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포근한 금요일 밤을 보냈다.
수요일에 백신을 맞았다. 그날 시아버님이 아프셔서 병원을 이리저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온몸이 아팠다. 이날도 시아버님 병원에 가고 심부름을 할 계획이었으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금요일이 되서도 몸은 영 좋지 않았지만 출근을 했다. 일하는 내내 안방 침대가 아른거렸다.
금요일 퇴근길, 집으로 가는 환승역에서 남편을 만났다. 먼저 도착해 나를 기다리던 남편을 만나자마자 포옹을 하고, 남편은 내게 오늘도 수고 많았다고 다정한 위로를 건넸다. 퇴근길에 남편을 만난 건 참 오랜만이었다. 이직하기 전 한 달 정도 휴식을 취하던 남편은 제주에 가있었고, 이직을 하고 나서는 매일 철야를 하느라 얼굴 보기 힘들었다. 연애 때 종종 퇴근 후 데이트를 할 때는 마냥 즐겁고 신이 났던 거 같은데, 지금은 서로가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모처럼 퇴근길에 만나거라 기분도 낼 겸 외식을 하려 했는데 떠오르는 메뉴가 없었다. 우리가 이 근처에서 무얼 맛있게 먹었었더라, 근처에 맛집이 뭐가 있지 하며 찾아봤지만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았고 집에 있는 문어 육수가 생각나 그에게 말했다. 문어 라면 끓여 먹는 거 어때?
집에 돌아와 몇 가지 자잘한 집안일을 하는 동안 남편은 라면을 끓였다. 혼자 셰프이자 보조로 1인 2역을 하는 역할극을 하며 나를 웃기기도 했다. 남편이 만든 문어 라면은 일품이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개운했다.
금요일 오후가 되면 이상한 마음이 든다. 마음이 촤악 가라앉으며 우울감이 들다가도 번화가에 나가 왁자지껄 떠들며 신나게 놀고 싶은 마음이 꿈틀댄다. 친구에게 연락해 볼까, 가까운 데 혼자 여행이라도 갈까, 커피숍 가서 책을 읽을까 여러 생각만 하다가 끝나버리는 금요일을 몇 번이고 반복하다 모처럼 포근한 금요일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