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약물 탐구생활의 빛과 그림자
잠깐, 이게 평화인가?
지난 이주, 우리 집 외계인 말안들인의 컨디션이 놀랍도록 양호했다. 평소 같으면 갑작스럽게 헐크 모드로 전환되어 폭발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학교 모니터링 시스템에서도 '말안들인이 교실을 탈출했다'거나 '지구인 친구를 KO 시켰다'는 긴급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더 놀라운 건, 그토록 욕설과 괴성을 지르며 필라테스 수업을 초토화시키고 퇴출당했던 말안들인이 다시 그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엔 지구인 교관의 프로그램을 정상적으로 로딩해 차분히 운동을 끝마쳤다. 필라테스 수업 복귀 허가는 나에게도 말안들인에게도 노벨평화상급 성과였다.
학교에서 만난 또 다른 외계인 형과의 관계도 급속히 개선되었다. 원래 마주치기만 하면 서로 전투 모드로 전환되어 날라차기와 주먹지르기로 인사를 나누던 사이였는데, 말안들인이 "안녕?"이라고 평범하게 인사하기로 나와 평화협정을 맺은 뒤로 사이가 급속도로 좋아졌다.
얼마 전에는 외계인 형에게 고도의 종이접기 기술로 제작한 스텔스 비행기를 선물로 받기도 했다.
말안들인의 지구 적응이 점점 나아지고 있는 걸까? 이주 전 받은 페니드 5mg 반알과 콘서타 27mg의 조합이 말안들인의 바이오 시스템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 같았다. 마치 오랫동안 찾아 헤맨 최적의 알고리즘을 발견한 듯했다.
특히 고무적인 것은 말안들인이 담임선생님의 지시 코드를 정상적으로 인식하고 실행하는 모습이 관찰되어, 담임선생님도 "이 정도면 정상등교 모드로 전환해 볼 만하다"고 희망적인 멘트를 언급했다는 점이다. 이는 지구학교와 외교적으로 상당한 버전업이었다.
하지만 완전한 평화는 없었다
물론 말안들인이 조용한 수도승 같은 일상을 보냈던 것은 아니다. 소소한 사건들을 나열해 보자면:
-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모의 뱃속 태아에게 "개못생겼다"고 막말하기 (미래 인간에 대한 스캔 결과 냉정 발표)
- 얼굴에 침 튀긴 옆 자리 친구에게 주먹으로 위협하기 (생화학 공격에 대한 디펜스 모드 가동)
- 자기 물건을 실수로 가져간 친구에게 펄쩍펄쩍 뛰며 위협하기 (소유권 해킹에 대한 강력한 안티바이러스 반응)
다른 아이들에 비해 화내는 역치가 너무 낮아서 모두를 당황하게 한 적이 많다. 마치 감정센서가 과하게 조정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정신과의 성적표는 참담했다
오랜만에 지구 정신과 메디컬 스테이션의 진료를 받는 날, 참 기대를 많이 하고 갔다. 그런데 주치의 선생님께 받은 진단리포트는 참담했다.
"이 상태면 말안들인에게 약이 작동한다고 할 수 없어요. 콘서타는 10시간 지속되는데 말안들인 인체시스템에 호환성이 별로인 것 같네요."
아, 이런. 좋은 퍼포먼스 스코어를 기대했는데 에러 메시지를 받은 기분이었다. 결국 불안한 마음으로 메디키넷 30mg과 비상약물로 페니드 5mg 한 통을 받아왔다. 저녁에 먹는 리스페리돈 2mg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연료의 예상치 못한 부작용
그런데 다음 날부터 말안들인이 불안정해졌다. 보통 집에서 공부하자고 하면 조금 귀찮아하긴 해도 꽤 협조적으로 나왔는데, "야! 이놈아! 하기 싫다고!"라며 자꾸 반말로 대들기 시작했다.
말안들인이 그나마 얌전히 잘 다니던 수영학원에서도 전투모드로 전환되어 형과 싸우고 오는 일이 생겼다. 한 번만 더 배틀하면 수영장 접근 권한을 박탈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받았다. 메디키넷은 집중력 부스터 역할은 했지만, 동시에 말안들인의 짜증과 분노 게이지를 위험수위까지 끌어올리고 있었다.
이게 뭐람, 약발은 좋은데 성격은 괴팍해지는 거야?
메디키넷과 콘서타 모두 같은 서방형이라도, 콘서타는 혈중 메틸페니데이트 농도를 더 부드럽게 장시간으로 올려주어서 말안들인의 바이오 시스템에 최적화되어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 예전에 받은 콘서타가 몇 개 남아 있어서 메디키넷을 중단하고 콘서타를 먹이기로 했다.
약물 로테이션의 끝없는 순환
도대체 삼 년 동안 약을 몇 번 바꾸는 건지. 메디키넷-콘서타-아토목세틴-메디키넷-콘서타-메디키넷-콘서타... 마치 끝없는 미궁 속으로 빠진 것 같았다.
그런데 다시 정신과를 찾아 진료를 보니 주치의 선생님이 이번에는 리스페리돈을 3mg으로 증량하자고 했다. 리스페리돈은 폭력성향을 가진 자폐스펙트럼이나 ADHD 외계인들이 먹는 진정제다. 지구의 양로원에서는 공격적인 치매 어르신들을 슬립모드로 변경하기 위해 위해 먹이기도 한다고 한다.
무시무시한 부작용의 그림자
그런데 이 약의 부작용이 참 무시무시하다. 뇌하수체전엽의 프로락틴 호르몬 분비를 촉진해서 남자아이인데도 여자처럼 가슴이 나오거나 근육이 자라지 않고 골다공증의 위험도 높인다고 한다. 거기에 체중 증가, 당뇨병 등 대사 이상, 파킨슨병과 같은 지연성 운동 이상증, 신경이완제 악성 증후군은 물론이고 졸음, 불안, 두통, 소화불량, 성기능 장애 등의 부작용까지… 이런 약을 먹이면서까지 말안들인을 지구의 학교에 보내야 하나?
게다가 그록과 챗gpt(내 AI 주치의)에게 물어보니 보통 프로락틴 수치는 리스페리돈을 복용하면 100% 상승하고 앞서 말한 부작용을 보일지는 그야말로 시간문제라고 했다. 보통 4-6주 뒤부터 증상 발현이라 이주마다 혈중 프로락틴 수치를 바이오스캔 해야 한다고 했다.
홈스쿨링이라는 선택지
순간 예전부터 고민하던 홈스쿨링에 대한 생각이 다시금 머릿속에 강하게 떠올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학교는 사회성 트레이닝을 위한 무료 베타 테스트 서버와도 같다: 학습을 위해서는 콘서타의 약효가 최적인 낮시간에 집에서 직접 붙들고 가르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만 3세까지 직접 말안들인을 트레이닝했던 터라 말안들인과 있는 시간은 나에게 어려울 게 없었다. 오히려 학교에 데려다 놓고 오늘은 어떤 공격으로 지구인 친구들을 괴롭혔을까 마음 졸이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
검사 및 새로운 전략
다음 날 바로 프로락틴 수치 검사가 가능한 소아과에 찾아갔는데, 다행히도 아직 가슴에 멍울이 잡히거나 키가 안 크거나 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아서 피검사를 통한 정밀 스캔은 나중에 확인해 보자는 답변을 받았다.
홈스쿨링 프로젝트는 잠시 대기모드로 전환. 부작용이 나타나 말안들인에게 리스페리돈을 정말 못 먹이게 된다면 그때 홈스쿨링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3mg을 다 먹이지는 않기로 했다. 말안들인 체중 대비 과용량이고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물론 정신과에서는 모든 부작용을 염두에 두고 3mg의 용량을 처방해 준 거라지만 나는 차마 그 용량을 다 먹일 수 없었다.
그록과 Chat GPT로 심층 리서치를 하고 내가 내린 결론은 오전 0.75mg 저녁 1.5mg씩 3mg 알약을 분할해 쪼개 먹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혈중 프로락틴 호르몬 피크를 낮출 수 있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부작용의 위험을 어느 정도 줄여준다고 한다.
영양제 대작전
Chat GPT 심층 리서치 기능으로 기존에 먹는 영양제도 싹 다 재정비하기로 했다. 과학적 사실과 논문 기반으로 검토해 봤을 때 오메가 3, NAC, 이노시톨을 기존 용량의 두 배로 복용하고 L-카르니틴 및 포스파티딜세린을 추가로 복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종합영양제도 ADHD 말안들인에게 특화 스펙으로 여러 미네랄과 비타민군이 적절하게 조합된 것으로 업그레이드했다.
마치 개인 AI 헬스케어 시스템이 말안들인 전용 맞춤형 개인 연료를 생성해 준 것 같았다.
최상 난이도 육아 게임
말안들인을 키우는 것은 그야말로 공부의 연속이다. 늘 최신 ADHD 연구 발표를 찾아보고 그것을 어떻게 말안들인에게 적용할까 고민한다. 말안들인 키우기가 육성시뮬레이션 게임이라면 마치 난이도 최상으로 헬 모드에 온갖 디버프를 걸어놓고 플레이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공주맨인 나는 늘 HP 10% 상태의 그로기 모드지만, 그래도 평범한 어른으로 행복하게 자라는 네 모습을 상상하며 오늘도 리스폰한다!
말안들인은 진짜 다른 별에서 온 특별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구 적응 매뉴얼 같은 건 애초에 없었던 거겠지. 우리는 함께 그 매뉴얼을 써나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