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했던 내가, 아주 게으른 사람이 된 이유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감히 나를 앞질러 가는 걸까?
굉장히 분했다.
나는 나를 앞지르는 걸 참을 수 없는 소년이었으니까.
그래서 열심히 뛰었다.
학창 시절 좋은 성적을 받아낼 때면, 내 인생은 황금빛으로 가득할 것처럼만 보였다.
"전교 1등이다. 축하한다."
학창 시절 학생주임이었던 과학 선생님께서 했던 말.
이때까지 나는 정말 잘 달렸다.
그러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대입 실패, 연이은 편입 낙방, 가족의 죽음, 이어진 긴 히키코모리 생활.
눈앞을 지나던 사람들은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졌고,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니 두려웠지만 조용한 안도가 밀려왔다.
'어차피 따라잡을 수 없겠구나. 하하.. 난 이제 사회의 쓰레기가 되었구나.'
한참을 서 있었다.
어느새 몸무게는 100kg을 넘겨버렸다.
그러다 문득 두려워졌다.
뒤처진 인생을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다시 트랙 위에 섰다.
예전처럼 전력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아뿔싸
나는 뛰는 법을 까먹었다.
문자 그대로, 뛰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예전엔 반에서 가장 빠른 아이였는데, 지금은 발이 엉기고, 호흡이 꼬이고, 몸이 나를 믿지 못했다.
그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깊어서, 한참을 울었다
절망의 끝에서 무릎을 꿇고, 울다 지쳐 조용히 앉아 있었다.
편히 눕지도 못했다. 이미 보이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의식했으니까.
그러다 어느 순간 우는 것도, 앉아 있는 것도 지겨워졌다.
그래서 일어나,
걸었다.
'어차피 망했어. 어차피 늦었어.'
그런 체념 속에서 나는 천천히 걸으며 생각이나 하기로 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나는 왜 뛰고 싶었던 걸까.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였을까.
정말 나는 달리고 싶지 않은 걸까? 아니면 합리화를 위한 자기 위안 속에 머문 걸까?
나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뛰지 못하니 생각할 시간이 넘쳤다
내게 남은 재주는 그것뿐이었다.
매우 느리고,
매우 게으르게 수년이 지났다.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블로그를 개설했다.
수백 편의 영상을 만들었고 글을 썼다.
여전히 난 그 누구도 앞지를 수 없었지만,
명확하게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될 수 있었다.
나는 ‘의미’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나의 철학을 글로, 영상으로, 콘텐츠로 만들어낼 때 가장 나다운 사람이 되었다.
이제 나는 아주 천천히, 하지만 정확하게 걸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