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앱 대신 냉장고를 여는 삶

번아웃, 휴직, 그리고 2년 만에 쓰는 글

by AD엄마HD아들

2년 만이다. 글을 쓰는 게.


첫 월급을 받던 날 밤, 온 가족이 파티를 했다. 신나서 글을 썼다. 그게 마지막 글이 될 줄은 몰랐다.

8년 만에 다시 시작한 일. 처음에는 재미있었다. 다시 내 힘으로 돈을 벌어 아이들을 좀 더 잘 먹이고, 입히고 가르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재택근무였기에 아이들을 보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았는지, 일과 삶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도 모르는 채 일에 열중했다. 8년간 지겹도록 일이 없는 일상을 보냈기에 일을 할 수 있다면 글쯤이야 쓰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고 내 몸은 고장 났다. 정확히 몸인지, 머리인지, 마음이지 모를 무언가가 고장 났다. 아무 탈 없이 복용 중이던 정신과 약들도 거부반응이 일어났다. 너무나 졸렸고, 피곤했다. 약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불안이 크게 올라왔다. 어쩔 줄을 몰라 동동 거렸으며 눈물이 쏟아졌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나를 돌보지 않았던 지난 시간들이 한꺼번에 나에게 쏟아지는 것 같았다.



기다려 줄 테니 괜찮아질 때까지 푹 쉬고 와



전화 한 통으로 휴직자가 되었다. 나는 그냥 힘들다고, 일을 좀 줄이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대표님께서는 쉬라고 하셨다. 내가 괜찮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준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는데도 마음이 불안했다. 전화를 끊는 그 순간 까지도 내가 정말 쉬는 게 맞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당장 내야 할 대출이자와 생활비는 어떡하지?


그런 생각도 잠시 나는 인수인계서를 작성하기 시작했고, 내 업무를 모두 처리해야 할 팀장님께 죄송한 마음을 전했다. 정신없이 인수인계서를 전달하고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그제야 내가 멈춰 섰다는 사실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을 쉬었지만 불안과 공황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오래 복용했던 ADHD치료제인 콘서타마저 끊게 되었다. 콘서타가 불안을 더 증폭시킨다는 의사 선생님 판단하에.


돈이 없으니 한 달만 쉬자 했던 다짐은 지켜지지 못했다.


두 달을 쉬었지만 몸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휴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저녁밥은 배달음식이었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었다. 이럴 거면 왜 쉰다고 했을까 후회도 되었다. 어차피 괴로울 거 그냥 일해서 돈이나 벌 것을.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점점 걱정이 되었다. 나는 아직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는데,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더 쉬어야 하는 건 아닐까. 누워서 천장을 보며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답은 나오지 않았다.


복직 3일 전, 팀장님은 나의 복직날짜를 아시는지 모르는지 급하게 나를 찾았고 그렇게 어영부영 다시 일을 시작했다. 많이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마음이 차분했다. 실감이 안 났는지도 모른다.


일은 줄어들었을까? 내가 휴직하기 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했다. 같이 일하던 팀장님의 퇴사로 모든 일이 고스란히 내 몫이 되었다.


다시 불안과 공황이 오는 게 아닐까 걱정되었지만, 이전과는 달랐다. 몸이 신호를 보내면 멈췄다.


조금 쉬어도 괜찮아

이젠 아이들의 저녁시간을 미뤄가며 일에 매달리지 않는다. 어제도 조금 일찍 일을 마무리하고 배달앱 대신 냉장고를 열었다. 차린 게 많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맛있게 먹었고, 설거지를 했다. 소파에 기대어 책을 펼쳤다. 평온했다.


쓰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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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년 동안 글을 쓰지 않았음에도 구독을 눌러주시고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독자님들이 계셔서 마음 한편이 무거웠습니다. 계속 다시 써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는 나날을 보냈던 것 같아요. 번아웃으로 인한 휴직을 하고, 삶의 의욕과 의미를 잃어버릴까 마음 졸이며 긴 터널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 터널을 다 빠져나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캄캄한 터널을 지나더라도 헤드라이트를 켜고 가면 된다는 것을요. 빛이 없다면 내가 만들면 되고, 무서우면 음악을 크게 틀고 노래하며 가면 된다는 사실을 말이죠.


2년 동안 일기조차 제대로 쓰지 않았는데 이렇게 다시 글을 쓰려니 많이 어색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8개월 동안 정말 행복하고 즐거웠는데, 그때처럼 다시 독자님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요? 떨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눌러봅니다.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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