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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쪙이 Apr 14. 2019

나의 폭식 일기

먹는다는 행위가 괴로움이 될 때



저는 약 5년 정도를 폭식증과 함께했습니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마음이 힘들거나 고삐가 느슨해지면 다시 폭식 증세가 도지곤 합니다.


원래부터 폭식하는 버릇이 있던 것은 아닙니다. 저는 중학생 때까지 본가에 있었는데, 그때는 주어진 세 끼를 적당히 먹고 간간이 간식을 먹는 일반적인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되면서 기숙사에 들어갔고, 매일 야식과 편의점 음식들을 먹으면서 급속도로 살이 찌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는 절대 먹지 않던 기름진 배달음식을 야식으로 먹었고, 위가 점점 늘어나면서 쉴 새 없이 매점을 들락거렸습니다. 과하게 먹은 음식 덕분에 체하는 날이 점점 늘었고, 당장 속이 편해지기 위해 억지로 토를 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저는 입학하고 반년 만에 8kg가 쪘습니다.


주변에서는 계속 살을 빼라고 했습니다. 안 그래도 살이 붙어 속상한데, 저보다 주변에서 더 난리를 치며 살을 빼라 그러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쉽게 뱉었지만, 저는 매일매일 여러 사람에게 같은 소리를 듣는 셈이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죠. 결국 저는 다이어트를 시도하게 됩니다. 제대로 된 상식 없이 시작한 다이어트가 무엇이었을까요? 1일 1 식이었습니다. 처음 일주일은 견딜 만했습니다. 살도 막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니 미친 듯이 음식이 생각났습니다. 결국 매점으로 달려가 라면과 과자를 사서 입에 가득 밀어 넣었습니다. 아, 괜찮아. 오늘만 이렇게 먹고 내일부터 안 먹으면 되는 거야. 저는 아마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음식을 먹어치웠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이런 다이어트를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폭식과 절식을 반복하며, 요요로 인해 총 16kg가 붙었습니다. 절망스러웠습니다. 제 몸에 붙어있는 살들이 너무 혐오스러웠습니다. 자신감도 떨어졌고, 사람들이 늘 제 살을 욕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시달렸습니다. 그 와중에 대학교 입학을 했습니다. 대학교에 와서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제 식생활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매일같이 과음과 폭음을 했고, 목구멍에 억지로 손가락을 넣어 토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술병을 앓았는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왜냐고요? 이게 비정상이란 자각조차 없었거든요. 저는 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룸메 없이 혼자 기숙사에 남아있던 날이었어요. 혼자 야채곱창 2인분을 시키고, 밥까지 비벼서 꾸역꾸역 입에 밀어 넣었습니다. 술도 당연히 마셨고요.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 모두 토해냈습니다. 변기를 붙들고 토하다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이게 정상인가?’ 정상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극단적인 다이어트와 폭식을 오가고, 하루 이틀 굶다가 식욕을 이기지 못하고 편의점에서 한 봉지 가득 먹을 것을 사 와 배가 터질 것 같을 때까지 먹는 이 생활이 말입니다. 목구멍도 너덜너덜해지고, 매일같이 소화불량에 시달리는데 이게 정상일 리가 없었습니다. 그때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아, 나 폭식증인가 보다.


그렇지만 뭔가 뾰족한 해결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식욕은 통제가 되지 않았고, 제 살은 늘어만 갔습니다. 하필 그때 룸메는 먹는 양이 많은 사람이었고, 저는 매일 룸메와 배달음식을 시켜 야식을 먹곤 했습니다. 제가 배부르면 안 먹어도 되는데, 그게 되질 않았습니다. 그때 제가 밥을 먹는 기준은 배부름이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모든 음식이 없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배가 터져라 꾸역꾸역 집어넣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저를 이해해주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먹는 것 하나 조절하지 못하는 제가 한심하고 바보 같다고 여길 것 같았고, 실제로 그런 이야길 면전에서 몇 번 듣기도 했으니까요.


그 와중에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음식을 끊을 때면, 하루 종일 음식 생각에 빠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오전에 우연히 닭발 사진을 보면, 잠들기 전까지 닭발 생각이 머리를 점령하는 식이었습니다. 수업시간에 집중이 안 될 지경이었습니다. 이건 병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무언가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명상을 하러 선원에 들어갔습니다. 주변에 편의점 하나 없었고, 세 끼만 주어졌으며, 매일 아침 108배를 하였고, 규칙적인 시간표대로 생활하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10일을 보내고 나니 살이 조금 빠졌습니다. 그리고 먹는다는 행위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먹는 게 인생의 즐거움이라 여겼는데, 거기서는 아무거나 주는 대로 먹어도 나쁘지 않았거든요. 먹는 것이 그렇게 내 삶에 큰 의미가 있는 건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웃긴 것은, 그렇게 고민을 하다 보니 배부르면 수저를 놓는 정상적인 식사가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았다는 것입니다. 너무 오랜 시간 폭식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평범한 식사가 무엇이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선원에 갔다 오고, 룸메이트가 바뀌면서 야식을 먹는 일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저것 건강한 식단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죽어라 굶어도 빠지지 않던 살이 점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습관이었던 토를 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당연히 술도 줄이기 시작했죠. 그렇게 생활을 바꾸니 좀 살만해졌습니다. 사실 그렇다고 살이 드라마틱하게 빠지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오랜 암흑기를 지나 마침내 조금 사람답게 산다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식욕의 노예가 되어 하루 종일 먹을 것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눈물이 날 만큼 좋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는 음식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맛집 같은 곳을 찾아다니게 된 것은 다 술 때문이었습니다. 술에 어울리는 음식을 찾다 보니 어느 순간 음식에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저는 정말 피맥을 좋아했습니다. 피자는 제 소울푸드라고 이야기하고 다녔죠. 그러나 건강 문제로 술을 끊으니, 거짓말처럼 피자가 생각조차 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그때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내가 피자를 그렇게 좋아했던 게 아니었구나. 다른 음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맛집을 찾아다녔지만, 정작 저는 주는 대로 먹는 사람이었습니다. 음식이 맛이 없더라도 최소한 먹을 수 있는 수준이라면, 아무 불만 없이 잘 먹는 사람 말이에요.


심지어 좋아하는 음식도 없었습니다. 그냥 소화에 지장을 주지 않는 음식이면 다 잘 먹었습니다. 심각하게 위염을 앓고 나서, 한 달 정도를 채소와 과일만 먹었습니다. 그 당시 제 식단을 접한 사람들은 네가 토끼냐며 혀를 내둘렀지만, 저는 정작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 식단에 별다른 불만 없이, 한 달 동안 잘 먹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살라면 아무런 불만 없이 살 수 있습니다. 저도 제 자신이 놀라웠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괴롭지 않았고, 오히려 꽤 살만했습니다.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한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그게 그렇게 큰 문제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으로부터 깨닫게 된 사실은, 제가 생각보다 먹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늘 음식에 집착하는 제 모습이 자연스러운 줄 알았지만, 사실 그것은 잘못된 식습관이 만들어낸 기형적인 모습이었단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폭식으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졌습니다. 물론 자의보단 타의에 가까웠지만 말입니다. 소화기에 문제가 생겨 의식적으로 식생활을 교정하게 되었습니다. 라이프스타일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좀 더 건강하고, 규칙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가까운 변화였습니다. 그래도 가끔씩은 감정적으로 힘들 때 자꾸 음식으로 그것을 해소하려 합니다. 어쩔 때는 폭식을 해버리는 경우도 있고, 중간에 정신을 차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음식이 내 스트레스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고 있습니다.


요즘은 배가 부르면 금세 수저를 내려놓고는 합니다. 밤에 뭐가 먹고 싶을 때는, 내일 먹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잠을 먼저 청합니다. 무언가를 먹을 때에는, 충동에 가까운 식욕보다는 영양소의 균형을 먼저 생각합니다. 이러는 제 모습이 신기합니다. 한편으로는 원래 이렇게 먹어야 할 사람이었는데, 너무 멀리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기도 합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 자기에게 맞는 식생활이 있겠죠. 그러나 저는 이제야 제 식생활이 편하다고 느낍니다. 더 이상 식욕에 휘둘리지 않고,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받지 않는 삶. 이런 삶이 제게 얼마나 큰 안정감을 주는지 이제야 느끼게 되었습니다.




식이장애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식이장애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무자비한 평가를 내리곤 합니다. 의지박약, 돼지, 미련한 사람...... 듣는 사람은 그들이 쉽게 내뱉는 말이 큰 상처로 남습니다. 나는 이렇게 고통스럽고 미칠 것 같지만, 정신적 문제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지 않아서 그런지 다들 식이장애를 가벼운 문제로 취급하곤 합니다. 그러나 식이장애는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정신적으로는 끝없는 우울과 무기력함을 가져오고, 신체적으로는 식도염과 위염 등 실질적으로 질병을 유발하게 됩니다. 이런 생활이 오래 반복될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기만 하고요. 혼자 벗어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환경의 변화가 필수적으로 따라야 합니다. 혹시나 자신의 의지가 문제라고 생각하신다면, 다시 한번 되짚어보길 바랍니다. 의지로 해결될 문제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겁니다.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리고 나를 폭식으로 내모는 생각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저는 굶고 식단을 극단적으로 제한하는 다이어트를 했었고, 그것이 오히려 음식에 대한 집착을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매번 무엇을 먹을 때마다 '지금 아니면 못 먹을 거야'라는 생각이 폭식을 부추겼습니다. 또,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제일 쉬운 방법은 먹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먹는다고 스트레스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폭식 후의 죄책감에 스트레스가 배로 늘었습니다. 그럼에도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기에 계속 폭식을 반복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음주가 문제였습니다. 술을 마시는 시간은 대부분 늦은 저녁이고, 술을 마시면 자제력이 약해지기 때문에 계속 음식을 집어먹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안주는 대부분 자극적인 것들이니, 속이 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술을 끊고 나니 술과 같이 곁들여 먹던 수많은 음식들도 자연스레 안 먹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몇 가지 규칙을 세워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1번, 세 끼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만큼 먹기 (*여기서 정량 = 위 크기 =자신의 오른쪽 주먹 크기)

2번, 먹었을 때 탈이 없고 소화가 잘 되는 음식으로 먹기

3번, 음식은 스트레스 해소용이 아니라 에너지 공급용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4번, 먹는 것에 대한 광고나 이미지에 노출되지 않으려 노력하기(먹방, 먹스타그램 등)

5번, 식생활이 쌓이고 쌓여 10년, 20년 후의 나의 몸을 이룬다는 것을 기억하기.

6번, 필요가 아닌 충동에 따라 먹지 말기


매번 지킬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지만, 이렇게 기준을 세우고 상기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사실 폭식을 그만두기 위해서는 이런 기준보다 먼저 감각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배가 적당히 불러서 수저를 내려놓은 감각, 음식을 양이 아니라 맛과 영양 등으로 즐기는 감각, 적당량을 먹고 가볍게 움직일 때의 감각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들을 잊지 않고, 다음 식사에도 그 감각을 다시 느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 후 천천히 위 크기가 줄고, 폭식에서 한 발자국 물러났을 때 이런 기준을 세우는 게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식이장애는 단순한 배고픔, 혹은 식욕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보다 깊은 곳에 있는 결핍, 나에 대한 통제감, 복합적인 스트레스 해소의 문제에 더 가까운 것이라 느낍니다. 마음에 뚫린 구멍을 먼저 매워야 치유되는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너와 나, 우리 모두 건강하고 편안한 식생활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 기반은 건강한 마음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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