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아빠살이] 주식 전업투자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아빠 이야기
누구나 계획을 가지고 있다, 주둥이를 처맞기 전까진.
주식시장에서 회자되는 마이크 타이슨의 말이다. 주식 투자가 그만큼 처절하다는 이야기다. 어쭙잖게 덤볐다간 시퍼렇게 멍들기 쉽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 철저히 전업 계획을 세웠다. 자신의 열정을 불살라 더 행복한 미래를 꿈꾸기 때문이다. 주식 전업투자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마흔둘 아빠 김광헌 씨 이야기다.
그는 무역인이었다. 중견기업에서 과장까지 오른 능력 있는 직장인이었다. 팀원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때마다, 업무에 보람을 느낄 만큼 열정도 넘쳤다. 하지만 직장 생활 10년 차에 권태기가 찾아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나치게 안정된 직장이 독이 됐다.
"서른아홉에서 마흔 살이 되던 때였어요. 뭔가 크게 해내고 싶은 의욕이 넘치던 시기였죠. 저는 준비가 돼 있었지만, 제가 가진 열정의 70%만 들여도 회사에서 큰 문제없이 월급이 나왔어요. 열심히 해서 큰 성과를 내도 보상을 주지 않았어요. 그냥 시간을 보내면 자연스럽게 승진하는 조직이었어요. 그래서 직원들도 애써 노력을 하지 않는 분위기였고요. 그 분위기에 편승해 저도 어느 순간 잘리지 않을 만큼만 일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너무 좀비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 열정을 담기에는 회사가 너무 작아져 버린 거죠."
그는 40대를 제2의 20대라고 정의했다. 20대의 패기에 그간의 경험과 열정이 더해져 더 큰 도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과에 대한 보상이 없는 조직 문화는 그를 실망케 했다. 그때부터 다른 길을 꿈꿨다. 당장 창업을 떠올렸지만, 마땅히 할만한 아이템이나 사업을 추진할 능력이 부족했다. 그러다 예전부터 해오고 있었던 주식투자를 떠올렸다.
"대학생 때 투자 소모임에도 나갔을 만큼 주식에 관심이 많았어요. 투자금이 크진 않았지만, 책으로 배운 내용을 실전에 적용하며 실전 투자도 했어요. 특히, 졸업을 앞둔 2007년에 4대강 대선주에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후 6개월 동안 하루에 3시간만 자고 주식을 공부할 정도로 몰두하기도 했어요. 돌이켜보면 그때는 ‘내가 주식으로 부자가 돼야겠다’며 눈이 돌아갔던 것 같아요."
한때 주식부자를 꿈꿨던 그도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님'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남’들처럼 하루를 보냈다. 그는 특유의 열정으로 10년을 열심히 일한 끝에, 칼퇴근을 해도 매달 통장에 400만 원이 꽂힐 만큼 안정된 직장을 얻었다. 그런 그가 전업투자자에 도전하려면, 그런 회사를 박차고 나올 만큼 확실한 근거가 필수였다. 7살 딸아이의 아빠이자 아내의 남편으로서 가정을 지켜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2017년이었어요. 우연히 예전에 가입했던 주식 카페에 들어갔는데, 새로운 매매법에 대해 센세이션이 일어났더라고요. 일명 수급매매법이었는데, 장이 끝난 이후에 알 수 있는 기관과 외인의 수급을 장중에 실시간으로 파악해서 매매하는 방법이었어요. 실제로 그 매매법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요."
그는 새로운 매매법이 궁금했다. 주식이 자신의 새로운 길이 될 수도 있었기에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인터넷 카페 정모에 참석해 이미 전업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새로운 매매법으로 한 달에 1000만 원에서 2000만 원까지 벌고 있었다. 하지만 한 목소리로 전업투자를 말렸다.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매매법을 공부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저는 근거가 확실해야 실행하는 편입니다. 새로운 매매법을 알게 된 후 반년 정도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이 매매법은 한 번에 큰 수익은 못 내지만, 저만 잘하면 한 달에 500만 원 정도 꾸준하게 벌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적어도 월급 이상은 가능할 것 같았어요."
매매법에 대한 확신을 가진 후 그는 주식 전업투자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가장 먼저 아내의 허락을 구했다. 사실 애초에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일반적으로 주식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게 사실이기 때문에 아내를 어떻게 설득했는지가 매우 궁금했다. 그는 안정된 직장에 다니고 있었지만 번듯한 집 한 채 없었고,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도 있는 상황이었다. 말을 꺼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의 반응은 굉장히 의외였다.
"'그래? 언제부터 할 건데?'라고 아내가 말했어요. 부정적인 멘트는 전혀 없었어요. 저에 대한 믿음이 있기도 했지만, 사실 이전부터 약간 세뇌를 시키긴 했어요. 하하."
그는 새로운 매매법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면서 밤마다 아내에게 매매법에 대해 설명했다. 자신이 확신한 부분에 대해 지속적으로 이야기했다. 말로만 그친 게 아니라 수개월 이상 퇴근 후 공부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아내가 남편의 결단에 주저 없이 손을 잡아준 것이다. 같은 40대 아빠로서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 이유로 아내가 허락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내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전업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남편은 회사를 다니고 있었어요. 그래서 '진짜 하겠어?'라는 마음이 컸어요. 그런데 그 이후에 6개월 정도 잠을 줄여가면서 공부를 하더라고요. 이렇게 좋아하고 노력한다면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반년 정도 더 지켜봤죠. 변함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심을 느꼈어요. 그래서 ‘해볼 거면 좀 잘해!’라고 말해줬습니다."
그는 오히려 아내보다 어머니를 설득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사업이 어렵게 되면서 사실 어머니가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해오셨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어요. 처음에는 육아휴직이라고 말씀드리고 2주 정도 집에 있으면서 주식하는 모습을 보여드렸어요. 그러다가 전업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데 저희 어머님은 좀 이기시는 편이에요. 처음에는 '그게 말이 되냐?'시며 반대하셨어요. 안정적인 직장을 나오는 걸 이해하지 못하셨어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들을 PPT로 만들어서 보여드렸어요. 회사 생활이나 도전에 대한 유튜브 영상도 보여드렸어요. 어머니가 어떤 점을 걱정하시는지 충분히 알지만 2~3년 정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결국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전업에 대한 가족들의 동의를 구한 후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했다. 회사는 그해 여름까지만 다니고 퇴사하기로 정리했다. 그리고 남은 준비는 환경설정과 시드머니. 그가 주변의 전업투자자들을 만나 가장 많이 들었던 조언은 환경설정이었다. 투자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최소 2년에서 5년 정도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들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투자는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도전 기간을 2년으로 잡고 그 기간 동안의 시드머니를 1억 원으로 설정했다. 청약할 때 보태려 모아 둔 돈이었지만, 아내의 동의하에 투자금으로 삼았다. 1억 원 안에는 생활비도 포함돼 있다. 한 달에 300만 원을 생활비로 잡으면 2년간 대략 7000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머지 3000만 원+@ 정도를 주식에 직접적으로 투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다시 말해 1억 원으로 그동안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면서, 2년이란 시간 내에 주식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이다. 그는 실패에 대한 대비책도 구체적으로 세웠다. 아이가 아직 어릴 때 도전해야 부담이 없고,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가 중요했다. 그가 마흔에 전업투자를 시작한 이유다.
"실패해도 괜찮을 담보요? 나이와 건강이죠. 제 생각에 전업 주식투자는 한 1년 6개월 정도면 스스로 알 거라고 봐요. 만약 나쁜 버릇을 고칠 수도 없고 실력이 올라갈 가망도 없다면 다른 길을 찾아야죠. 안되면 남은 6개월 동안 취업 등을 준비할 생각이었어요. 그게 가능한 나이와 건강이 담보라면 담보입니다. 실패하더라도 후회는 없어요. 꼭 하고 싶었던 도전이고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는 게 맞다고 보거든요."
다행히 그는 처음에 설정한 기간을 넘어 2년 6개월 동안 주식 전업투자자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처음 2년간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하락장에서도 최소한 손실은 입지 않았다. 다행히 올해부터는 매달 400만 원씩 수익을 내고 있다. 그래서 1년 더 도전을 연장했다.
"생계비 포함해 1억 원으로 시작했는데 2년 6개월 동안 5000만 원 정도 벌었어요. 전업투자자로 살려면 한 달에 최소 1000만 원 정도는 벌어야 하니까 아직 한참 멀었죠. 그래도 이제는 수익을 내고 있어요. 그래프로 보면 'J'(제이커브)인 셈이죠."
그는 실제로 전업투자를 해보니 생각보다 힘들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기본적으로 한 달에 500만 원 정도는 가능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그것조차도 힘들었다. 매매를 해보니 버려야 할 나쁜 습관들이 많이 나타났고, 그로 인해 멘탈이 붕괴되는 일도 자주 일어났다. 숨만 쉬어도 빠져나가는 생활비와 매매 손실에 대한 심리적인 압박감 등이 그를 계속 괴롭혔다. 시작부터 예상치 못한 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배움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투자를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해 슬럼프에 빠졌다.
"주식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어요. 4월에 갑자기 마인드가 망가지면서 이상한 짓을 하고 있더라고요. 한번 흔들리니까 내 기준이 아닌데도 매매했어요. 뇌동매매를 하면서 요행을 바라기 시작했죠. 소위 기술자(전업투자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자기 기준대로 매매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니 불안했어요. 괜히 회사 나와서 가족들 고생시키는 건 아닌가란 생각이 나더라고요. 가족과 나에 대한 미안함과 부정적인 감정이 계속 떠올랐어요. 언젠가 딸이 웃고 있는 모습을 봤는데 '저 웃음을 계속 지켜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니까요. 모든 게 계획대로 되지 않았어요. 어제보다 발전한 오늘이 되지 못했어요. 저번 달 보다 더 망가진 내 모습에 자신감이 없어지고 미래도 불확실하게 보였어요."
그는 이때를 '마의 4월'이라고 회상했다. 지난 시간 동안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슬럼프를 멋지게 이겨냈다. 바로 다음 달에 자신의 방식대로 꾸준하게 수익을 내면서 자신감을 회복한 것이다. 이날 이후 그는 계속 매매법에 대한 확신을 검증하면서 멘탈을 다져나갔다. 때문에 손실을 봐도 자신의 원칙을 지켰다면 멘탈이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고 멘탈이 흔들리게 될 때면 손실을 본 다음 날 본래의 방법으로 수익을 내어 회복했다. 지옥과 천당을 오갔던 2019년 4월과 5월의 경험은 그가 주식시장에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깨닫게 해 준 소중한 자산이 됐다.
그는 인생역전(?)을 위해 코인이나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들과는 결이 다르다. 직장이나 연봉에 대한 불만보다는 자신의 한계를 넘고 싶은 열정 때문에 내린 결단이다. 오로지 주식을 위해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단 말이다. 하지만 주식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 성과에 대한 보상이 정해져 있잖아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 이상 받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거든요. 하지만 주식은 천장이 없어요. 어느 정도 반열에만 오르면 자신의 그릇에 따라서 한 달에 2~3억 원 혹은 그 이상을 벌 수 있어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그리고 창업은 지금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처럼 외부 변수가 많지만, 주식은 오로지 내부적인 변수만 관리하면 돼요. ‘나’만 잘하면 되죠. 그래서 실패해도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꼭 물어야 한다면 자기 손가락밖에 없는 것이죠."
무엇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주식을 재밌다고 말했다. 주식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은 손실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잘 안다. 주가가 오르면 올라서, 내리면 내려서 마음이 종일 조마조마하다. 처음에 수익을 보며 느꼈던 흥분과 행복감은 이미 계좌 잔고와 함께 녹아버렸다. 그래서 재미있다는 표현이 참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제 주식 전업투자를 한 지 2년 6개월이 됐어요. 지금도 너무 재미있어요. 그래서 계속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손실을 봐도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요. 오히려 안 되는 날도 주식시장을 계속 보는 편이죠. 아직 배우는 입장이라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스트레스일 수도 있지만, 제 매매법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래서 다시 수익을 내서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힘을 내는 편입니다."
그는 자신이 체득한 기법과 기준으로 단타 매매를 한다. 사실 개인 투자자가 단타로 수익을 내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는 가장 큰 이유로 '요행'을 꼽았다. 요행이란 사전적 의미로 '뜻밖에 얻는 행운'이다. 단타는 장투보다 더 많이 공부해야 하지만 별다른 노력 없이 수익을 내려고 하니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기투자는 불로소득이라고 생각해요. 단기 투자에 비해서 투입되는 노동력이 적어요. 많은 부분을 시간이 해결해 주거든요. 하지만 단타는 일단 많은 노동력이 투입돼요. 대부분 단타로 수익을 내기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매매 과정에서 생각보다 신경을 많이 써야 했기 때문일 거예요. 일단 계속 봐야 하잖아요.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이유죠."
그의 단타 매매를 창업에 빗대어 설명했다. 더 많은 공부와 준비가 필요하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창업을 하려면 자본금은 물론이고 대출까지 써서 매장 임대, 인테리어, 인건비 등에 투자를 하잖아요. 아주 많이 신경을 써야 하고 초기 투자비도 많이 들어요. 주식도 마찬가지예요. 우선 시드머니가 있어야 하고, 투자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도 갖춰져야 하며, 공부도 많이 해야 해요. 오히려 주식투자는 창업처럼 초기 투자비가 많이 필요 없어요. 그런 후 투자 리스크를 줄여나가는 방법만 체득하면 오히려 창업보다 위험부담이 낮은 편이에요. 사람들은 주식이 위험하다고 하는데, 사실 주식으로 돈을 잃기는 참 힘들어요. 더 정확히는 탕진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리스크를 줄이는 ‘손절’만 잘해도 소위 말하는 깡통 차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거실에서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작은방에서 끊임없이 매매 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장중에 인터뷰 시간을 잡아 처음부터 마음이 쓰이던 차였다. 단타로 매매를 하려면 모니터 앞에서 호가창을 뚫어져라 쳐다봐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괜히 생계가 걸린 시간을 뺏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두 번 세 번 걱정을 내비쳤다.
"괜찮아요.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다고 돈이 벌어지진 않거든요. 물론 돈을 벌 수 있는 포인트를 알아낼 수도 있어요. 하지만 투자의 근거가 확실하다면 나름의 기준으로 자동매매를 설정해 놓으면 되거든요. 그리고 가끔 뉴스나 체결 내용만 체크하면 됩니다. 내가 놀아도 주식시장은 계속 일하고 있기 때문이죠. 제가 초 단위로 거래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고요."
실제로 그는 인터뷰 중에 매매 수익으로 30만 원을 벌었다. 걱정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그는 주식 전업투자를 시작한 후 시간을 지배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족과 더 가까워지게 됐다.
"회사 다닐 때는 일을 하나도 안 하고 컴퓨터만 보다가 퇴근해서 집에 와도 이상하게 피곤하고 그냥 쉬고 싶었어요. 아마도 오늘 쉬어야 내일 출근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전업투자자는 일단 출퇴근 개념이 없잖아요. 내가 시간을 지배할 수 있게 되면서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자율성이 높아졌어요. 물론 정신적으로는 직장 다닐 때 보다 더 힘들지만, 최소한 아이가 와서 놀자고 할 때 쉬어야겠다는 생각은 이제 안 들어요. 아이에게 더 살갑게 대할 수 있게 된 거죠. 비록 금전적인 여유는 조금 없어졌지만, 아이나 아내와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더 생긴 것 같네요."
그는 지난 40년을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아왔다고 말했다. 보통 사람들처럼 정해진 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그냥 그대로 걸어가도 인생 후반전 역시 무던히 보낼 수 있었지만, 굳이 방향키를 거칠게 돌리면서까지 고생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길의 끝에 자신이 이루고픈 이상향이 있기 때문이다.
"'유레카를 외치면 망한다'는 주식 속설처럼, 전업투자자 생활은 매일매일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항상 불안감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경거망동을 막아주는 좋은 불안이라고 생각해요. 이 마음 그대로 계속 노력해서 시간 대비 더 높은 수익을 내고 싶어요. 늘어난 시간과 수익만큼 가족에게 더 충실할 수 있잖아요. 돈 많이 벌어서 가족들이 걱정 안 하고 행복하게 살게 해주고 싶어요."
[알림] 이 글은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에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