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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뉴옹 Feb 28. 2019

신부는 어디까지 예뻐져야 하는가

피부관리실에서 꾸밈노동을 생각하다

스튜디오 촬영을 앞두고 웨딩박람회에서 저렴하게 구매한 1회 피부관리를 받으러 갔다.

시상에, 내가 '피부관리'를 '강남'이라는 곳에서 받는 날도 오는구나. 결혼을 하다 보니 별것을 다한다.


가운으로 갈아입고 바로 관리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상담부터 받으랜다. 저렴하게 구매한 만큼 영업 행위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있었다.


상담실 원장은 유혹의 말들로 나에게 10회 관리권을 끊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하였고, 10회가 안될 것 같으니 5회. 5회가 안될 것 같으니 1회라도 추가 결제를 하도록 나를 영업했다. 


그가 나에게 한말은 이러하였다.

"원래 관리는 평소에 꾸준히 받아야 하는 것이지만, 20회 관리는 80일 뒤 결혼하는 나에겐 투 머치. 그래서 (원장 본인의)양심껏 10회로 가자. 그리고 원래 관리받던 사람이면 절대 이 금액으로 안 해주지만 이쁜이는 관리 경험 전무이기 때문에 싸게 해서 이렇게 해줄게.

이쁜이는 지금 얼굴에 각질이 심각하게 일어나 있어. 이거 봐봐 코에 피지 어머어머 이거 어떡해. 그리고 기미도 많이 올라와있다? 그리고 자기는 원장님이 딱 보니까 승모근. 승모근이 문제야. 팔목은 얇은데 이거 봐 이거 봐 팔뚝살. 이거 어떡해"


상담 원장이 묘사한 나를 그려보았다. 허허


사람이라면 당연히 갖고있는 것들을 나만의 문제인 것 마냥 말하는 것이 참... 듣고싶지 않았다.


관리를 받지 않으면 나의 이 콤플렉스들은 예식장 조명 아래 만천하에 까발려지게 될 것이라는 말.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전체의 인생에서 제일 젊은 날이기 때문에, 이 순간에 하지 않으면 나중에 한다 한 들 지금처럼 예쁠 순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말했다.

"1회만 받고 생각해볼게요.."

(라고 말했지만 생각해 볼 맘 없었음)


"돈 때문이야? 그렇지 않으면 이 중요한 날을 앞두고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신부가 어디 있겠어.

부담되면 5회만 해보자. 아님 오늘 하는 거에 조금 더 보태서 풀 관리받고 가."


"1회만 받고 싶어요.."


그는 도대체 이런 중요한 날을 앞두고 왜 관리를 안 받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뉘앙스로 내게 계속 말을 했다.

나중에는 거의 포기하는 표정으로 나에게 "신부님처럼 욕심 없는 신부는 처음 봤어~"라고 했다. 


결혼 자체에도 거품이 정말 많이 껴있다고 생각하는데, 피부관리 패키지도 그것들 중 한 개라고 생각한다.

물론 돈 때문이라는 것도 당연히 큰 이유 중 하나다. 돈이 넘쳐흐르면 '피부관리, why not?'이다.

카드 할부든 뭐든 당연히 할 수는 있다. 못하는 게 아니고 안 하는 것이다. 내 예산은 한정되어있고 그것보다 더 우선순위인 것들을 하기 위하여 나는 피부관리를 내 리스트에서 지웠다. 나에게 피부관리 패키지는 결혼 준비 리스트의 저어어기 저어어어기 맨 끝에서 순위를 다투는 것들 중 하나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들을 위한 아름다운 그림은 이러했다. 나는 여유롭게 "shut up and take my money"를 외치며 카드를 똭 내밀어 결제를 하고, 상담 선생님은 또 한 건 했다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나를 마사지실로 안내하는 것. 


나는 모든 것을 거절하고 1회만 받겠노라고 꿋꿋이 버티고 마침내 아무 추가 결제 없이 나올 수 있었다. 100만 원에 가까운 금액을 한순간에 결제할 상황이었지만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기쁨과 함께, 그가 나를 한 푼이라도 더 쓰게 만들려는 과정에서 나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 말들, 나를 생각에 빠지게 만드는 말들을 들을 수밖에 없었고 기분이 엄청 나쁘고 그런건 아니었지만 그냥...한마디로 이상했다. 그게 단순히 인신공격이나 무시하려는 의도는 아니었고 단지 거액을 결제하게 만드는 영업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나는 평소에도 내 기분이 좋아지는 선을 넘어가는 어떤 꾸밈노동들은 하지 않고 있는데,

이를테면 몇 벌의 옷을 유니폼처럼 입는다던가, 평일에 30분 더자고 선크림만 바르고 출근한다던가 하는것들이다.

대신 주말에 친구들을 만나거나 데이트를 할 때 예쁘게 입고 화장도 한다. 이렇게 나의 예쁘고 싶은 욕구를 해소하곤 한다.

이러한 나에게 저렴하게 산 1회 피부관리권은 나의 예쁘고싶은 욕구를 소소하게 채워주는 '하고싶은 일'에 속하는 것이었고, 거액을 내고 받는 피부관리 패키지는 나머지 절반의 '부담스러운 꾸밈 노동'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렇게 그들이 아닌 내가 정한 우선순위를 따르는 일은 분명 순탄치만은 않다.

피부관리실에서 결제를 하지 않고 나왔을 때, 원시시대에서 타임머신 타고 올라온 세상 물정 모르는 여자가 된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내 상황이 마치 여자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을 가난하단 이유로 '난 저게 필요없다~ 필요없다~' 라고 자기암시하고있는 '여우와 신포도'같은 상황으로 그려지는 것 같아서 싫다. 나 스스로 적당한 꾸밈을 하는 내가 자랑스럽고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엊그제 '화장을 하고서만 만나는 사이'인 지인 중 한 명을 생얼인 채로 길거리에서 마주쳤을 때 당당하게 이런 내 모습도 보여줄 줄 알아야 하는데도 그러지 못하고 마치 목욕탕에서 길거리로 뛰쳐나온 사람처럼 어디부터 가려야 할지 몰라 어쩔 줄 몰라하던 내 모습이 싫다.

과한 꾸밈을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여자는 당연히 예뻐야만 하고 그렇기 위해서는 관리를 받아야 한다는 이 공식은 누가 만든 것일까. 나는 이 공식을 '의식적으로' 반만 따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뇌 속에는 이미 이 것들이 기본값으로 박혀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 어떤 누군가도 '결혼'과 '여자'라는 이름 앞에서 이 지독한 피부관리 영업을 피해 갈 수 있었을까.

그리고 왜 이런 안좋은 기분을 감당해야 하는 건 나의 몫인가.

아름다움을 위해 우리는 얼만큼의 과소비를 하고 있는 것일까.


거대한 자본이 만든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기준선으로 정해버린 뒤 그 기준에 한참 동떨어진 삶을 사는 지극히 평범한 개인에게 그 탓을 돌리는 것. 문제가 아닌 것들을 문제로 만들어 소비하게 하는 것.

우리들은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것들에 의해 주입받은 생각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설령 내가 그걸 원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알고 있고, 실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뒤돌아보게되고, 미련이 남는 건 견뎌내야할 개인의 숙제이다. 










스뉴옹 소속 직업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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