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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의 취미 생활

백수 주제에 이런 돈을 써도 되나 싶다가도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고

by 백수쟁이

월, 수, 금요일마다 문화회관에 간다. 월요일엔 꽃꽂이 수요일은 재봉틀, 마지막으로 금요일엔 가죽 공예 수업을 듣는다. 7월에 시작해 어느덧 9월, 마지막 달 수업을 듣고 있다.


꽃꽂이는 남편의 권유로 시작했다. 예전부터 그는 내게 꽃집을 하면 좋겠다고 했다. 정작 나는 꽃에 무관심한데, 쉬는 동안에 한 번쯤 해보면 좋을 것 같아 듣게 됐다. 수업 첫 날 만난 선생님은 단아하고 단정했다. 매일 예쁜 꽃을 보는 사람이라 그런 걸까, 우아함이 느껴졌다. “꽃꽂이는 어르신들이 유독 잘하세요. 오랜 세월 꽃을 가까이에서 봐왔고, 관심이 많기 때문이에요.” 수업을 소개하며 했던 이 말이 참 좋았다. 무슨 일이든 오래 지켜보고 관심을 가진다면 잘할 수 있다는 응원 같아서. 꽃꽂이에도 연륜이 깃들 수 있다는 게 괜히 따스하게 느껴져서.


꽃꽂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업이다. 매주 새로운 꽃을 만지고, 꽃의 이름을 배운다. 장미나 수국 정도만 알았는데, 생경한 꽃 이름을 들을 때면 나는 모르지만 누군가 알아보며 꽃이름을 말할 때면 새삼 신기하다. 나만 몰랐지 꽃 너도 이름이 하나하나 다 있었구나 싶어서. 꽃을 다듬고 꽂고 선생님의 피드백을 들으면 수업은 끝, 꽤나 심플해 보이지만 매번 수업 시간 두 시간을 꽉 채우고서야 끝이 난다.


수업이 끝나면 각자 꽃을 챙겨 돌아간다. 이게 가장 좋다. 덕분에 매주 새로운 꽃을 집에 들이게 됐다. 집에 돌아와 배운 내용을 복습하며 다시 꽂아 보기도 하고, 유리병에 꽂아 집안 곳곳에 배치해 둔다. 덕분에 매일 꽃을 보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재봉틀은 오래 전분터 해보고 싶었던 취미였다. 소품을 직접 만들고, 언젠가는 판매도 해보겠다는 야무진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수업을 들으며 단번에 알았다. 재능이 없다는 걸.


기계를 다루는 건 너무 어려웠고, 짝꿍과 하나의 재봉틀을 번갈아 쓰는 것도 긴장되더라. 나는 옆에 누가 있으면 계란 후라이도 못 만드는 사람이니까. 집에 재봉톨이 없으니까 복습도 할 수 없었다. 재봉틀을 사볼까 잠깐 고민한 적도 있지만, 이제는 아예 흥미가 사라졌다. 아쉽기는 하지만 이런 것도 삶이다. 내가 관심을 가진다고 해서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걸 새삼 알았다.


가죽 공예 수업은 매주 숙제가 있다. 대체로 바느질인데 처음엔 이게 싫었다. 나는 바깥의 일을 집에 들이기 싫어하니까. 회사에 다닐 땐 업무를 집에 들이는 게 너무 싫었는데, 취미 생활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매주 바늘과 실, 가죽에 집중하며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할수록 마음이 평안해지더라. 수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얼마 전 바느질을 하다 여덟 살 무렵의 내가 떠올랐다. 거실 바닥에 앉아 자투리 천을 바느질하던 모습이. 그때부터 나는 실로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프랑스 자수, 뜨개질, 그리고 가죽 공예까지. 기계보단 손으로 천천히, 무언가를 완성해 가는 일이 내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어제 문화회관에 가니 다음 분기 수업 안내 책자가 비치돼 있었다. 시간 참 빠르다. 벌써 석 달 째라니. 재봉틀은 이제 제외. 꽃꽂이와 가죽 공예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새롭게 요리나 발레도 관심이 간다. 백수 주제에 취미 생활에 너무 많은 돈을 쓰는 건 아닐까 싶다가도 직장인 시절엔 정작 해보지 못한 일이니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고 합리화하게 된다. 내일까지만 고민해 보고 수강 신청을 해야겠다.


꽃꽂이 수업에서 한 실습
꽃꽂이 수업 후, 챙상 위에 올려둔 꽃
가죽 공예 바느질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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