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서바이벌'에 대해 요즘 드는 생각

우리는 무엇이 그렇게 불쾌할까

by 아득

어떤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봤다.
나는 그 장르의 오랜 팬이라, 웬만하면 재미없는 프로그램도 끝까지 보는 편이다.
편집이 엉망이든, 룰이 이상하든, 플레이어가 다소 답답하든 그 안에서도 나름의 서사를 발견하며 시청을 이어간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도저히 끝까지 볼 수 없었다.
불쾌하다는 감정이 처음으로 강하게 들었고, 어느 순간부터 결과조차 궁금하지 않았다.


문제는 단순히 게임의 룰이나 편집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안에서 한 플레이어는 마치 경쟁을 포기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가 욕망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는 게 아니라,
욕망을 표현하지 않는 쪽이 더 편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자신을 드러내는 일보다 양보하는 편이,
의지를 말하는 일보다 조용히 한 발 물러서는 쪽이
그에게는 더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그 태도가,
한 사람을 넘어서 프로그램 전체의 몰입을 흔들고 있었다.

사람들이 댓글로 말하던 불쾌함은 정확히 그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왜 저 사람은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
왜 그 자리에 있으면서 아무런 태도를 보이지 않는가.

생각해 보면,
우리가 누군가를 응원하게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그건 그 사람이 성공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몰입하고 있는 사람에게 감정이입한다.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
다시 도전하려는 사람,
자신의 감정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사람에게 우리는 마음이 간다.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결국 ‘결과’보다 ‘서사’를 응원한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선수,
이기진 못했지만 끝까지 뛰는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는 건
우리가 그 안에서 진정성을 본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돌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단순히 외모나 무대 위 퍼포먼스에 끌려 팬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지속 가능한 응원으로 발전하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의 서사를 알게 된다.


연습실에서 흘린 땀, 데뷔까지의 경쟁과 탈락 위기,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무대를 포기하지 않는 모습들.
그렇게 쌓인 감정의 조각들이
우리가 그 사람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단지 결과만 보여주는 누군가에게는
그만큼의 감정 몰입이 어렵다.


응원이란 결국 ‘내가 감정 투자한 이야기’를 끝까지 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 이야기에서
이탈하거나 멈추거나 아무 말 없이 사라질 때,
그건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응원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상처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묻게 된다.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는 태도에 그렇게 불쾌함을 느낄까?

그건 우리가 그 사람에게 ‘몰입할 수 있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단순히 ‘게으른 사람’을 싫어하는 게 아니다.
그 태도 안에서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 붕괴를 목격한다:


노력의 규범이 깨진다.


우리는 무언의 계약을 믿는다.
‘같은 룰 안에 있으면, 각자 할 만큼은 해야 한다’는 믿음.
그걸 깬 사람은, 남은 사람들의 태도까지 무력하게 만든다.


과정이 무시된다.


누군가는 진심으로 몰입하여 탈락했고,
누군가는 수동적으로 생존했다.
우리는 과정이 불공정하다고 느낀다.


감정의 몰입이 깨진다.


감정은 일방적인 게 아니다.

함께 서사를 만들어가야 하는데,
상대가 스스로 그 중심에서 빠져나가버리면, 나만 감정 소비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무기력한 태도’가 아니라, ‘관계의 붕괴’에 분노하는 것이 아닐까.
정서적으로 함께하고자 했던 서사의 결핍에 대한 슬픔 같은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