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억은 각자의 몫
2000년대 초반 우연찮은 기회에 파리에서 후배와 2년 가까이 민박집을 운영했다. 젊은이들(주로 대학생)이 한 달 정도 일정으로 유럽(영국, 독일, 프랑스, 이태리, 스위스) 여행하고, 싸이월드에 올리는 게 유행할 때다.
파리에서 아웃하는 여행자들 대부분은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으로 민박집을 들어선다. 너도나도 멋진 유럽 사진을 싸이월드에 올리기에 이에 질세라 부모를 졸라서, 알바비를 모아서 나왔는데 건축과 유물에 대한 이해는 무지한데, 한 도시에 길어야 2~3일(심지어 반나절) 머물면서 유명하다는, 비슷비슷하게 생긴 성당과 미술관, 박물관을 바삐 돌아다녀야 하니 몸과 마음이 축날 수밖에.
간혹 민박집에만 머무는 이들이 있다. 더 이상 돌아다닐 체력이 남아있지 않거나 돌아다녀봐야 별 꺼 없더라며 거금을 들여서 나왔지만 본전 생각을 포기한 이들이다. 그들과 동네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마시고, 케밥집 들러 푸짐한 케밥 사서 공원 가고, 근처 중국식 뷔페에서 식사를 같이하곤 했다. 요즘 유행하는 여행자로 살아보기의 초기 버전이랄까?
저녁엔 민박집 지하 공간(아지트라 불린 곳)에서 와인 또는 맥주를 마시며 오늘 하루 자신이 겪은 여행의 특별함을 늘어놓는다. 다른 여행자들이 에펠탑, 루브르, 베르사유, 샹젤리제에서 찍은 사진을 자랑할 때, 하루 종일 민박집 머물며 메트로역 입구에 있는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문했는데 뜨거운 커피에 술을 부어주더라, 건너편 중국식 뷔페 종업원 첸은 중국에서 온 지 3년 됐고, 버스 정류장 근처 케밥집 양 많고 푸짐하다는 별스럽지 않은 동네 여행 무용담으로 응수한다.
여행은 특별하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나에게 낯선 여행지는 나에게만 낯설 뿐 그곳을 살아가는 이들에겐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공간이다. 여행은 선택이고 만족은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