 그룹으로 우뚝 선 방탄소년단도 예외가 아니었으니, 멤버 뷔는 올해 ‘풍경’이라는 곡을 포함해 팀 내 보컬 멤버들 중 가장 많은 7곡 저작권을 기록해 화제가 됐다.     


시작부터 ‘아이돌 싱어송라이터’ 사례들을 언급한 이유는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소극적이고 덜 창의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집단이 바로 저들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곡을 직접 써서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는 인디 팝·록 씬을 포함, 국내 대중음악 시장에선 이미 보편화 된 일임에도 정작 아이돌들이 자신의 곡을 썼다고 나서면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것이 그간 평단과 대중의 반응이었다. 그럼에도 제2의 지드래곤, 지코, 정용화가 되려는 자작돌(작사·작곡을 스스로 하는 아이돌을 일컫는 말)들의 시도는 그 근거 없는 선입견에 맞서려는 듯 더욱 전면적이다. 재밌는 건 근래 부각되고 있는 이들의 적극성과 창작을 향한 몸부림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현상으로 감지되는 싱어송라이터 유행의 온도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인데, 과거 한대수가 촉발시킨 낯선 개념이 반세기 가까이 지나 비로소 대중화 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떤 이유가 가수·뮤지션들을 끊임없이 싱어송라이터라는 고지를 향하도록 만드는 것일까. 이 글은 그 이유를 따져보기 위해 쓴 것이다.


‘자아실현’이라는 본능     


신중현, 김민기, 조용필, 서태지, 신해철, 유재하, 유희열, 윤상, 정재일, 김건모, 김광석, 김광진, 김동률, 김윤아, 아이유, 이상은, 이승환, 이적, 장범준, 조규찬, 선우정아, 우효, 하현우, 마이클 잭슨, 프린스, 스티비 원더, 조지 마이클, 빌리 조엘, 에드 시런, 레이디 가가, 찰리 푸스, 테일러 스위프트, 라나 델 레이, 빌리 아일리시.     

 

시대도 장르도, 창법도 작법도 다른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바로 자기 곡을 자기가 써서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들이란 것이다. 이들 중엔 김건모처럼 가수를 하다 작곡을 병행한 이도 있고 윤상처럼 작곡가가 가수를 병행한 경우도 있다. 물론 조용필이나 서태지, 프린스처럼 아예 처음부터 모든 걸 도맡아 한 사람들도 이 명단은 포함하고 있다. 싱어송라이터는 말 그대로 내가 직접 가사를 쓰고 쓰인 가사에 멜로디와 리듬을 입혀 노래까지 도맡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지난 9월 25일 홍대 웨스트브릿지 라이브홀에서 진행된 <제1회 싱어송라이터 페스티벌>이 단 부제 ‘만들고 부르다’는 바로 이 뜻을 압축한 말이었다.     


싱어송라이터는 예술가다. 예술가는 어떤 식으로든 자기를 표현하고 표현한 결과물을 대중과 공유하는 사람이다. 예술가의 정체는 기본적으로 ‘내 것’에서 비롯된다. 내 것이 없는 예술가는 자기표현에 서툴렀거나 실패한 사람이고 때문에 예술가로서 기본 자질을 상실한 사람이다. 가수와 작곡가가 싱어송라이터로 불리고 싶어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래서 결국 자기표현을 통한 자아실현에 있다. 자아실현이라는 욕구는 자유의 영역 이전에 사람의 본능이다. 이는 그 유명한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설에서 가장 꼭대기를 차지하는 가치로, 스스로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려는 욕구인 동시에 자기완성에 대한 갈망이기도 하다. 앞서 말한 발군의 싱어송라이터들은 바로 그 잠재력과 갈망을 각자만의 동기부여로 실현한 사람들이고 그로 인해 성취감과 행복을 누린 사람들이다. 창작은 고독을 수반하지만 고독을 통과한 창작물은 그것을 시도한 인간에게 만족과 기쁨을 가져다준다. 요컨대 싱어송라이터란 자기만족과 행복을 누리려 음악으로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사람들이다.     


작금 최고 인기를 얻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빌리 아일리시의 빅히트 싱글 'Bad Guy' 뮤비.


남다른 개성, 아이디어, 표현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요즘 싱어송라이터들이 많은 건 그러므로 당연한 현상이다. 유행이 되어 버린 오디션 프로그램, ‘방구석 스타’를 가능케 한 유튜브를 통해 싱어송라이터들은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데뷔하고 길러진다. 하나만 하는 가수·작곡가와 성숙·성장이라는 단서가 붙는 싱어송라이터는 용돈을 받는 학생과 스스로 돈을 버는 사회인의 차이에 가깝다. 대중 역시 노래만 부르거나 작곡만 하는 사람보단 둘 다를 할 줄 아는 사람에게 마침내 ‘예술가’라는 권위를 부여한다. 과거 비틀즈 멤버들이 자신이 만든 곡은 반드시 스스로 부르는 원칙을 지켰던 이유도 싱어송라이터로서 자아실현, 뮤지션으로서 성장과 성숙, 예술가로서 자질을 증명하려는 본능적 과정이었다.     


지난 7월 24일. EXO-CBX, 러블리즈 작곡가로 활동해온 신유미가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미니앨범 [So Addicted To You]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열었다. 신유미는 블랙핑크와 트와이스, 갓세븐과 데이식스 등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보컬 지도를 비롯해 엠넷 예능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2>, <프로듀스 X 101> 시즌에선 보컬 트레이닝을 맡기도 했다. 자신의 첫 미니앨범을 위해 3년을 기다린 신유미는 이날 현장에서 “너무 기다렸던 시간”이라며 싱어송라이터로서 첫 발을 뗀 소감을 밝혔다. 그동안 남들에게만 음악을 줘온 신유미는 그날 자신의 음악으로 비로소 자아실현을 이룬 것이다. 선미도 그랬다. 그 역시 원더걸스를 떠나 홀로서기를 해오며 밝히길 자신의 음악이 “선미라는 장르”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내 것’을 찾아 헤매고 추구하는 싱어송라이터의 자아실현 의지는 이처럼 절박하고 질기다.


‘싱어송라이터 양성소’ 실용음악학과     


싱어송라이터의 기본은 작곡이다. 곡이 있어야 비로소 부를 수 있다. 엘튼 존처럼 버니 토핀과 분업으로 작사에서 거리를 둔 경우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에겐 일단 자신만의 곡들이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은 히트곡들을 그는 갖고 있다.     


국내엔 그런 엘튼 존이 되려는 젊은이들이 많다. 아니 많아졌다. 바로 실용음악학과 학생들이다. 대한민국 교육부가 말하는 실용음악학과란 “탄탄한 음악기초이론을 습득하고 장르별 전공심화교육을 강화해 현대 대중문화의 고급화를 선도하는 전문 공연예술음악인 양성을 교육목표로 두고 있는 곳”이다. 이 학과는 “각종 실용음악에 대한 이론과 창작, 연주기법 등을 공부해 대중음악의 독자성과 창의성을 유도”하고 “전통 및 현대 대중음악과 접목을 시도함으로써 음악 세계에 실험적 접근을 꾀하는” 데 존재 의미를 둔다. 교육부는 덧붙이길 “K-POP의 영향으로 인기가 계속 지속될 전망”이라며 해당 학과의 미래를 긍정했다.     


한국에서 실용음악과를 처음 연 곳은 서울예술대학으로 2014년 작고한 고 정성조 씨가 1988년에 개설했다. 4년제 대학으론 1997년 한서대학교와 1998년 동덕여자대학교가 각각 영상음악과, 실용음악과를 서울예술대에 이어 열었다.     


호원대학교 출신 김필이 부른 비틀즈의 고전 'Yesterday'.


실용음악 관련 학과를 가진 국내 대학은 전국 50여 군데에 이른다. 이곳들 중엔 아예 ‘싱어송라이터과’를 따로 둔 대학도 있다. 2019학년도 대학 수시원서 접수 결과를 보면 이러한 실용음악과에 학생들이 대거 몰린 것으로 나타났는데, 최고 경쟁률을 기록한 모집 단위는 서경대 실용음악학과 보컬 전공으로 3명 모집에 1863명이 지원해 무려 621.00대 1이라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2위는 한양대(에리카 캠퍼스) 실용음악학과 보컬전공으로 4명 모집에 1910명이 지원, 477.50대 1 경쟁률을 찍었다.     


이처럼 시공간을 초월하고 프로와 아마추어 차이를 헐겁게 만든 디지털 시대 흐름에 맞춰 늘어난 대학의 실용음악학과들은 싱어송라이터를 양성하는 가장 합리적인 장소로 거듭났다. 실용음악과는 여러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유튜브가 학생, 청년들에게 ‘나도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꿈을 심어준 데 이은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훈련장’ 역할을 톡톡히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프로에 버금가는 작곡, 연주, 노래 실력을 갖춘 청춘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제2의 장재인과 김필(호원대학교), 이진아(서울예술대)와 언어의 정원(동덕여대)을 꿈꾸며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배출되고 있다. 바야흐로 실용음악학과를 통해 싱어송라이터의 체계적 공급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싱어송라이터 등용문 유튜브와 오디션 프로그램     


과거엔 프로 뮤지션이 되기 위해 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 같은 ‘대회’에 나가 상을 받거나, 그에 맞는 재능을 영향력 있는 타인에게 증명해내야만 했다. 비록 전설의 싱어송라이터 유재하의 이름을 내건 음악경연대회는 지금도 치러지고 있지만 이젠 그런 ‘대회 입상’ 없이도 당당히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유튜브 덕분이다. 과거 서태지가 공중파 TV를 통해 자신을 알린 예도 마찬가지, 스마트폰과 재능만 있으면 어떤 이든 자신의 끼를 어필할 수 있는 현실 앞에서 그 특별한 사례는 덧없는 화석이 됐다. 이처럼 심사위원 자격이 전문가 집단에서 대중으로 옮겨가며 예비 스타들은 번잡한 절차, 구차한 예선에서 해방돼 자신의 능력 하나만 증명 하면 되는 시대를 맞았다. 이 기회와 평가의 민주주의 시대를 딛고 저스틴 비버와 두아 리파, 펜타토닉스와 테사 바이올렛 등이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국내에도 스팅의 원곡 ‘Englishman In New York’을 커버한 라이브 영상으로 조회수 100만회를 넘겨 유명해진 싱어송라이터 김수영이 있다. 유튜브는 어느새 음악으로 성공하려는 황금알들이 저마다 부화를 꿈꾸는 가장 확실하고 거대한 인큐베이터가 됐다.     


여기에 또 하나 싱어송라이터의 등용문이 돼준 가장 강력한 문화 이슈는 앞서도 언급해온 TV 오디션 프로그램들이었다.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 <K팝스타>, <고등래퍼>와 <쇼미더머니>, <TOP밴드>와 <슈퍼밴드> 등 단순 나열만 해도 숨이 찬 이 확고한 유행은 학교와 학원에서, 또는 집에서 저마다 칼을 갈아온 실력파들이 대중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차별 없이 제공했다. 그렇게 보통 사람과 특별한 사람 사이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면서 대중문화 지층을 뒤흔든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그야말로 불멸할 듯 보였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유행에 편승해 ‘난무’한 끝에 방영 후 출연자에 대한 처우, 조작 의혹, 지나친 경쟁 구도와 기준 없는 심사 잣대 등이 빌미가 되면서 화려했던 전성기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의 관심과 신뢰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TV 출연’은 여전히 스타를 꿈꾸는 이들이 한 번은 겪어보고 싶은 시험대임엔 변함이 없다. 미래 싱어송라이터들은 유튜브와 더불어 오디션 방송을 소비해 자신을 음악 소비자들에게 알리려 지금도 무던히 애쓰는 중이다.     


스팅의 'Englishman In New York'을 원맨밴드로 소화해 조회수 1,069,032회(2019년 10월 13일 기준)를 기록한 유튜브 스타 김수영.


좋아하는 일을 하며 부와 인기를 함께 누릴 수 있다는 측면에서, 무엇보다 내가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스스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싱어송라이터는 매력적이다. 물론 곡을 쓴다 해서 모두가 5년 연속 저작권료 1위를 차지한 조영수가 될 순 없다. 다만 자아실현이란 면에서 싱어송라이팅은 의미 있는 것이고, 국내 대중음악의 수준과 경쟁력을 높여 내실을 다진다는 측면에서 싱어송라이터 유행은 바람직해 보인다. 단, 그것이 꼭 실용음악학과에서처럼 특정 교육을 받은 사람들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교육 제도를 떠나 한 개인의 재능과 노력에 더 크게 좌우되는 예술은 끼가 있고 할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너나없이 성공이라는 문턱을 넘어볼 수 있도록 한다는 데서 평등하다. 전문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도 한국 최고 흥행 작곡가가 된 조영수, 국내 최고 싱어송라이터이면서 악보를 볼 줄 모르는 강산에는 그 분명한 예시다.




매거진의 이전글 헤어진 자의 따뜻한 오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