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세상은 슬픈 걸까? 제2편 –
“메니(*민희)야. 내 강아지 뭐하니. 할머니랑 빨래하자.”
나는 교과서를 읽다가 외할머니와 빨래를 한다.
“비누로 비비는 거 할래? 헹구는 거 할까?”
할머니는 매번 나에게 물었다. 빨래판에 비비는 것은 한 번만 하면 되지만 힘을 들여야 한다. 헹구는 것은 비비는 것에 비해 쉽지만 세네 번 해야 해서 시간이 더 걸린다. 내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면 외할머니는 나머지를 했다.
나는 처음에는 돌아가면서 했지만 나중에는 거의 헹구는 것을 택했다. 겨울이라 추워서 손이 아리도록 시려도 나중에는 차가웠던 수돗물이 점점 따뜻하게 느껴져 빨래 헹구는 것이 즐거워졌다. 나는 주말이 되면 쌓인 빨래 옆에서 외할머니를 기다렸다.
엄마는 일을 나가 집에 없고 동생들은 어려서 방에서 놀았다. 언니는 교회에 가서 없었다. 그래서 외할머니와 나는 파트너였다. 외할머니는 우리 집에 자주 들러서 청소며 빨래를 했다. 그리고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배추가게에서 뜯어서 버린 바깥쪽 파란 배춧잎을 주워 와서 김치를 담갔다.
원래 외할머니 집은 해남군 해남읍 고도리였다. 엄마와 나의 고향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이 외할머니 집에서 땅을 빌려 농사짓고 일했다. 엄마가 7살 때 한국전쟁이 났고 그때 내려온 북한군들이 동네에서 가장 큰집에서 먹고 자고 했다고 하는데 그게 외할머니네 집이었다.
외할아버지는 한국 전쟁 때 징집되어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외할머니는 7남매를 혼자 키워야만 했다. 사는 게 어려워 땅을 거의 팔게 되고 결국은 얼마 남지 않은 땅을 장남에게 물려주고 셋째 딸 엄마 집 근처로 이사 오신 지 몇 년 되었다.
“조금 쉬었다 가자. 헉헉”
외할머니는 한참 동안 숨을 몰아쉬었다. 천식이었다. 조금만 일을 많이 해도, 많이 걸어도 쉬었다 가야 했다. 할머니 집은 달동네였던 우리 집에서 더 골목길로 올라간 곳에 있었다. 국가유공자의 상속연금이 조금 나와서 월세와 생활비로 썼다.
외할머니 집에는 할머니가 직접 구운 맛있는 김이 하얀 분유통에 넣어있다. 하얀 밥에 참기름 냄새가 나는 김을 싸서 먹으면 너무 맛있다. 혼자 누우면 거의 가득 차는 조그만 방이었지만 작은 TV와 라디오가 있고 깨끗했다. 할머니가 성경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나는 누워있는 할머니 곁에 앉아 베드로전서를 읽었다.
외할머니가 우리 집 계단을 올라오시면서 내 새끼 하는 소리가 들리면 나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었다. 짧은 파마머리에 하얀 폭넓은 긴 주름치마와 베저고리를 입은 할머니는 부잣집 할머니 같아 보인다. 할머니는 교회에 가는 날은 좋은 옷을 차려입었다. 할머니의 전도로 우리 네 자매들은 모두 할머니가 다니는 큰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얼마 되지 않아 몸이 더욱 안 좋아져 장남이 있는 해남으로 내려가셨다.
셋째, 진희가 집 밖에 나와 있다. 나는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집에 거의 도착한 참이었다.
“진희야. 왜 나와 있어?”
진희는 내 말에 반응하지 않고 나를 보지도 않는다. 현관문 앞에 서서 땅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상한 느낌에 가까이 가보니 몸을 가눌 수도 없이 심하게 떨고 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으, 으, 으”
진희는 넋이 나가 있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집을 가리켰다. 나는 계단에 진희를 앉히고 현관문을 열었다. 오월의 따스한 햇살 아래 처마는 그늘을 만들었다. 집은 그늘 아래 적막에 싸여있다. 우리 네 자매가 쓰고 있던 건넌방 문을 열었다. 창문이 없어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컴컴한 방구석에 넷째 은희가 달팽이처럼 쪼그리고 앉아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갔다. 은희는 울다가 지쳐 흐느끼고 있고 정수리에서는 피가 흘렀다. 옆에는 피가 묻은 연탄 집게가 놓여있다. 아무런 말을 듣지 못했어도 모든 것은 분명해졌다. 아빠였다. 나와서 안방을 몰래 보니 열린 문 사이로 아빠는 평화롭게 족보(*한 가문의 계통과 혈통 관계를 적어 기록한 책)를 쓰고 있다.
나도 곧 진희처럼 온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려왔다. 은희를 때리고 저렇게 태평하게 있을 수 있다니 내 마음은 분노와 공포로 가득 찼다. 다시 건넌방으로 가서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책상 옆 책꽂이를 뒤졌다. 메모지를 가지고 언덕 위에 있는 공중전화로 갔다.
엄마는 만일에 대비해 직장 전화번호를 적어주었었다. 십 원짜리 두 개를 공중전화에 넣었다. 종이에 삐뚤삐뚤 적힌 숫자를 읽으며 난 떨리는 손으로 다이얼을 돌리기 시작했다. 몇 번의 신호 끝에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사람은 그런 사람은 여기 없다고 했다. 나는 힘주어 엄마의 이름을 다시 말했다.
“여기는 안경점인데, 혹시 뭐하시는 분이니?”
“그곳에서 청소하신다고 했어요. 극장이라고 했는데…. 동생이 다쳤어요.”
내 말의 절실함이 전달되었는지 그 사람은 마침내 기억해냈다.
“아 건너편 극장인가 보구나. 빨리 집에 가보라고 할게”
엄마는 극장에서 청소를 하는 아줌마였다. 한글을 몰라서 극장 스크린 앞 광고판에 적혀있던 안경점 전화번호를 극장 전화번호인 줄 알고 집에 써놓았던 것이다.
엄마가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왔다. 우리는 은희를 데리고 근처 정형외과로 갔다. 머리를 스무 바늘도 넘게 꿰맸다. 상처를 꿰맨 후 엄마는 은희를 업고 집에 데리고 와서 눕혔다.
그날 밤 우리는 아무도 저녁을 먹지 못했다. 초등학생이던 은희가 잘못한 것은 집을 지저분하게 해 놓았다는 것, 그것조차도 사실은 언니가 회사에서 돌아와 책과 노트와 옷들을 방 가운데 던져놓고 바쁘게 교회에 가느라 깜빡 잊어버려 오해를 받은 것뿐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동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무서워 감히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문밖에서 울기만 했다. 그러나 어느새 고등학생으로 자라 있던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안방 문을 열었다. 뒤집어진 상과 그릇, 옷들, 방은 아수라장이었다.
나는 언니와 엄마 옆으로 갔다. 엄마는 왜 은희를 때렸냐며 따졌지만 애초에 정당한 이유가 없던 아빠는 곧 폭력적이 되었다. 나는 고생하는 엄마 때리지 말라고 소리 질렀다. 나는 머리채를 잡혔다. 안방 바닥은 곧 수많은 머리카락으로 가득 찼다.
엄마와 언니, 나 셋이서 아빠의 팔에 매달려도 우리는 끌려갔다. 조금 후 폭력으로 스트레스가 약간 풀린 듯 그는 소리 질렀다.
“모두 무릎 꿇고 앉아! 너희들이 무얼 잘못했는지 정확히 얘기해야겠다.”
폭력과 권위 앞에 우리는 무력했다. 아빠는 나가 있는 진희도 불러오라고 소리쳤다. 만약 안 오면 진희도 때릴지 몰라 나는 데리러 갔다. 아직도 진희는 현관문 밖에 있다.
“가자. 괜찮아. 괜찮아. 너는 때리지 못해. 내가 있잖아.”
겁을 잔뜩 먹어 떨고 있는 진희에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안방에 들어갔다. 23살 언니, 고등학교 2학년인 나, 초등학교 5학년인 진희 우리들은 일렬로 아빠 앞에 꿇어앉았다. 엄마도 폭력이 무서워 옆에 앉아있다. 일곱 살인 막내 남동생 석이는 엄마 뒤에 있다.
언니에게는 지저분하게 해 놓고 간 책임을 물었고 진희에게는 도망간 게 잘못이라고 했다. 그러면 은희는 무얼 잘못 한 거지? 왜 머리를 스무 바늘이나 꿰맨 거지? 그리고 나는? 엄마는?
그는 계집들이 몇인데 집이 이렇게 지저분하냐면서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언니가 드디어 못 참고 한마디 했다.
“그게 그렇게 심하게 때릴 만큼 잘못한 것은 아니잖아요.”
아빠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면서 호통 쳤다
“너희들은 더한 일을 당해도 싸다. 너희들이 바로 그렇게 아비에게 대 드는 게 잘못한 거다. 옛말에 아버지는 왕과 같다고 했다. 감히 어디서 말대답을 해!”
나는 갑자기 속에서 웃음이 나왔다. 지금 왕이 있지도 않거니와 옛말 자체도 잘못된 것이잖아.
“어디? 웃어? 민희 이년. 내 말이 우습냐?”
내 얼굴에 피식 웃음이 비친 것을 보았나 보다. 진희가 놀라 내 얼굴을 보았지만 나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무섭지 않다. 그의 말은 완전히 틀렸다. 그는 또다시 설교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나는 머리에 넣지 않았다. 귀 앞에서 차단시켰다. 그의 말은 마치 염불처럼 내 앞에서 흩어졌다.
아빠는 밖에서 보여지는 모습을 중요시했다. 체면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사람들과 대화할 때면 그냥 항상 허허 글쎄 하고 웃었다. 그러고서는 집에 와서 엄마에게 화를 냈다. 한문을 많이 알아도 그 누구도, 아내 또한 알아주지 않는 것이 항상 불만이었다.
그는 일을 나가지 않을 때면 먹을 갈아 족보를 쓰고 흔들흔들 명심보감이나 소학 같은 것을 외웠다. 그리고 우리를 혼낼 때면 그 구절의 한 부분을 말하면서 훈계했다. 그런 말들은 들을수록 앞뒤가 맞지 않고 남성 중심, 권위 중심이었다. 나는 커가면서 안 들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나갔다. 아빠 몰래 귀를 막았다.
아빠의 폭력에는 주기가 있다. 보통 삼, 사 개월에 한 번쯤 트집을 잡았다. 집이 지저분하다던가 아니면 방문한 친척에게 인사를 제대로 안 했다던가 더 공손하게 말을 안 했다던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일로 닦달을 했고 엄마나 우리가 거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폭력이 나왔다.
우리 집은 항상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처럼 불안했다. 가끔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폭력적인 아버지를 죽인 자식이나 아내가 나왔다. 뉴스에서는 패륜 자식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들에게 공감했다. 아빠를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그는 생물학적 아버지일지는 모르지만 아버지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그만 없다면 우리 집은 평화로울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를 없앨 수 있을까? 나에게는 그래도 한 가지 믿을 구석이 있다.
‘하느님! 제발 아빠를 죽여주세요. 아니면 우리 집을 떠나게 해 주세요. 제발요. 아멘’
만약 한 달 안에 아빠가 없어진다면 나는 신을 진정으로 믿겠다고 기도했다. 신이 이런 모순적인 기도를 들어줄까 의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절실했다.
나는 하나는 아빠도 없고 천사가 우리 집을 청소해주고 음식도 갑자기 많이 생기는 상상을 매일 순간순간마다 했다. 힘들수록 상상은 나의 위로가 되어주었다. 공상만이 나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몇 달이 지나도 아빠는 똑같았고 집도 변함없었다.
우리를 이렇게 방치하고 내 소원을 들어주지도 않는 신을 나는 더 이상 믿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신은 없는 게 낫다.
아니 신은 없다. 신이 있다면 아무것도 안 할 리 없다.
신이 있다면 세상이 이렇게 슬플 수는 없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중략)”
찬송을 건성으로 부르고 있는데 전도사님이 지나간다. 전도사님과 목사님은 맨 앞자리에 앉아야 하기 때문이다.
“민희야.”
전도사님은 내 뒷모습을 알아보고 돌아보면서 손을 흔든다. 나도 웃으며 손을 흔든다. 예배가 끝난 후 나오는 길에 전도사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교회 사무실로 간다. 나는 학교에서 가져온 성적 통지표와 고등학교 등록금 고지서를 드렸다. 교회에서는 성적우수생을 뽑아 등록금을 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신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믿는 척했다.
나는 꼼짝하지 않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바다는 푸르렀고 파도가 일렁였다. 파도가 둥글게 말리며 육지로 들어오는 모습은 마치 붓으로 그려지는 것 같았다. 암모나이트처럼 파도는 말리면서 둥글게 올라왔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또다시 푸른 바다의 조각이 암모나이트가 되었다. 수많은 푸른 암모나이트가 생겼다가 사라졌다.
파도는 사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그해 여름에는 여름수련회를 바닷가에서 했다. 집에서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해 고등학생인 나는 난생처음 바다를 보았다.
바다가 이토록 아름다운데, 파도가 이토록 아름다운데 왜 세상은 슬픈 걸까?
내 인생이 더 이상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전도사님이었다. 우리는 멀리 파도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