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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Liquid Love

피곤한 한국식 연애 스타일

by 홍재희 Hong Jaehee



나는 어릴 적부터 알콩달콩한 연애 로망에 빠져있던 또래 여자애들과 달리 연애 판타지에 별 관심이 없었다. 로맨스 판타지는 영화나 드라마로 픽션으로 즐기되 현실에서 꿈꿔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영화에서나 가능한 연애를 현실에서 갈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현실감각이 떨어진다는 걸 반증하는 게 아닌가. 다정하고 섹시하고 게다가 돈 많고 능력 있는 남자가 다른 여자도 아닌 자기에게'만' 사랑을 고백하고 평생토록 사랑하겠노라 맹세하는 신데렐라 스토리. 진부하기 짝이 없는 클리쉐. 늘 뻔한 서사. (어떻게 그걸 믿는 거냐?) 솔직히 웃겼다. 하품 나왔다. 백마 탄 왕자를 꿈꾸는 판타지가, 연애(결혼)에만 골인하면 모든 게 완성이라고 믿는 순진함이, 인생이 그리 간단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꽤나 유치하다고 생각했지만, 뭐, 여자친구들 앞에서는 대놓고 친구들의 로망을 비웃은 적은 없다. 내가 몹시 드라이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네, 이런 부분에선 냉정할 정도로 드라이합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넷플릭스에서 핫한 일본 드라마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배우 채종협이 남주로 나오는 일드라고. 일본 지상파 TBS 화요 드라마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 보라고 하도 난리를 쳐서 넷플릭스에서 전부 몰아서 봤다. 한국식 연애 스타일을 이웃나라 로맨스 드라마에서까지 보게 되다니. 제작진에 한국인 피디가 참여했고 극본을 일본 30대 여성 작가들이 썼다 한다. 현재 일본의 젊은 여성들의 연애 로망, 즉 로맨스 판타지 속 이상형이 이제는 한국 남성인가 싶었다.



이 일본판 로맨스 드라마를 보면서 내가 주목한 것은, 깜찍하니 귀여운 니카이도 후미도, 훈훈한 비주얼의 모델 간지 채종협도, 두 사람의 달달구리한 연애 서사도 아니었다. 오히려 일본 드라마가 재현해 내는 한-일간 연애 문화의 차이, 한국식 연애 스타일에 대한 클리세가 가장 눈에 띄었다.




<Eye Love You>에서 한국남자 유학생 윤태오(채종협)는 호감을 느끼고 좋아하게 된 일본여자 유리(니카이도 후미)에게 카톡을 쉴 새 없이 보낸다.


일어났어요? 굿모닝. 밥 먹었어요? 날씨가 이래요. 저래요. 그리고 태오가 유리에게 보낸 제가 먹은 밥상 사진.


태오가 보낸 카톡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유리는 '그냥' 답을 하지 않는다. 유리에게 답장이 오지 않자 마음을 졸이고 기다리고 기다리다 실망하고 오만가지 상념에 빠져 유리가 자길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닌가 노심초사하는 태오. 그러다 오매불망 고대하던 카톡 답장이 오자 자지러들게 좋아하는 태오.


이 장면을 보면서 뿜었다.


한국과 일본의 연애 문화 차이. 한국의 연애 스타일을 이토록 극명하게 보여준 장면이 또 있을까. 우리와 비슷한 정서와 문화를 지닌 일본만 해도 연애할 때 한국처럼 연락을 자주 하지도 카톡에 목을 매지도 않는다. 한국인들 특유의 연애 로망 판타지, K-드라마가 오히려 현실 연애를 망쳐놓은 건 아닐까? 한국인들은 로맨스 영화/드라마에서 본 대로 현실에서도 해야 한다고 착각하고 그걸 따라 하고 실현하는 걸 진짜 연애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한국인들의 연애 스타일.

연락(카톡)의 빈도수를 호감과 애정의 척도로 간주한다.

농담 아니라 유독 한국만 이렇다.






썸 타는 사람, 사귀는 사람, 여자 친구/남자 친구/애인에게 카톡 답장이 오지 않는다고, 읽씹/안 씹한다고, 짜증 내고 불안해하며 타로점을 봐달라는 지인, 친구들이 심심찮게 있었다. 전화도 안 받고 카톡도 안 읽고 남자 친구(여자 친구)가 지금 어딨는지 몰라 불안하다고, 싸웠는데 밤늦도록 카톡이 오지 않는다고 온라인 차단당한 건 아닌가라고 안절부절못하는 사람까지도. 사건 사고도 아니고 큰일도 아니고 그저 일상톡인데. 아니 사정이 있어서 못 읽을 수도 있지, 답장이 없을 수도 있지, 안 그런가? 사정상 늦게 보거나 다른 일 때문에 즉시 못 보거나 뭐 급할 게 없어서 그냥 안 볼 수도 있는 게 아닌가. 그랬더니 내 말에 상대는 도리어 화를 냈다. 어이없었다. 하루도 안 지났잖아!! 네가 걔 엄마야 아빠야? 버럭질을 하려다가 끄응, 참았다. 어휴..... 카톡을 보낸 즉시 확인 안 하고 답장 안 보냈다고 상대방의 마음을 의심하고 저울질하는 사고방식이라니. 보통 카톡! 카톡! 방정맞은 카톡 알림음이 듣기 싫어서 묵음으로 설정해 놓고, 내가 보고 싶을 때 카톡을 확인하며 지내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



사귀는 사람과 카톡으로 날마다(!) 일상 안부를 주고받는다는 이들. 왜 그래야 하냐고 물었더니 도리어 깜짝 놀라면서 사랑하니까 그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니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아.... 겉으로야 장단을 맞춰주었지만.... 설렘이 가득한 썸 또는 달달한 연애 초기도 아니고, 설령 그렇다한들 매일 카톡이라니, 바다 건너 롱디도 아닌데, 롱디라 해도 헉... 날마다라니! 매일 카톡 매일 연락이라니. 어휴.... 생각만 해도 피곤해. 지치지도 않나. 안 지겹나? 안 질리나? 숨 막히네.... 속으로 생각했다.



연애할 때 이렇게 영혼까지 끌어모아 에너지를 다 쏟아가며 연애하고, 서로의 연락에 집착하고, 무슨 무슨 기념일 때마다 있는 돈 없는 돈 써가며 이벤트에 열일하고, 결혼식이라는 이벤트 최종 결승점까지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달리고 달려, 궁극의 목표인 결혼에 골인하고 나면, 다들 녹초가 되어 결혼 후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손을 놔버리는 건 아닌가? 연애할 때는 하늘의 별이라도 따줄 것같이 잘 해준 남자가 결혼하고 나니 180도 변했다고, 연애 시절에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 같더니만 결혼하니까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고 불평하는 여자들이 많다. 그런데 연애하다가 번아웃 되었다는 생각은 안 하나?


이런 연애를 하는 한국인들을 한 두 명 본 게 아니다. 거의 대부분은 이런 듯 싶기도 하다.






데이트 후 집에 바래다주는 문제로 싸운 국제 커플 지인이 있었다. 날마다 집에 바래다주길 원한 한국인 여자 친구 때문에 피곤해 죽겠다는 캐나다 지인 B. 데이트 후 늘 여자 친구가 집 가는 방향의 전철역까지만 데려다주었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 친구가 서운해하다가 결국 불만을 터트리고 전철역에서 둘이 한바탕 싸웠다는 거였다.


그 친구가 내게 물었다. 너네 둘은 그런 문제없어? 우리 둘? 당시 나도 국제 커플이었다. 글쎄. 그런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왜 그래야 하지? 남자가 여자 집까지 바래다줘야 한다는 생각조차를 해 본 적이 없는 내게는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질문이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한테 울어봤자야. 그런 적이 없는데 뭘. 매번 바래다준다니 아, 숨 믹혀. 난 상상만 해도 싫은데.


B는 투덜거렸다.


캐나다에서야 대중교통이 불편해서 자동차로 다닐 수밖에 없으니까 차로 여자 친구 집까지 태워다 주는 거야 그렇다 쳐도, 두 다리 멀쩡한 성인 여자가, 게다가 안전하기가 세계 1위인 서울에서 전철을 타고 왜 혼자 집에 못 가는 거냐고!


I'm not her prarent, she is not a baby, she is a big girl! I'm so annoyed. She is such a childish!


빵 터졌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다른 날. 모임 자리에서 B의 여자 친구가 이번에 내게 똑같은 걸 물었다. 서양남자들은 B처럼 죄다 이기적이냐고. (집까지 데려다주지 않는 게 이기적인 것과 무슨 상관인지 도통 모르겠으나) 어이없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서운해서 잔뜩 삐친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우리는 밖에서 만나면 버스 정류장이나 전철역에서 그냥 헤어져요. 내가 그의 집에 간 날이면 문 앞에서 바이바이 하고요. 그녀의 눈이 똥그래졌다. 안 서운해요? 뭐가요? 내가 길을 모르는 어린애도 아닌데. 데려다주긴 뭘 데려다줘요! 애 취급 하는거 별로에요. 저도 집에는 알아서 편하게 혼자 가고 싶어요. 걔도 그러지 않을까요? 커진 여자의 눈이 두 배로 더 커졌다. 어.....? 황당한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 나는 조용히 술잔을 내밀었다.


ㅡ꽁한 맘 풀고 어른답게 한 잔 해요.






애초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연애하는 방식 자체가 '소유'와 '의존, 의지'의 산물로 '집착'에 너무 치중하진 않나 되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예전 외국인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 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놀랐다고 한 게 있었다. 한국인들의 연애스타일인데, 서로 떨어져 있을 때 매일같이 전화(요즘은 카톡) 하는 걸 보고 정말 신기하다고 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매일 연락(통화/카톡)을 하지 않으면 그렇지 않다면 '진짜'(!) 사랑하지 않는 거라는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정말 놀랐다. 카톡 횟수 연락의 빈도수를 애정의 척도로 삼다니 유치하지 않은가. 항간에 유행한 깻잎논쟁도 결국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그런데 카톡을 하네 마네 깻잎을 떼주네 마네로 이거냐 저거냐 따지고 성토하지 전에 , 뭐가 ‘진짜 사랑'과 '가짜 사랑'이냐 아니냐라는 이분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랑'을 하느냐에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연애라는 것은 '상대방을 통해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 이유로 나는 연애하는 상대가 우리 관계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려 하기보다는 관계를 위해 스스로를 더 드러내는 사람을 선호하는 편이다.



주변의 한국 친구들을 보면 연애 상대에게 매일 안부 전화를 하고, 일어났냐 집에 잘 들어갔냐 날마다 일상톡을 한다. 반면 북미 유럽의 외국친구들의 연애 스타일을 보면 어느 누구도 애인의 연락에 연연하고 집착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연락 빈도로 애정을 확인하려 들지도 않았다. 데이트할 약속을 잡거나 일이 생길 때 연락을 했다. 만날 일이 없으면 급하지 않으면 연락을 따로 하지 않았다. 만나지 않는 동안은 서로의 개인 시간과 각자의 일상을 존중하는 편이었다.


의도치 않게 재밌는 화제가 끊이지 않고 이야깃거리가 생겨서 종횡무진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니고, 그저 밥 먹었어? 일어났어? 잘 잤어? 집에 잘 들어갔어? 나 잘게. 잘 자. 매번 이런 말이나 주고받으려고 매일 연락을 주고받아야 한다면 나는 상대에 대한 관심과 설렘마저 반감될 거 같다. 더구나 상대에게 '지금 어디야? 지금 뭐 해?'라는 카톡을 수시로 받는다면 내 일상을 구구절절 보고해야 한다는 의무감, 통제받고 간섭받는다는 느낌에 와락 짜증이 날 것 같다. 질리지도 않나. 그런 사람과는 관계를 끊어버리고 싶다.


예전에 친구들이 종종 이런 식으로 연락을 해서 내 욕을 왕창 얻어먹은 적이 많았다. 말을 빙빙 돌려서 '지금 바빠? '라고 묻는 말에 짜증 나서 '응 바빠.'라고 단답 한다. '지금 뭐 해? '라고 묻는 말에 '똥 싼다'라고 대답한 적도 있다. 역으로 '그걸 왜 묻는데?' 또는 '너 심심하니?'라고 되묻는다. '나 심심해'라는 친구에게는 '응. 난 안 심심해.' 라거나 '너 혼자 놀아'라고 칼답 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는 건 아니다. 한 두어 번 좋게 넘어가다가 연락이 잦어지거나 제 얘기만 늘어놓고 징징대면 참다 참다가 폭발한다. 난 네가 오늘 하루 종일 뭐 먹고 뭐 했는지 관심 없다고! 네 이러쿵저러쿵 연애사에 관심 없다고! 그러니까 구구절절 늘어놓지 마! 연락을 기다리는 상대 또는 연락한 이의 의중을 헤아려서 세심하게 신경 써서 답장을 보내기도 하지만 솔직히 자질구레한 일상다반사 토크에 일일이 답하기 귀찮다. 덕분에 친구들에게 성격 지랄 맞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지만. 얘들아, 니들이 별 것도 아닌 고작 전화 카톡 하나에 더럽게 집착한다는 생각은 안 하니? 그렇게 살면 안 피곤하니?






한국식 연애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상대의 자율성을 통제하려는 행위를 애인이라면 의당 누려야 할 권리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좋아한다, 사랑한다'를 이유로 통제를 당연시한다. '사랑하니까 그런 거다'라는 말로 강요와 통제를 합리화한다. 한국 사회에는 연애를 마치 연인끼리 지켜야 할 의무로, 집착을 사랑의 징표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연애할 때 상대를 챙겨주는 세심함과 사랑을 퍼주는 정 많음은 한국인들 특유의 미덕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다정도 지나치면 병이다.


사랑하니까 카톡 연락을 매일 해야 하는 것도 당연하며, 사랑하니까 네가 남사친/여사친을 만나는 것도 반드시 내 '허락'을 받아야 한다. 사랑하니까 걱정해서 수시로 연락을 하는 거고, 사랑하니까 옷을 그렇게 입지 마라 이렇게 입어라라고 하는 거고, 사랑하니까 지금 네가 어디 있는지 나한테 보고를 해야 하는 거다. 여기에 반박하거나 불만을 제기하면 너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면 뭣하러 나와 연애하냐라며 서운해하고 삐치거나 비난한다. 사랑한다면서 상대의 모든 것을, 일거수일투족에 지적질과 잔소리를 하며 고치려 드는 것이다.


전체주의적이고 권위적인 사회, 관계주의 한국 사회에서 가족주의에 매몰되어 살아온 한국인들은 남녀 할 거 없이 연애만 하면 죄다 간섭 참견하는 엄마, 권위적인 아빠가 되지 못해 안달 난 것 같다. 부부 관계는 소원한데도, 자식을 제 분신으로 여기고, 자식의 모든 것에 개입하고, 불안정하고 왜곡된 사랑에 올인, 집착하는 한국 부모 품에서 자라서 그런가. 많은 이들이 안정적인 사랑에 대한 결핍을 의존적인 연애, 질투하고 집착하는 연애를 통해서, 부모에게 못 받은 사랑을 연애를 통해 보상받으려 든다.


그런데 다들 부모 품에서 벗어난 성인들이잖아요. 그러니 역할 놀이 좀 그만하세요.


우리는 각자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개인이에요. 성인이라면 말이죠. 상대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존중하지 않는 연애는 유아적인 소유욕이자 집착, 강압적인 부모의 통제일 뿐입니다. 상대의 가치관, 취향, 기호, 습관이 마음에 안 들면 헤어지면 됩니다. 괜히 남 바꾸려들다가 애꿎은 사람 일상 망치려들지 말고요. 사랑하면 상대가 내가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어딜 가서 누굴 만나든 반드시 내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매일 연락을 나는 꼭, 꼭, 꼭 해야 한다면, 제발 당신과 똑같은 그런 사람을 찾으세요.


그런데 부모한테도 매일 연락 안 하는 사람들이 연애 상대한테는 그걸 왜 요구할까? 제 부모가 옷차림에 잔소리를 하면 들은 척도 안 하면서 애인에게는 왜 이래라저래라 할까? 안 그러던 사람도 연애하면 제 부모랑 똑같이 군다. 알다가도 모를 일.


드라마에서나 보는 로맨스, 완벽한 연애에 대한 환상이 클수록 현실 연애를 비루하게 여길 가능성이 높다. 상상 속 로망에 빠져있는 사람은 현실에서 자기 객관화가 안 되기 마련이다. 이들은 연애 다음은 결혼이라는 시나리오에 빠져있다. (하지만 연애와 결혼 사랑은 결혼과 무관하다. )


만일 연애 다음 결혼이라고 생각한다면 현실적으로 연애 로망에 빠져있기보다 오히려 결혼 생활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한국인들은 연애와 결혼에 대한 기대와 환상은 크지만 실제로 연애/결혼을 지속시키기 위해 필요한 노력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관심하다. 연애든 동거/결혼이든 관계 맺음의 본질은 이벤트를 얼마나 멋지게 잘하는가, 연락을 얼마나 자주 하는가에 달려있지 않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 차이를 노력으로 극복해 나가는 과정, 다른 배경과 환경에서 자라온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배워 나가면서 사랑을 지속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부단히 연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여러분. 연애는 통제나 집착, 요구와 의무가 아니라 존중과 배려, 이해와 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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