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견우와 직녀가 눈물의 재회를 하고 있는 걸까. 비가 오면 아이의 등굣길을 걱정하는 엄마가 되었지만, 칠월 칠석, 오늘 만큼은 조용히 웃음 지어 본다.
다른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칠월 칠석에는 늘 비가 온다는 것을. 나에게 특별한 날이라 매년 지켜봤기에 알고 있다. 비가 오거나,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흐렸다는 것을.
나는,매년 칠월 칠석이 되면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이네, 다시 만나게 된 것을 축하해!' 하며 혼잣말도 해보고, 창문너머 들리는 까마귀 소리에 '오작교 만들러 가는 건가'하며재밌는상상을 한다.
음력 7월 7일,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할머니께서는 내가 좋은 날에 태어났다며 생일을 음력으로 챙겨주셨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음력 생일’에 축하를 받는다. 요즘 세상에 젊은 사람이 생일을 음력으로 챙기는 일은 드물지만, 오히려 특별한 느낌이 든다.
요즘 사람들은 중요한 것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전화번호나 주소, 심지어 생일까지도 말이다. 스마트폰이 늘 곁에서 비서처럼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기 때문에, 외우지 않는 것이다. 지인들의 생일이 되면 SNS 프로필에 표시가 되어서 놓치지 않고 챙길 수 있는 참 편리한 세상이다.
그러나 내 생일은 신경을 써서 외워야 한다.
견우와 직녀가 만날 수 있는 단 하루. 나를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은 나의 음력 생일을 챙겨준다. 물론 나이가 들고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내 생일을 잊었지만, 아직도 변덕스러운 나의 음력 생일을 기억해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바쁜 삶에 치여 내 생일을 챙겨주지 못하고 지나가면 깜짝 놀라면서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친구도 있고,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축하 메시지와 선물을 보내주는 친구도 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도 매번 달력을 확인해야 나의 생일이 언제인지 알 수 있는데, 그걸 일일이 확인하고 기억해 준다는 사실이.
고마운 사람들을 천천히 생각하다, 할머니가 떠올랐다. 10년 전에 돌아가신 친할머니. 매년 음력 7월 7일이면 걸려오던 할머니의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게 안타깝고 슬프지만, 할머니께 받았던 사랑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가득 차 있다.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해 본다. 고무줄로 꽁꽁 묶어놓은 쌈짓돈을 꺼내 용돈을 주시던 할머니의 손길을.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칼칼한 된장찌개를. 색칠놀이를 하고 있으면 어쩜 그렇게 잘하냐며 칭찬해 주시던 그 모습을. 한참을 생각하다 그리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아 눈을 번쩍 떴다.
어린 시절 동생은 항상 말했다.
‘할머니는 왜 언니 생일만 기억하고 전화해?’
어찌나 질투를 하던지. 엄마도 항상 이야기하셨다. 할머니가 너를 많이 챙겨주시는 거라고. 나는 어린 마음에 그냥 기억하기 좋은 날 태어났으니까 생일을 잘 챙겨 주시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21살의 어린 '막내아들'에게서 본 '첫 손주'가 얼마나 귀하셨을지. 우리 아빠가 할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할머니가 나를 정말 많이 아껴 주셨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들이 학교, 유치원에 가고 남편도 출장을 가서 집에 아무도 없는 조용한 이 순간, 세상에 태어난 것을 진심으로 놀라워하고, 감사하고 있다. 스스로 어깨를 토닥이며 잘 살았다고, 앞으로 더 행복할 거라고, 바르게 커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해 본다.
그리고 양력생일, 음력생일 두 번이나 챙겨주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음을 느낀다.
그렇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이제 베풀자. 차고 넘치는 내 안의 사랑을,
내 사랑이 필요한 모두에게!
'엄마 생일이니까 저녁에 고구마 피자를 먹자'고 했더니, '엄마 생일이라고 엄마 마음대로 하는 게 어딨어!'라고 하며, 꼭 페퍼로니 피자를 먹어야 한다는 첫째가 곧 돌아올 시간이다.
언제쯤 '어머니 생신 때는 어머니 마음 대로 하셔요~'라고 하는 아들이 되려나.
‘오늘 엄마 생일이야. 노래 안 불러줘?, 편지 안 써줘?’라며 생일을 챙겨주길 바라는 내 모습이 조금 불쌍하지만, 기다려본다. 언젠가 ‘서프라이즈~!’하며 엄마의 깜짝 생일파티를 열어줄 아이들의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