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할퀴었는데, 또 다른 시작이 되었다.
남편과 대판 싸웠다. 지난 연말의 일이다. 왜 싸웠더라, 기억이 안 난다.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침대방으로 도망쳤는데, 남편이 따라왔다. 계속 뭐가 문제냐고 물어대는 바람에 다 쏟아부었다. 남편이 대꾸할 틈을 조금도 주지 않았다. 마치 래퍼처럼 퍼부었다. 남편은 좀 놀라기도 한 것 같고, 상처받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 뒤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평온하다.
지난 주말, 커피숍에서 남편에게 물었다. 요즘 우리 어떤 것 같냐고. 나는 우리가 어느 시점을 지나고부터 부쩍 좋아진 것 같은데 당신은 어떠냐고.
다행히 남편도 그렇다고 했다. 연말의 큰 싸움 이후, 그는 많이 변했고 사실 변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했다. 우리의 생각이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을 인정했고, 상대에게 못내 아쉬운 부분은 자기가 보완하여 채워야겠다고 다짐했단다. 그러고 나니 한동안 집에 들어오기 싫었던 마음이 싹 사라지고 집이 편해졌다고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종종 싸우며 곧 화해하긴 했지만 평온하기보다는 살얼음 위를 딛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남편도 집도 편하다.
그래서인지 남편에 대한 불만보다 남편의 노력이 더 눈에 들어온다. 집에 돌아온 나를 따스한 포옹으로 맞아주고, 맛있는 식사를 내어준다. 내가 바쁠 때면 선물처럼 모든 집안일을 해둔다. 내가 좋아하는 맥주를 몰래 사와 짠-하고 내놓기도 하고, 동네 곳곳을 탐방하며 산책을 한다. 잔소리나 충고 대신 청유로 은근하게 내 마음을 움직인다.
지난 연말, 싸우길 참 잘했다. 끝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할퀴었는데, 또 다른 시작이 되었다. 아마도 우리는 또 싸우겠지만 그때처럼은 아닐 것이다. 신혼 2년 차, 이제 좀 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