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탁한 세상에서 다시 공자를 불러야 하는 이유

by 김정겸

자식이 부모를 해하고, 부모가 자식을 해하는 끔찍한 뉴스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옵니다.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는 한탄이 절로 나오는, 참으로 혼탁한 하루하루입니다.

이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줄 스승이 있다면, 저는 주저 없이 공자를 꼽고 싶습니다. 도덕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도(道)는 인간이 마땅히 걸어야 하는 길을 의미합니다.

그 길을 제대로 걷지 못할 때, 우리는 서로를 붙잡고 본래의 길로 이끌어야 합니다. 한자 도(導)가 '이끌다'라는 뜻을 품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덕(德)은 두 인 변(彳)에 마음(心)이 더해진 것으로, 사람 사이에 서로의 마음이 들어가 있는 상태, 즉 '고마움'을 의미합니다. 서로에게 감사하고 고마워할 때 비로소 우리는 품격을 갖추게 되고, 행복(幸福)에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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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길을 걷다 보면 "도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도(道)는 단순히 물리적인 길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따라야 할 이치(理), 즉 도리(道理)를 뜻합니다.

선생은 선생답고,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지킬 때, 우리는 그 사회를 도덕적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공자는 이러한 도를 세우기 위한 핵심 가치로 인(仁)을 제시했습니다. 인(仁)은 사람(亻) 둘(二)이 모인 형상입니다.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과 따뜻함, 그리고 배려(caring)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전철 안의 풍경을 떠올려 보십시오. 연로하신 어르신이 앞에 계셔도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수구리족', 자는 척 고개를 흔드는 '헤드뱅잉족'이 넘쳐납니다.

심지어 뻔뻔하게 어르신을 쳐다보며 자기들끼리 떠드는 이들도 있습니다. 사랑과 배려가 사라진 이 삭막한 풍경이 우리의 민낯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공자는 인(仁)을 '사람을 사랑하는 것(仁愛人)'이라 정의했습니다. 이는 내 가족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인 '남'까지도 사랑할 줄 알아야 진정한 인이 실현된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공자는 이름에 걸맞은 행동을 강조했습니다. 임금은 임금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가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때리거나, 자식이 부모를 업신여기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짐승과 다르지 않게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인을 실천해야 합니다.

인을 실천하는 방법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효(孝)와 제(悌)를 바탕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내 마음을 미루어 남을 배려하는 서(恕)의 정신을 갖는 것입니다.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서(恕)입니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극복하고 예(禮)로 돌아가는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자세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서로를 돌볼 때, 우리 사회는 다시 정의롭고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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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적인 법률이나 처벌만으로는 사회를 온전히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도덕과 예의가 살아 숨 쉬고, 서로가 서로를 인간답게 대우하는 세상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살맛 나는 세상입니다.

이제 죽은 공자가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공자를 다시 살려내야 할 때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인간의 도리를 다할 때, 비로소 나라도 살고 우리도 살 수 있습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한때 유행했으나, 지금은 단언컨대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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