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돈의 냄새보다 종이의 냄새를 먼저 맡았다. 매일 아침 대문 앞에 던져진 마트 전단지 세 장. 그 잉크 냄새를 맡으며 나는 오늘의 미션을 정하곤 했다. A 마트의 두부, B 마트의 콩나물, 그리고 10원이라도 더 싼 세제가 있는 C 마트까지. 십 원 단위의 숫자를 비교하며 세 군데 마트를 발로 뛰던 그 꼬마에게 ‘시간이 돈’이라는 개념은 사치였다. 남아도는 것은 시간뿐이고 돈을 버는 법은 몰랐기에, 오로지 내 눈앞의 숫자를 깎아내는 것만이 인생의 유일한 승리 공식이라 믿었다.
그런 나를 보고 부모님은 혀를 차며 말씀하시곤 했다.
“너 있는 자리엔 풀도 안 자라겠다.” 그 말은 내게 모욕이 아닌 빛나는 훈장이었다. 남들 다 하는 외식 한 번 편하게 하지 못했다. 중고등학교 내내 지겹도록 먹은 급식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학식’으로 이어졌다. 친구가 “급식을 그렇게 먹고도 안 질리냐? 제발 나가서 맛있는 것 좀 먹자!”라고 재촉하면, 나는 마지못해 따라나서면서도 메뉴판에서 가장 저렴한 순두부찌개만을 골라냈다. 오죽하면 친구가 안쓰러운 눈으로 내게 이런 말을 던졌다.
“야, 너는 어차피 오늘도 순두부찌개지? 그냥 내 거 같이 나눠 먹자. 오늘은 내가 낼게.”
자존심보다 공짜 밥이 앞섰던 찌질함. 그 지독한 ‘순두부의 시간’을 10년 넘게 견디고 나니 내 손에 1억 원이라는 숫자가 찍혔다. 스물여섯, 드디어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고 내 인생의 첫 번째 성벽을 완공한 기분이었다. 이제는 평탄한 대로만 남았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인생은 내가 공들여 쌓은 성벽을 비웃기라도 하듯, 단 한 번의 파도로 모든 것을 휩쓸어갔다.
노동만이 유일한 진리라 믿었던 성실한 신봉자가 처음 발을 들인 주식 시장은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화면 속 파란 숫자들은 내가 10년간 아껴온 순두부찌개 수천 그릇을 단 며칠 만에 삼켜버렸다. 5,000만 원의 손실, 그리고 상장폐지. 10원 한 장에 벌벌 떨며 모아 온 내 청춘의 조각들이 증발하는 순간, 나는 무력하게 화면만 바라보았다. 버티면 회복하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은 손실의 덩치만 키울 뿐이었다. 버는 건 평생이었으나 잃는 건 찰나였다.
한동안 주식 시장은 쳐다보기도 싫었다. 역시 부동산인가 싶어 서적을 뒤적였지만, 내가 가진 돈으로 살 수 있는 집이라곤 곧 무너질 듯한 허름한 빌라뿐이었다. 실제로 그 집을 보러 갔던 날을 기억한다. 바람이 불면 깨질 것 같은 유리창에 엑스(X) 자로 붙은 청테이프. 좁은 골목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그 집을 나오며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퇴근길, 숲처럼 빽빽한 아파트 숲의 불빛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 많은 집 중에 내 집 하나 없구나.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왔나.’ 돌아오는 길,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저녁은 유독 짰다. 거대한 상실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후 ‘파이프라인을 늘려라’는 자기 계발서의 격언을 붙들고 온갖 부업에 매달렸다. 그러나 공무원이라는 신분에 붙은 ‘겸직 금지’의 허들은 높고 견고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합법적인 아르바이트는 고작 시험 감독관이 전부였다. 남들은 수당도 많고 시간도 짧은 꿀 시험 감독을 잘도 맡던데, 내게는 그런 행운조차 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남들이 기피하는 험한 시험들만 찾아다녔다. 임용고시나 수능처럼 몇 시간 동안 미동도 없이 서 있어야 하고, 잘못하면 악성 민원의 화살을 고스란히 맞아야 하는 자리들. 다리는 저려오고 등은 굳어갔지만, 머릿속으로는 '오늘 이 시간을 버티면 얼마가 입금된다'는 계산기만 두드렸다. 하지만 그 고단한 기회조차 포화 상태가 되어 지원할 때마다 떨어지기 일쑤였다. 어떨 때는 1년 내내 간절히 원해도 단 한 번의 기회조차 잡지 못하는 해가 있었다.
돌파구를 찾던 중, 작가로 성공해 강연을 다니는 동료 선생님을 보았다. ‘나도 저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희망에 무작정 글을 써서 수십 곳의 출판사에 투고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복사해 붙여 넣은 듯 차가웠다.
“저희 출판사와 방향이 맞지 않아 이번에는….”
광탈의 연속이었다. 주변 선생님들은 교육청이나 교육부로 영전하고, 함께 일했던 부장님은 관리자로 승진하며 거침없이 앞서 나갔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실 안에서는 애써 웃어야 했지만, 교무실 내 자리로 돌아오면 나만 영원히 제자리에 고인 물 같았다. 이곳을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그들이 성공의 계단을 턱턱 오를 때, 나는 여전히 바닥에 딱 붙어서 옴짝달싹 못 할 것만 같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내 인생은 괴로울 ‘고(苦)’만 가득할까. 이 긴 터널은 도대체 언제쯤 끝이 날까. 막막함에 숨이 턱 막히는 날들이 이어졌다.
언젠가 누군가 내게 물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나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아뇨, 전 안 태어날래요. 이 힘든 과정을 또 겪으라고요?”
한 번은 우울증을 깊게 앓는 지인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남겨진 가족의 슬픔이 걱정되어 그저 숨만 쉬고 있다는 그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박혔다. 나는 우리 엄마가 제일 싫어하지만, 불효막심한 말을 한 번씩 꺼내곤 했다.
“엄마, 난 죽음이 그렇게 무섭지 않아. 왠지 그동안 너무 고생했다고, 이제는 쉬어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거든.”
“너는 자식이 돼서 할 말이 없어서 그런 말을 부모한테 하니?”
되돌아오는 엄마의 날 선 목소리 뒤로 무거운 정적이 흐른다. 삶이 얼마나 고단했으면 죽음을 휴식으로 정의했을까.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바닥에 오래 머물다 보니, 어느 순간 바닥만의 감촉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위만 바라보며 정신없이 달릴 때는 절대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는다는데, 이토록 지독하게 실패를 수집하고 기록하다 보면 언젠가 내 시간도 세상과 딱 들어맞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성공은 운의 영역일지 모르나, 실패는 오롯이 나만의 정직한 데이터다. 이 책은 찬란한 성공 수기가 아니다. 바닥을 기어 다니며 온몸으로 써 내려간 실패의 연대기다. 만약 지금 당신도 나만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다고 느낀다면, 잠시 멈춰 내 이야기를 들어보길 바란다. 실패만큼은 누구보다 베테랑인 나의 기록이, 다시 시작하고 싶은 당신의 마음 한구석에 작은 불씨 하나 지필 수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보상받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