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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을 받았다.
첫번째 자식 '나의 바다'
by
햇살나무
Jul 13. 2022
2주간의 공동출판프로젝트 사유의바다 출판사에서 주관한 책쓰기에 참여했더랬다.
10가지의 주제.
사유 하는 글을 적고
며칠에 한번씩 원고 수정하는 작업을 거쳐
2주동안 동기작가들과 함께 작업을 했었다.
매일 글을 쓰는 나로서는 글쓰기에 나름 자부심이 있었다.
어떤 글도 막힘없이 술술술 쓰는 나였기에
함께 글을 쓰는 작가들 중에서도 단연 내가 최고일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첫번째 주제부터 막히기 시작했다.
첫번째 주제는 '나는 누구인가' 에서 부터였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
한참을 생각했다.
아들엄마, 막내딸, 며느리, 판매직을 오래한, 아동학을 전공한, 음악듣기와 노래부르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잘하는...
이런 것 말고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데
홈페이지에는
직위나 신분, 업적 같은 것을 제외하고 순수한 '나'를 적어보라고 하는 것이다.
정말 정말 난감했다.
사회적인 나 말고
절대적인 나. 객관적인 나. 정의하는 나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
정말로 진실된 나. 내가 누구지? 내가 누구지?
정말로 어려웠다.
며칠을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자면서도 벌떡벌떡 일어났다.
도대체 나. 누구지???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되지?
두개골을 손으로 감싸 쥐어짜보았다.
나를 돌아보고,
나를 관찰하고,
나를 정의내려야 했다.
나를 진공관안에 놓고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다.
반틈을 잘라서 현미경으로도 바라보려고도 노력했고, 유체이탈해서 망원경으로 나를 멀리서도 보려고 노력했다.
그런 노력은 40평생 태어나 처음이었다.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내 감정의 노예가 되어, 느낌을 표출하기에만 급급했을 뿐.
그런 내가 어떤 나였는지 알 길이 없었고, 알 수도 없었다.
글을 써서야 내가 누군지 알게 되었다.
나는 아직 나를 잘 알지 못하는 나였다. 온전하지 못한 나였다. 불안하고 생각이 많고, 소심하고 겁이 많은 나였다. 그런 나를 어떤 내용으로라도 정의내려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어려운 첫발을 내딛고 두번째 주제, 세번째 주제...
마지막 열번째 주제를 쓸 때 까지, 모든 주제는 나를 사유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깊은 사유를 거쳐 쥐어짜내다 시피 토해낸 내 글들은 한권의 책 속에 실리게 되었고,
나와 똑같이 깊게 사유하고 토해냈을 동료작가들의 글과 내 글이 나란히 함께 실린 책이
베트남 주소로 오늘에서야 도착했다.
주문해주신 독자분들께 먼저 전달되었을 나의 책.
이 책이 독자분들께 어떤 느낌을 줬을지 궁금했는데,
읽어보려니 글을 쓸 때 냈던 용기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아니, 더 큰 칭찬이 필요했다.
잘했다. 애썼다. 이만하면 괜찮다. 라며 스스로를 달래가면서 말이다.
왠지 모르게 내 글이 제일 형편없는 것 같고,
내 글이 제일 성의없는 것 같고,
내 글의 깊이가 제일 얕은 것 같아 너무 부끄러웠다.
그러나,
글을 쓸 때 만큼은 진실했기에, 한 치의 거짓없이 쏟아낸 글에는 후회가 없다.
그리고 두꺼운 가면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굳이 괜찮은 사람인척 글을 쓸 필요가 없다는 편안함이 생겼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저 그런 나니까.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어 개운하고 홀가분해졌다.
그리고 혼자 썼으면 책이 되지 않았겠지만, 내 글에 든든한 살이 되고 뼈가 되어준 동료작가분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글을 쓸 때에는 미처 몰랐는데, 책으로 읽고 나니 공통된 주제를 저마다 다른 시각으로 깊은 사유의 힘을 보여준 작가분들의 글을 읽고서 깜짝 놀랐다.
'아, 그럴 수도 있구나.'
'그래, 이것도 맞는 말이야.'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네.'
같은 깨달음을 얻었고, 밑줄도 그어놨다.
이 책은 내가 학창시절에 쓴 내 속의 깊고도 검은 샘에서 퍼다 나른 것 같은 음습한 다이어리를 버리고 다시 새로 얻게 된 성인판 다이어리가 되었다.
죽을 때 까지 나는 이 책을 나의 서재 가장 고귀한 곳에 자리해놓을 것이다.
내 마음이 투명하게 비치는 다이어리가 될테니.
몇 권 되지 않는 이 책을 함께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큰 감사를 드린다.
내 삶의 증인이 되어줄 분들.
내 속을 훤히 내비친 글을 읽으셨기에 나의 여생을 관찰할 것이라 생각한다.
독자분들을 위해서라도 더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목표가 생겼다.
책을 내는 귀한 경험을 하게 되어 무척 기쁘다.
글은 썼다 지울 수 있지만,
책은 내고 나면 세상 어딘가에서 주인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주인이 숙원대로 잘 헤쳐나가고 있는지
잘 버티고 있는지,잘 살고 있는지 말이다.
이 경험이 내 인생에 커다란 도화선이 되어
활짝 피어나는 전성기를 맞이할 때 까지
강한 힘의 원천이 되어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22.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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