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스물 그리고 새우깡

by 은선

열아홉, 스물.

우리는 초여름의, 아직 다 영글지 못한 과실 같았다.
일찍 들이닥친 장마에 금방 물러졌고,
뜨거운 볕 아래선 쉽게 말라버렸다.
벌레에 갉아먹히고, 전염병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몸과 마음으로 우리는 어른이 되려 애쓰고 있었다.


그 혼돈 속에서 친구가 되기는 오히려 쉬웠다.
아니, 친구가 꼭 필요했다.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처음 겪는 사회생활의 부당함,
그리고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분에 넘치는 월급.

그 몇 가지만 공감돼도 우리는 곧 친구가 됐다.


공장 입사 첫날부터 백 명이 넘는 열아홉 살들은 ‘동기’로 묶였다.
새벽부터 일어나 구보를 하고, 교육을 받고, 얼차려를 받으며 며칠을 함께 보내다 보니
낯선 아이들과도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학교에서의 우정이 비슷한 성격이나 취향, 가치관이 맞아야 가능했다면
공장에서는 단 하나, ‘동기’라는 조건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애도 나와 같은 동기였다.

저녁 늦게 얼차려를 받을 때 옆에서 어깨동무해 주던 아이.
‘팔 벌려 뛰기’ 마지막 숫자를 말해선 안 된다는 규칙을 깼을 때,
씨익 웃으며 넘겨주던 아이.

나와 비슷한 키, 깡마른 몸, 다정한 목소리.
그 애는 내 회사 생활의 첫 단짝 친구가 되어주었다.


한 달간의 신입 교육이 끝난 후
우리는 각자 다른 공정에 배치됐지만 같은 교대조라 출퇴근도, 휴일도 함께였다.

퇴근 후엔 과자와 라면을 나눠 먹으며 밤새 수다를 떨었고,
휴일엔 영화를 보고, 지하상가에서 옷을 샀다.

서로 점점 가까워졌고, 급기야 같은 기숙사 방을 쓰고 싶어졌다.


신청서를 들고 기숙사 동장 언니를 찾아갔을 때,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친해도 같이 살면 결국엔 싸우게 돼. 나중에 방 바꿔달라 할걸?”

우리는 뒤에서 수군댔다.

“우린 그런 애들과 달라.”
“진짜 친구가 없어서 저런 말 하나 봐.”

그리고 우리는 같은 방에 배정되었다.


그 애와 나의 감정의 결은 비슷했다.
조용히 스며든 우울감, 설명되지 않는 상실감이
우리 둘 사이를 관통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더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서로의 고향에도 가보기로 했다.

그 애는 소중한 휴가를 내 고향 시골까지 와주었다.
내가 다녔던 학교, 살던 집을 함께 돌아보았다.
그 애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리고 내 휴가엔 그 애의 고향을 찾았다.
처음 가본 낯선 동네, 집은 마치 공용 공간처럼 느껴졌고, 그 애의 방은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알게 됐다.
그 애는 고아원에서 자랐고, 이곳은 목사님 부부의 집이며,
그분들이 부모님 같은 존재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이상한 감정이 올라왔다.

어렵게 번 돈을 뺏어갈 부모가 없다는 게 부러웠고,
부부 싸움 같은 걸로 생긴 상처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질투가 났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난 엄마도 있고, 오빠도 있고, 돌아갈 집도 있으니까.’
하는 미성숙한 우월감에 사로잡혔다.

그 감정은 나 자신에게도 낯설고, 부끄러웠다.


우리는 하루 8시간씩 일했고
나머지 16시간을 거의 붙어 지냈다.
그 애와의 관계에 균열이 나기 시작한 건 그즈음부터였다.

사소한 오해들이 자주 다툼이 되었고,
갈등이 쌓였다.

내 옷 입는 스타일을 따라 하는 듯한 모습,
다른 친구에게 질투를 보일 때,
사소한 일에도 잘 삐지는 태도,
돈을 너무 아끼는 생활 방식…

그 애는 집에 돈을 부치지 않아도 됐는데,
무엇이 그토록 절약하게 만들었을까.
그 모습이 어느 날은 짠했고, 어느 날은 얄미웠다.
그리고 결국은 미움으로 바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나란히 화장대 앞에 앉아
커다란 노래방 새우깡을 먹고 있었다.

과자 봉지가 부스럭거렸다.
기름에 번들거리는 손가락,
쩝쩝대며 새우깡을 입에 넣는 소리.
'바삭'하고 유난히 큰 씹는 소리.

내가 산 새우깡이었는데

내 손보다 더 자주 드나들던 너의 손이
그날따라 그렇게 얄미워 보였다.

‘먹는 모습이 싫어지면 끝’이라더니,
정말 그 말처럼 내 감정은 그 애의 모든 행동에 전염병처럼 퍼져 있었다.

나는 새우깡 봉지를 내밀며 말했다.
“너나 다 먹어.”

그 애는 멈칫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곧장 기숙사 동장 언니에게 가서 말했다.
“저 애랑 못 살겠어요. 방 바꿔주세요.”

언니는 기다렸다는 듯 씩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그렇게 우리는 방을 갈랐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이상하게도, 별로 아쉽지 않았다.
공장의 고된 노동 속엔 ‘동기’라는 이름만으로도 친구가 되는 사람이 넘쳐났다.

그 애와의 우정은 그 어떤 이별의 의식도 없이 그저 그렇게 끝나버렸다.


그땐 몰랐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 애에게 사과하고 싶어질 줄은.

그땐 내 마음 편하자고 그렇게 떠났고,
지금도 내 마음 편하자고 사과하고 싶어진다.

여전히, 이기적인 나라는 걸.

그래도 지금은 안다.

그 짧았던 인연이내 안에 깊은 흔적으로 남아서

누군가를 또다시 밀어내려 할 때,
잠깐 멈춰 돌아보게 된다는 걸.

그 시절, 나는 미숙했고
그 애는 다정했고
우리 우정은 너무도 짧았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