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게으른 게 아니랍니다.
내가 이야기했다.
“나는 참 게을러요.”
방학을 맞이하며 정신줄을 놓았노라고 그래서 성장을 위한 일은 한 개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가 말했다.
“그건 당신이 게으른 게 아니에요. 당신의 일이 급하지 않은 거예요. 만약 당장 오늘까지 내야 하는 공과금이 있다면 당신은 공과금을 낼 겁니다.”
작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자책하고 있었다. 더 많이 책을 읽을 수 있음에도, 더 자주 글을 쓸 수 있음에도,
더 알뜰하게 돈을 모으고, 부지런하게 시간을 아끼지 못한다며 단정 짓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게으름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서 나는 본래 그러한 사람이니 할 수 없는 게 맞다는 합리화를 하고 내 말을 당신이 믿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너는 절대 게으르지 않다고.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으니 충분히 쉬어도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 또 나는 뻔히 보이는 그 얕은 문장에 동조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맞아. 학기 중에 열심히 일했잖아. 그러니 방학은 좀 쉬어도 괜찮지.
그래야 또 다음 학기를 버틸 수 있을 거야.’라고 말이다.
물론 불쑥불쑥 튀어 오르는 진실은 꾹꾹 누르고 말이다.
‘정말 열심히 일한 거 맞아?’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충분한 휴식을 주는 거 맞아?’
‘방학은 꼭 쉬어야만 다음 학기의 성과가 결정되는 거야?’
알고 있다. 지난 학기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진정한 기쁨이 있는 휴식은 침대에 뒹굴며 쇼츠를 보면서는 절대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방학이야 어찌 되었든 학기가 시작되면 늘 그렇듯 평소처럼 생활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미 알고 있는 정답지는 팽개치고 그저 나는 게으르고, 쉬어도 된다라는 말을 들었으니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아.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빠져 또 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달랐다.
나는 게으르지 않다고. 아무도 게으른 성격은 없다고.
그저 급한 일이 아니라서 움직이지 않는 것뿐이라고 말이다.
그렇다. 나는 모르고 있었다.
내가 해야 하고 하고 싶은 모든 일에는 끝이 있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모든 일에는 완성되어야 할 마감이 존재한다. 어떤 일은 가까이 있고, 어떤 일은 저 멀리 있다. 중요하면서 마감이 뒤에 있는 일도 있고, 중요하지 않으면서도 코앞에 닥친 마감도 있다. 본질은 모든 일에는 마감이 있다는 것이다.
마감시각을 모르고 한없이 미루고 있는 그 기간이 게으른 상태라 할 수 있다.
내가 빠져있는 상태 말이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서 검진을 예약하고 병원투어를 다니고 있다. 하마터면 마감을 놓칠 뻔했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관절염과 만성 목디스크를 이제 인지하고 손목을 귀히 여기기로 했다.
큰 아이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책을 쓰기로 한 것도 있다. 마감까지는 1년 4개월 17일이 남았다. 중2를 겪고 있는 아들의 일상을 적기로 작정하고 몇 달이 후루룩 지나갔다. 사춘기 호르몬을 지대하게 받는 절정의 시기가 다시 오지 않기를 바라며 그의 에피소드를 적어야 하는데 벌써 남은 기간이 얼마 없다.
혼자 오롯이 즐길 수 있는 남은 방학은 딱 단 사흘. 이것이야말로 지금 나에게 가장 급하고 중요한 마감이다. 남아있는 책은 다섯 권. 하루에 한 권을 읽어야 하는데 도서관에 일주일 전에 예약한 책이 아직도 깜깜무소식이다. 나처럼 반납 마감을 어긴 이 가 또 있을 줄이야.
지금 이 글은 어떠한가. 스스로 정한 마감은 오전 8시.
아뿔싸 벌써 지났다. 다음 글감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기 전에 후루룩 완성해야 한다.
그녀의 말처럼 나는 게으른 게 아니었다. 단지 잠시 마감시각을 놓치고 있었을 뿐이리.
매일 새벽 하루의 일과를 작은 수첩에 미리 적어놓는 그녀처럼
일상의 마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내가 되어야겠다. 수첩에 차곡차곡 쌓인 일상이 내 삶이 될 테니 이렇게만 지낸다면 언젠가 마감의 귀재가 되어있지 않을까?
게으른 날들이여. 이제는 안녕!
(2024년 8월 8일 오전 8시 11분. 마감 11분 지남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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