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일기 열둘.
2017. 9. 15 금
'수심가'가 끝나고,
“지난주에 제가 칭찬을 너무 많이 해 드렸나요? 수심가가 완전히 뒤틀렸어요.”
“…?”
'초한가'가 끝나고 웃으시면서,
“가사가 엄청 외우고 싶으시구나. 그죠? 후다닥 빨리 외우고 싶으세요?”
“아니에요. 그건 아닌데, 노래에 신경 쓰면 가사가 금방 안 떠올라서, 가사를 외워두면 노래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아니다. ‘당연히 가사를 외워야지’, 하는 게 내 생각이었다. 기타를 혼자 칠 때는 악보를 보기도 하고 외워서 쳐도 되지만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경우에는 무조건 악보를 외운다. 그 수가 한두 명이라도 청중이 존재하는 순간 나의 기타는 '연습'이 아니고 '연주'가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기타 오케스트라 단원처럼 여러 곡을 치는 것도 아니고, 한두 곡 치는 거면 외우는 게 맞지, 악보를 보고 칠 때에도 다음 마디의 코드를 놓칠 때를 대비해서 외워두자, 지금 내가 공연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배우는 과정인데도 나는 노래 가사도 미리 외워두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죠. 근데 가사를 ‘외우는 게’ 먼저가 아니어서요.”
(내 마음을 읽고 계시네?)
“저는 연습할 때 노래에서 지켜야 할 것과 잘 틀리는 것, 매번 지적받는 것을 색깔 펜으로 그 부분을 표시를 하거나 그 글자에 네모칸을 쳐 놔요. 그게 중요해요.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다 보면 생각 안 하고 그냥 부르거든요. 노래 한 곡을 부르는 동안 여기는 이렇게, 저기는 저렇게 글자 하나하나를 다 신경 쓰면서 부르는 사람 없어요. 지적받은 것도 부르는 동안은 정신없죠. 한두 번은 신경 써서 부르지만 뒤에 가면 그냥 부르기 바빠요.
이렇게 표시를 해 두고 여기에서 내가 목을 어떻게 쓸지, 어떤 것을 주의해야 할지 ‘보면서’ 해요. 안 보면 내가 틀려도 계속 넘어가요. 내가 틀렸는지를 모르니까 부르기 바쁘죠.
지금 선생님이 그거예요. 가사 외워서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데 의미를 두어서 어디를 고치고 바로 잡아야 할지를 놓치고 있어요. … 연습하실 때 부분적으로 연습하시되,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실 때도 아직은 ‘가사를 다 외워서’ 하기보다는 ‘어디 어디가 틀렸는지를 확인하면서’ 연습하세요. 지금은 ‘노래를 만드는 중’이니까.”
생각해보니 오늘 노래하는 내내 허둥댔다. 입으로는 ‘산 잘 놓는 장자방은 계명산 추야월에’를 하는데, 머릿속으로는 그 다음다음에 나오는 ‘객의 수심을 도와주고’를 미리 생각하느라, 지금 나와야 할 ‘옥통소를 슬피 불어’를 놓쳤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나 스스로가 확인하고 싶었고, 가능하면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책을 보지 않고도 이만큼 부를 수 있어요, 선생니임~’ 하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었나? 외우려 한 마음이 잘못일 리 없지만, 지금 시작한 지 두 달 반 된 나의 상황에서 외우는 것보다 우선인 것이 있음을 나는 놓쳤다. 글자를 외운 들 글자 하나하나의 수많은 음정들과 호흡들까지 다 외울 수 있을까? 외운다기보단 연습이 쌓이면서 저절로 내 노래에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겠지. 그때쯤이면 가사는 그냥 외워질 테고^^
내가 외웠던 건 ‘노래’도 아니고 ‘ 가사’도 아닌, 그저 ‘글자들’이었다. 그럴듯하게 보이고 싶었던 초보다운 욕심이 정작 봐야 할 것을 못 보게 하고, 챙겨야 할 소리들을 놓치게 만들었구나.
*사진: 4-2 국어 교과서(2014년 발행)에 수록된 '글자놀이'의 삽화.
'쌀을 더 주겠다'는 제안에 글자를 외우기 시작하여 글을 배우는 즐거움을 알아가는 소년의 이야기가 나온다. 원작은 배유안 작가의 '초정리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