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쉼의 즐거움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기 위하여
休假(쉴 휴, 틈 가)
휴가의 뜻이 쉴 틈이었다니… 그저 ‘바람 쐬러 떠나는 여행’ 정도로 생각했는데 쉴 틈이라는 뜻을 알고 나니 일을 쉰 이후로 오히려 생각보다 휴가를 별로 떠나지 않았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니, 사실 진짜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도 여행일 뿐 휴가와 동의어는 아니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딸로서… 역할과 책임은 왜 이리도 많은지… 오히려 챙겨야 할 것, 애써야 할 것 투성이기에 다녀오면 ‘아~ 잘 쉬었다’라는 마음이 든 적은 없었다. 오히려 집에 돌아오자마자 할 일은 훨씬 많았다. 아, 물론 그렇다고 그런 여행이 싫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내게 휴가는 아니라는 것뿐이다.
늘 남 모를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시는 우리 시어머님께서 “어딜 다녀오면 여자는 오히려 할 일이 참 많아~남자들은 모르지…”라고 말씀해 주신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이 참 말이다. 여행을 다녀오면 다른 식구들은 씻고 쉬기 바쁘지만, 나는 짐을 제 자리에 정리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빨래를 돌리며 땀을 한 차례 더 흘린 후에야 뒤늦게 샤워를 하고 부랴부랴 식사를 준비했던 것 같다. 누군가가 이런 얘기를 들으면 같이 하자는 얘기를 왜 안 하냐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걸 굳이 시켜 먹어야겠어?”라는 말이 되돌아오거나, ‘놔두면 내가 할게’라고 말하고는 내가 버틸 수 없을 때까지 안 하는 사람을 지켜보다 보면, 빨리 말끔히 치워버리고 푹 잠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얼마 전 처음으로 ‘나홀로여행’을 다녀왔다. 그것도 2박 3일이나. 내게는 엄청난 기간이었다. 2박 3일을 나 혼자 보내다니… 가기 직전까지 괜한 생각을 한 건가 망설였던 것 같다. 사랑하는 가족이 아른거리고, 걱정 한 가득 안고 가는 여행이 즐거울까… 그런데 웬걸.. 지나가는 사람 누구든지 붙잡고 설득하고 싶을 만큼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여행은 정말이지 “유의미”하다.
다시 일을 시작한 요즘,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역할을 못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거실에 빨래를 널브러뜨리고는 미처 다 못 개고 외출해버리거나, 저녁을 차려주지 못하거나 하는 일이다. 물론 훨씬 더 긴 세월을 집안일을 안 하는 엄마로 살았었지만, 적어도 전업주부가 된 이후로는 쥐꼬리만 한 월급을 이유로 자리를 비우기가 미안했다. 그러나 가족을 이뤄 삶을 살아간다는 건 사실, 어떤 일이든 각자의 생각이 자로 잰 듯 딱딱 들어맞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지나치게 어깨에 많은 짐을 얹고 있었던 걸까. 집을 비우거나 할 일을 제 때 못할 때면 그 빈틈을 메워줄 만큼 아이들이 제법 자라 있었다. 오늘도 집을 비운 사이 기특한 두 아들은 건조된 빨래를 모두 개어 제자리에 넣어 두었다.
쥐꼬리만 한 월급보다 가족이 훨씬 더 중요한 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엄마들이 세상에 다시 발걸음을 내딛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요즘 나는 세상에 나가 한 걸음씩 발걸음을 떼고, 무언가에 보람을 느끼고, 사람을 만나 대화하고 웃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도록 나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도와주는 가족이 진심으로 고맙다.
정말 미약하게 일을 시작했을 뿐이지만, 이제는 가끔 ‘진짜 휴가’를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참 신기하지, 첫 직장생활 땐 상상도 못 했던 일인데… 이제는 일도 즐겁고, 쉼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