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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Dec 14. 2023

드림캐처Dreamcatcher

꿈과 감정에 관한 이야기




언젠가 딸이 '꿈 영상 장치'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타인의 꿈을 봐서 뭐 하게?"

내가 꿈을 기록하기 때문에 호기심이 생겨서 물었다. 꿈의 쓸모를 물은 것 같지만, "너는 꿈이 뭐라고 생각하니? "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한 것이었다.


꿈은 기억의 조각이라는 과거이고, 욕망의 재현이라는 미래이다. 꿈이야말로 자아가 고밀도로 응축된 에너지 덩어리다. 자기 제어가 불가능한 무의식의 영역에 존재하므로 '진짜'의 영상이다. '진짜의 나'라서 무섭다. 딸의 상상력에 섬뜩한 한기를 느낀다. 절대로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영상, 이미지, 욕망을 생생하게 모니터링 할 수 있다? 타인이 나도 모르고 통제할 수 없는 내 무의식 분석한다는 것에 대해 상상한다.




나는 일기를 매일 쓰고, 가끔씩 꿈도 기록한다. 일기는 타인에게 쓴 그대로 보여주거나 약간의 변형을 거쳐 공개되기도 한다. 하지만 꿈 기록은 아무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다. 꿈은 '영혼의 나체'이다. 무의식이 무서운 건 완전무결한 '진짜의 나'이기 때문이다. 진짜인 나를 본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면서 순결한 사랑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잠의 종착 시간에 찾아온 강렬한 마지막 잔상의 이미지와 언어. 나는 그것을 묘사하고 말을 받아 적는다. 나의 꿈기록 방법을 소개하면,  


[에버노트 꿈 기록 '몽타주']


하나, 꿈을 꾸다가 깨었을 때 벌떡 일어나지 않고 눈 감은 상태로 이미지가 달아나지 않게 조심스럽고 사랑스럽게 붙잡아 두려고 노력한다.

둘,  이때 모든 이미지와 스토리를 다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셋, 장면에서 떠오르는 단어(유형, 무형, 느낌, 관념, 말 무엇이든)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최대한 빠르게 기록한다.

넷, 여유가 있을 때(장면기억이 사라지기 전 최대로 빠른 시간 안에) 단어들을 보면서 살을 붙여 문장과 스토리를 완성한다.

다섯, 장면의 제목을 달고 날짜와 요일을 쓴다.

여섯, 메모 도구는 스마트폰 메모앱(내 경우, '에버노트'를 사용)이 접근성이 좋다. 아날로그형 노트는 감성은 좋지만, 접근성과 신속성이 떨어져 기록을 지속하기 어렵다.

일곱, 기록된 스토리로 자신의 일기에 에세이, 소설, 정신분석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쓴다.

여덟, 모든 꿈을 기록하려고 집착하지 말고, 최종적으로 기억에 남는 꿈 이미지를 힘을 빼고 기록한다. 이때 자기검열과 방어를 해서는 안 되며 최대한 강렬하게 쓴다.




"너의 꿈을 갖고 싶어. 나는 너를 너보다 더 많이 정확하게 알고 있어. 그래서 널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거야. 네가 보지 못하는 너의 아름다움, 너도 외면하고픈 추함까지도 나는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어."


내 꿈 기록을 관심있게 읽어 줄 누군가가 나타나 주기를 기다린다. 딸이 만들고 싶어하는 장치는 온전하게 한 인간을 이해하는 '사랑 재생 장치'가 될 것이다. 꿈을 기록하면서 용기있게 스스로를 대면하는 법을 배웠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건 어떤 자리일까?"
"'꿈 읽는 이'가 될 거야"하고 너는 소리 낮춰 말한다. 중요한 비밀을 털어놓는 것처럼.
그 말에 나는 무심코 웃고 만다. "저기, 나는 내가 꾼 꿈도 제대로 기억 못해. 그런 인간이 '꿈 읽는 이'가 되기란 상당히 어려울 텐데."
"아니야. '꿈 읽는 이'가 직접 꿈을 꿀 필요는 없어. 도서관 서고에서, 그곳에 보관된 수많은 '오래된 꿈'을 읽기만 하면 돼.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야."

"나는 '꿈 읽는 이'이고, 도시의 도서관에서 매일 밤 수많은 '오래된 꿈'을 읽는다. 그리고 내 곁에는 언제나 네가 있다. 진짜 네가."

"맞아. 그런데 하나 기억해줘. 만약 내가 그 도시에서 너를 만난다 해도, 그곳에 있는 나는 너에게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 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꿈들을 모아놓은 도서관을 상상했다. 도서관에서 꿈을 읽는 사서가 주인공이다. 이제 20쪽 밖에 안 읽었지만, 매혹적인 문장이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상상력이 나를 미치게 만든다. 꿈이 기록된 도서관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야기는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까? 스토리텔링의 천재 하루키 씨. 이 사랑스러운 영원히 늙지 않는 작가를 ... 정말... 어떡하면 좋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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