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무얼 할 때 가장 좋으냐고 물었다.
언젠가 남편에게 물었다. 나와 무얼 할 때가 가장 좋으냐고. 그는 나와 여행할 때가 가장 좋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 나는 얼마간 절망했다. 우리는 지난한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부부인데, 어쩌다 행운처럼 맞게 되는 여행 할 때가 좋다니 이를 어쩌나 하는 마음이었다.
이 대화가 다시 생각난 건 이번 여행에서였다. 일주일 먼저 남편이 태국으로 떠났고, 일주일 뒤 남편에게 갔다. 일주일 만에 만나서였을까. 이국의 공항에서 만나서였을까. 그를 보니 반갑고, 안심이 되었다. 우리는 열흘 정도 여행했다. 태국은 올봄에도 방문했던 터라 지난번보다는 덜 생경했다.
매일 밤 나는 느긋하게 맥주를 마셨고, 남편은 분주하게 다음날 계획을 세웠다. 다음 날이 되면 그는 최선을 다해 나를 가이드했다. 생각해보면 남편은 먼저 태국에 가있는 동안에도 전화를 걸어 나와의 이런저런 여행 계획을 설명하고 의견을 묻곤 했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면 남편은 떠나기 전부터 일정을 짜고 내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며 우리의 여행을 챙겼다.
남편이 안쓰럽기도 하고 고마웠다. 여행에 있어 남편은 늘 그랬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여러 계획을 세우고, 나와 의견을 조율하고, 여행을 가서는 그다음 날 일정을 체크하고, 가이드하고. 예전엔 이걸 왜 몰랐을까. 진작 알았더라면 여행지에서 우리는 덜 싸우고 더 다정했을 텐데.
여행할 때가 가장 좋다던 남편의 대답이 다시 생각이 났다. 그제야 알았다. 여행이 주는 새로움과 특별함이 좋다는 의미가 아니었다는 걸. 낯선 곳에서 기꺼이 운전을 하며 내가 좋아할 만한 곳을 데려가는 일. 맛있는 음식점을 데리고 가는 일. 내가 좋아하는 야시장 구경을 매일같이 하는 일. 나의 음주에 인색한 그가 여행 기분 내라며 술을 권하고 함께 마시는 일. 내 컨디션을 살피고 일정을 조정하는 일. 사고 싶은 게 있으면 마음껏 사라며 용돈을 쥐어주는 일. 그러고서는 오늘 어땠냐며 나의 반응을 살피는 일. 남편에게 여행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나와 여행할 때가 가장 좋다는 건, 단순히 일상을 떠나서 좋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나와의 여행을 위해 준비하는 모든 과정, 그리고 여행지에서 우리의 교감이 좋다는 뜻인 것 같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이런 생각 때문인지 우리는 여행 중에 단 한 번도 다투지 않았다. 여러모로 행복하고 다행한 여행이었다.
그리고 만약 남편이 내게, 본인과 무얼 할 때가 가장 좋으냐고 묻는다면 나 역시 여행을 할 때가 가장 좋다고 대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