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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Jun 18. 2019

양다리, 세다리 걸치세요

회사원 100%는 위험하다

매일 칼퇴근을 했다. 퇴근시간은 30분, 버스에 앉아 아직 밝은 창 밖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하기 딱 좋은 시간이다. 생각을 하는것조차 홀가분했다. 따로 시간을 내도 절대로 정리되지 않던 그 생각들이 퇴근길마다 가볍게 정리됐다. 회사원 15년차만에 처음으로 정시퇴근을 하며 묵은 퇴근길들을 떠올렸다.


그때는 왜 그렇게도 불행했을까. 비단 야근 때문만은 아닌것 같다. 과거의 회사원 이현진은 삶의 100%가 회사였다. 회사원 100%인 인간은 회사안 그 작은공간이 전부처럼 느껴진다. 친구를 만나도 주말에 기분전환을 해도 회사냄새가 빠지지 않아 정신이 자꾸 또 시작될 월요일의 회사안으로 향한다.


몇 평 남짓 그 작은 공간이 내 일상의 전부가 되었고 그 안에서의 누군가의 말 한마디와 행동은 오롯이 상처 120%가 되었다. 자존감은 점점 무너져 갔다. 그런 생활이 너무 오래 반복돼 자아가 소멸되면서 그 공간 안에서가 아니면 어디서도 인정받지 못할것만 같은 마음이 들어 더욱 회사원 100%의 인간으로 거듭났다.


내 삶이 회사원 100%가 된것은 팀장이 되고 나서 부터였다. 잘 해내고 싶어서, 좋은 팀장이 되고 싶어서 무리하게 되고 안될것 같은 일들을 자꾸 해내면서 스스로 일하는 기계가 되어갔다. '일만 잘하면 다른건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 이번 일도 해내면 회사에서 인정해 주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는 일을 잘하고 많이 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일을 주고 더 많은 책임감을 부여하고 더 높은 이해심을 요구했다.


"너는 잘 하니까 이것도 좀 해봐"

"책임감 높은 네가 이해하고 포용해"

"늘 그래왔듯 이것도 부탁해"


더 완벽한 회사원 100%가 되어가는 동안 억울함과 절망은 더 높아졌고 진짜 나는 소멸되어 갔다. 어떤 부당한 일을 당해도 오히려 내가 이상하게 여겨졌다. 나까지 나를 의심하는 지경이 되자 회사원이 아닌 내 안의 진짜 나는 무기력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더 불행할 수 없을만큼 불행하다. 이 불행에서 벗어나고 싶다"


허리케인의 소용돌이 속에 있으면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수습만으로도 벅차다. 나를 삼킨다. 그 허리케인을 벗어나야 진로방향이나 위력의 정도를 알고 대비할 수 있다. 내 인생에 상륙한 거대한 허리케인 속에서 어쩔줄 모른채 수습만 하며 5년이 지나갔다.


개그맨 박나래가 말한다.

"저는 개그맨으로서 무대위에서 웃음거리가 되거나 욕먹는것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것에서 실패해도 오케이 난 술 먹는 박나래가 있으니까.
또 아니면 괜찮아, 디제잉 하는 박나래가 있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편하더라구요.
사람은 누구나 실패할 수가 있잖아요. 그 실패가 인생의 실패처럼 느껴질 수가 있어요. 하지만 여러분의 인생에서 여러분은 한사람이 아니예요. 우리는 여러가지의 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것만 알고 있으면 하나가 실패해도 괜찮아요."


박나래의 이 강연은 회사 안에서의 실패가 곧 내 인생의 실패라고 여겨졌던 많은 이들의 마음의 짐을 덜어준 모양이다.


회사원이기를 거부했던 지난 2년동안 나는 여러가지의 나를 만났다. 캘리그라피 작가로서의 나, 글쓰는 나, 디자이너로서의 나, 강연자로서의 나, 맥주와 음악을 즐기는 나. 이렇게 여러가지의 나로 인생화면을 전환하며 지낼 수 있다는걸 알게되었고 여기에 회사원의 나를 하나 더 추가해도 문제없을것 같았다. 회사원의 나에게 누가 상처를 투척해도 주말이 되면 작가인 내가 나를 위로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칼퇴근을 할것이다. 회사는 내 삶의 20%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만 최선을 다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캘리그라피 작가로서의 나와 글쓰는 나 그리고 매일 오늘의 문장을 투명엽서에 써서 올리는 나를 위해 인생화면을 수시로 전환할 것이다. 나의 일부인 회사원으로서의 내가 더 건강하게 회사생활을 할 수 있도록 계속 마음의 양다리, 세다리를 걸칠 예정이다. 그리고 남은 미지의 영역인 나를 위해 또 새로운것에 도전할 것이다.


회사원 100%가 되지 마세요. 진짜 내 삶에 회사원 하나를 추가하세요. 가능한 양다리, 세다리를 걸치세요. 회사원인 채로도 행복하세요. 꼭.





쓰는 아도르

사진,글,캘리그라피 adore
블로그 : http://jwhj0048.blog.me
인스타그램 : http://www.instagram.com/adore_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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