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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희 Oct 13. 2021

스무 살에 찾아온 우울증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인생에서 가장 심한 우울증을 겪었던 시기가 있습니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때였는데요.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싱그럽고 창창한 나이였지만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에 휩싸여 누구보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일단 가장 큰 이유는 입학한 대학과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습니다. 목표로 했던 대학에 떨어지고, 전공마저도 '집에 보탬이 되기 위해 취업 잘 되는 과를 선택해야 한다'는 이유로 원치 않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 누구도 그러라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이상한 논리에 매몰되어 선택한 대학생활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딱히 차선책으로 무얼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고 학원에 다니던 때, 주변에 대학 잘 간 친구들을 보며 자격지심이 하늘을 찔렀었죠.


 당시 한껏 의기소침하고 자존감이 낮아져 있어서 모든 상황이 내 잘못이고 내 책임인 것만 같았습니다. 

아빠가 힘들게 일하는 것도 내 책임, 엄마가 어려운 형편에 고생하는 것도 내 잘못, 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것도 내 책임. 지금 돌이켜보면 아무 논리가 없는 생각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냥 모든 게 내 잘못이고 나 때문인 것만 같았습니다. 점점 그럴수록 [나는 왜 이모양일까 → 모든 게 내 탓이야 → 나만 없어지면 모든 게 해결될 거야]의 비논리적인 흐름으로 흘러가며 극단적인 생각으로 치달았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심리 테라피를 접목한 치료를 하는 한의사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잔뜩 방어적이었던 저를 무장해제 시켰던 선생님은, 사람을 꿰뚫어 보는 형형한 눈빛을 지닌 분이셨죠.


*당시 상담 내용 요약 [D:한의사, P: 본인]

D: 뭐가 제일 힘들어요?

P: 그냥 우울하고 무기력해요.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D: 어떤 상황이 본인을 가장 힘들게 하죠?

P: 지금 입학한 학교도 맘에 안 들고 전공도 싫고.. 부모님도 밉구요.

D: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있나요?

P: 어렸을 때 부모님이 자주 싸우셔서 트라우마가 생겼고.. 미운 마음이 있는데.. 그런데 또 미안하기도 해요

D: 어떤 부분에서 미안하죠?

P: 아빠가 힘들게 일하시는데.. 제가 그 기대에 못 미쳐서요. 저 때문에 힘들게 일하는 건데.. 아빠가 불쌍해요

D: 아버지가 일하고 자식 부양하는 건 본인의 선택이시죠. 그걸 왜 미안하게 생각하나요?

P: 모르겠어요. 그냥 죄송하면서도 밉고.. 여러 마음이 들어요. 

D: 본인이 아빠한테 그렇게 하라고 했나요? 아버지는 아버지의 선택을 한 거예요. 본인이 하지도 않은 일에 죄책감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답니다. 당신도 당신의 선택을 하세요.



 얘기를 나누는 도중 저도 모르게 엉엉 울었습니다.

당시 저는 아빠에게 애증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너무 고맙지만 한편으로 너무 미운 양가감정. 그걸 일깨워주었던 선생님의 냉정하고도 차분했던 음성이 기억납니다.


 그때 들었던 말 중 가장 인상 깊고 도움되었던 말이 '아버지도 아버지의 선택을 했을 뿐'이라는 말입니다.

누구나 나의 선택을 할 뿐이고 그 어떤 결과도 내 책임이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이 특히 와닿았습니다. 내가 책임질 영역은 오로지 내 인생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어두웠던 마음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더군요. 그리고 거기에 더해 내가 내 인생을 이렇게 방치하면 그 누구도 챙겨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구요.


 그때부터 내 마음을 제일 먼저 살피고 헤아리려 노력했습니다. 그전까지는 다른 사람들, 주로 가족들 눈치를 보느라 나를 챙길 여력이 없었거든요. 부모님이 자주 싸우는 게 내 탓인 것만 같고, 그래서 내가 더 잘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휩싸여 부모님의 구미에 맞는 결정이 무엇일까 눈치 보기 일쑤였으니까요. 하지만 거기에서 벗어나 '내가 내 삶을 살아볼게요!'라고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선언한 순간, 같은 상황이었지만 많은 게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위한 책임감이 아닌 내 인생을 잘 살아보기 위한 책임감으로 탈바꿈했으니까요.



 그때 처음 무기력과 우울증에서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시도를 했던 것 같습니다.

내 의지가 아닌 부모님을 위해서 선택했던 공무원 시험을 접고, 아르바이트를 알아봤습니다. 난생 처음 본 아르바이트 면접에서 몇 번 떨어지고 힘겹게 합격 통보를 받았던 그때 기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 나도 쓸모 있는 존재였구나'하는 기쁨에 괜히 방방 떴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아르바이트로 사회생활도 처음 시작해보고, 사람들도 만나며 자신감이 조금씩 붙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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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삶은 여전히 녹록지 않은지라 지금도 가끔 우울감이 들 때가 있긴 하지만, 예전처럼 극단적인 생각에 이를 정도까지 심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우울한 감정이 들더라도 일찍 빠져나오는 편이구요.



생각해보면 저도 어두운 터널 안에 있을 때는 도무지 이 터널이 끝나기는 할까,

언제 끝이 나는 걸 볼 수 있을까 싶었지만

끝이 없을 것만 같던 터널에도 빛 드는 날이 오기는 오더군요.


혹시 지금 예전의 저처럼 끝이 없는 터널을 지나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그래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말을 꼭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모든 게 당신 잘못이 아니라는 말도 함께요.


부디 지금 이 시기를 강건히 버티시고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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