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들숨

by Adyton

어제 하루종일 비가 내리다가 점심 무렵이 되자 날이 갰다. 모처럼 맑은 하늘이 반가워 숲 속을 향해 달렸다. 밤새 비가 쏟아진 후라 계곡의 물은 꽤 불어 있었다. 한 시간 남짓 달려 닿은 산 속에는 크고 작은 사찰들이 흩어져 있다. 어떤 곳은 무성한 풀에 잠겨 있었고, 어떤 곳은 닫힌 문 너머로 풀벌레 소리가 새어나왔다. 작은 사찰 하나에 들러, 연꽃 봉오리로 가득한 연못 앞 벤치에 앉았다. 연꽃들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은 채 촘촘히 떠 있었고, 시간은 그 밀도의 수면 위를 천천히 미끄러졌다.


연꽃 하나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꽃의 떨림이 물 위에 잔잔한 파동을 남겼다. 그 결이 연못 가장자리를 한 바퀴 돌아오는 데엔 긴 시간이 필요했다. 바람은 그 물결 위를 어루만지듯 산사의 고요 속으로 스며들어, 대나무 잎을 스치며 향처럼 코 끝을 맴돌았다. 오전의 비는 금세 말라 습하지 않았다. 옅게 깔린 구름 덕에 햇살도 부드러웠다.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선선했고, 연못의 바위틈으로 은근히 흐르는 물소리는 청량했다.


고개를 들자, 대나무숲과 웅장한 적송이 산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내 날숨이 대나무 잎 끝에 닿았을 때, 숲은 나를 바라보는 쪽으로 천천히 돌아서 있었다. 적송이 운집한 풍경은 햇살이 쨍하게 비추는 날보다, 비나 안개가 스민 날에 훨씬 더 운치를 품는다.


물과 햇살을 머금은 장마철의 숲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무성해져간다. 완전히 녹색으로 물들기 전의 그 싱그러움은, 눈뿐만 아니라 폐부 깊이까지, 숲 초입부터 들숨에 가득 찼다. 어린 여름의 공기는 아직도 폐부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 나뭇잎조차 흔들리지 않을 때, 풍경은 안쪽으로 기울어 사찰의 기왓장 위로 가만히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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