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 '캔슬컬처'에 대해 요즘 드는 생각

분노는 때로 정의의 이름을 빌린다

by 아득

요즘은 누군가 실수를 하거나,
논란이 될 만한 말을 하면 금세 화면에서 사라진다.
예능에서도, 광고에서도, 뉴스에서도.
과거의 출연 장면은 편집되고,
검색 결과는 점점 지워진다.
사람들은 그걸 나락 보냈다고 말한다.
그 표현은 어느새 익숙해졌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불편함은 이해된다.
문제가 있었고, 피해자가 있었고,
그에 대한 책임이 필요하다는 말은 맞다.
사법적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대중이 목소리를 내는 건
어떻게 보면 필요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반응이 사법이 아니라 감정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처음엔 모두가 분노한다.
그리고 그 분노는 빠르게 커진다.
댓글이 쏟아지고,
불매가 시작되고,
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위험해진다.
하지만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며칠 뒤, 새로운 타깃이 등장하면
예전 분노는 조용히 사라진다.


그 흐름을 지켜보다 보면,
우리는 무엇에 분노했는지도
왜 분노했는지도
어느새 흐릿해진다.
사람을 지운다는 건
그 사람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와 함께했던 기억도 지우려는 일이다.


소비하지 않겠다는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건 윤리적 판단일 수 있고,
감정적인 거리 두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선택이
다른 이들에게도 요구되기 시작할 때 생긴다.

누구의 영화를 봤다고,
누구의 음악을 들었다고,
그 사람을 무조건 옹호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소비하는 사람까지 비난받고,
바보 취급을 당하는 풍경은 위험하다.
비판은 자유지만,
강요는 또 다른 억압이 된다.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분위기,
기억하지 말라는 눈치 속에서
누구도 책임을 끝까지 묻지 못하고,
누구도 진심으로 용서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누군가는 재평가라는 이름으로 돌아오고,
다시 소비되며 칭찬받는다.
불과 몇 해 전까지 욕을 듣던 사람이
또다시 환영받는다.


그럴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정말 선과 악을 구분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지금의 분위기를 따라
그때그때 옳다고 여겨지는 방향으로만
감정을 옮기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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