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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le May 09. 2022

애교쟁이 고양이와, 시크한 개가 사는 곳

 그와 산책을 나섰다. 우리는 나온 건물의 왼편 모퉁이를 돌다 멈추어 섰다. 짙은 회색의 몸에 검은 줄무늬를 입은 고양이 한 마리가 얌전히 다리를 모으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쳐다보자, 고양이가 서서히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꼬리를 높이 들고, 끝만 살랑거리면서. 그의 다리에 몸을 비비며 꼬리를 감았다가 다시 얌전히 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맞추며 천천히 깜빡거린다. 그는 다급하게 말했다.

   "나 고양이 사료 좀 사 올게."

 우리가 살고 있는 건물 1층 주류 판매점 가판대에는 각종 고양이 사료도 팔았다. 그는 서둘러 습식 사료 한봉을 사서 돌아왔다. 이번에는 하얀 털과 회색 털이 섞인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그가 말했다. "얘도 좀 줄까." 습식 사료를 조금 꺼내어 주었다. 그 사료는 참치 통조림 냄새를 풍겼다. 그러자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모를 고양이들이 우리에게 몰려왔다. '에옹' 작고 애처로운 소리를 내면서. 그 소리를 들으면 사료를 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한 무리 고양이들에 둘러싸였다. 그는 우리를 둘러싼 고양이를 살펴보다 말했다. "아까 걔가 안 보여. 걔 때문에 샀는데." 우리는 고양이 무리를 벗어났다. 다시 모퉁이를 돌자 '에옹' 소리를 내며 검은 줄무늬 고양이가 다가와 몸을 비빈다. 아까 그 녀석이다. 그는 아껴둔 사료를 모두 꺼내어 주었다. 우리는 쪼그리고 앉아 고양이가 사료를 다 먹을 때까지 지켜보았다. 지금 우리는 고양이들의 세상 터키에 와있다.


 터키에 온 지 이제 두 달이 되었다. 40일은 터키 서남부, 에게해의 도시 '보드룸'에 있었다. 에게해 바다를 낀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고양이 한두 마리는 어김없이 다가온다. 난 고양이들 건강에 좋지 않을 테니 사람이 먹는 음식은 주면 안 된다고 했고, 그는 이렇게 쳐다보는데 어떻게 안주냐고 했다. 그러면서 먹고 있던 양고기 케밥을 조금 잘라 던져주었다. 까칠한 분홍 혀로 순식간에 고기를 다 먹어치운 고양이는 이제 상체를 들어 올려 앞발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고기는 거의 다 먹었기 때문에 남아 있던 빵을 살짝 잘라 주었다. 빵을 깔짝거리던 고양이는 관심이 없는지 앞발로 밀어냈다. 그리고는 이런 거 말고 고기를 내놓아라 하는 표정으로 다시 앞발을 올렸다.

   "고기 아니면 관심 없나 봐. 입맛이 고급지네.”


 터키에서 고양이는 무척이나 사랑받는 존재인 듯하다. 스타벅스에서 소파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앉아있어도 쫓아내는 사람이 없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어느새 무릎 위로 뛰어올라와 자리를 잡는다. 고양이를 품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두 눈을 감고서 가만히 손길을 즐긴다. 터키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천국 같은 곳이다. 그 어렵다는 개냥이들이 이렇게나 가득하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산책시간이 평소보다 늘었다. 걷기보다는 고양이를 관찰하는데 한참을 쓴다. 몸을 비비며 애교를 떠는 고양이를 만나면 그는 주변을 돌아보며 사료 살 곳을 찾는다. 이 동네의 호갱님이라 할 수 있다.

사료를 바칠 수 밖에 없는 터키의 고양이들

 터키의 고양이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길냥이 들이 생각나 안타깝다. 사람을 보면 두려운 눈빛으로 서둘러 몸을 숨기고, 제대로 먹지 못해 비쩍 말라서 쓰레기 통을 뒤지는 아이들. 집안에 사는 고양이들이야 주인을 집사로 부리며 사랑받지만, 길에 사는 아이들은 배고픔에 허덕인다. 터키의 애교쟁이 냥이들을 쓰다듬다 보면 '넌 여기 태어나서 행복한 거야.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사랑받는 고양이들이 이스탄불에만 20만 마리 정도 살고 있다고 한다.


 터키에는 고양이뿐 아니라 길에서 사는 개들도 많다. 한국에서 버려진 개들은 도시의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거나, 구조되어도 새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안락사되지만, 이곳의 개들은 지자체에서 관리받는다. (귀에 관리 번호를 붙이고 있다.) 길에서 사는 터키의 개들은 덩치가 제법 크다.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보면 살짝 위협적으로 느낄 수 있는 크기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무심하니까. 고양이와 다르게 개들은 시크하다. 주로 길에 엎드려 잠을 자거나. 사람들이 주고 간 고양이 밥을 뺏어 먹는다. 이들은 사람을 향해 짖지 않는다. 사람을 위협하는 개는 사람들이 키우는 개들 뿐이다.


 산책을 하다 바닷가 공원의 잔디밭에서 주인과 훈련하는 개를 보았다. 그 개는 뾰족하게 선 귀, 날렵한 몸매, 균형 잡힌 근육을 가졌다. 검은 피부에 짙은 갈색으로 만들어진 근사한 가죽 목걸이가 아주 잘 어울렸다. 주인이 멀찍이 공을 던지면, 그 개는 '멍' 하고 크게 한번 짖고는 공을 주으러 달려갔다. 돌아올 때는 공을 입에 물고 자랑스러운 듯 꼬리를 크게 흔들었다. 그렇게 반복하기를 수십 번. 가끔은 '기다려' 훈련을 하기도 했다. 그럼 개의 입가에는 침이 질질 흐른다. 그러다 더 이상 지켜보기 괴롭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 옆에는 고양이 사료를 뺏어먹고 느긋하게 엎드려 있는 자유로운 영혼도 한 마리 있다. 관리되지 않아 덥수룩한 갈색 털을 하고서, 심드렁한 눈빛으로 바다를 응시하고 있는 듯했다. 엉덩이 털이 뭉쳐져 있어서 빗질을 한번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주인에게 속해있어 관리받은 개와 자유롭게 거리를 뒹구는 개, 어떤 삶이 더 행복할까 생각했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그런 건 정의 내릴 수 없는 영역의 것이리라.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건 선호의 문제이니까. 개들도 각자 선호하는 삶이 있을 거다.


사람에 별 관심 없어 보이는 시크한 터키의 개


 터키 사람들은 개와 고양이에게 어쩜 이리도 너그러울까. 고대로부터 이 땅은 대충 씨앗만 뿌려도 농작물이 알아서 잘 자라는 기름진 땅이라 들었다. 터키는 식량 자급자족이 가능한 나라로, 이곳의 밀가루는 질이 좋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난 밀가루 음식을 연속해서 먹으면 속이 불편해지는데, 터키에서는 매일 먹어도 괜찮다. 가격 또한 저렴한 편인데, 마트에서 파는 빵이 3리라, 아인콘밀로 만든 천연 발효 빵도 20리라면 살 수 있다. (1리라가 85원 정도 하니까 300원에서 1700원 사이, 작은 빵이 아니라 바게트 빵 사이즈다) 식당에서도 물은 돈을 주고 사야 하지만, 빵은 무한 리필이 가능하다. 터키 리라 가치가 폭락하여 예전보다 살기 어려워졌다고는 하나 그래도 빵 인심만큼은 후하다. 그것 때문이 아닐까. 터키 사람들이 너그러운 이유. 이들은 고대로부터 먹는 걱정을 하면서 살아본 적은 없을 거다.

 터키 사람들은 이민족에게도 대체로 친절하다.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있는 이 땅의 주인은 여러 번 바뀌었다. 그리스일 때도, 페르시아일 때도, 로마일 때도 있었다. 터키 사람들의 얼굴만 봐도 느껴진다. 이들의 생김새는 정말 다양하다. 유럽의 느낌과 중앙아시아 느낌이 묘하게 섞여있다. 생김새 만으로는 같은 나라 사람인지 알아볼 수 없을 것 같다. 실제로 해외에서 만난 터키인끼리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다가 같은 터키인인걸 알고 당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있는 나라라서 그런지 외국인에 대해 거부감도 별로 없는 듯하다(이스탄불이 아닌 지역으로 가면 동북아시아인을 신기해 하기는 한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도와주려 애쓰는 것이 느껴진다. 먹을 것이 풍족하고, 포용력을 지닌 사람들. 그것은 동물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나 보다.


 오늘도 그와 산책을 나섰다. 길에서 마주친 고양이들을 가만히 관찰한다. 가만 보니 보드룸 고양이에 비해 이스탄불의 고양이가 더 토실토실한 것 같다. 조그만 고양이의 얼굴이 보름달처럼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인구가 많은 만큼 먹을 걸 주는 사람들의 수도 더 많은가 보다. 통통해도 날씬해도 고양이는 귀엽다. 아무튼, 고양이라면 다 괜찮다.



터키 사람들의 고양이 사랑은 '고양이 케디' 다큐에  담겨있다. 터키어로 고양이가 '케디'인데..  다큐 영화의 한국어 제목은 그럼.. 고양이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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