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독준 May 19. 2023

바보와 싸울 이유는 없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세종 대왕님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이유는 쉬운 글자를 통해 모든 백성이 학문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덕분에 글을 깨우친 사람들이 많겠지만 더 이상의 추가적인 학습을 하지 않고, 자신의 좁은 우물에 갇혀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한다. 발상이 빈곤해도 일단 갖추어지면 망가진 라디오나 타자기 같이 되기는 쉬운 것이다.


   또한 네트워크의 발전과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엄청나게 많은 콘텍스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음과 동시에, 아주 손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런 이유로 정말 수준이 굉장한 지경에 이르는 사상들도 너무 많고 접하기도 쉬우니 정말 피곤할 따름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정말 너무 심각할 정도로 좁은 수준의 시야를 보여주는 의견을 하나 보았다. 정말 허점도 많고 말싸움을 하자면 못할 것도 없을 것이며, 승부를 겨루자면 어지간하면 자신이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드는 정도였지만 바로 신경을 끄기로 했다.


   신경을 끄기로 하고 단말기를 멀리 두니 금세 마음이 진정되었다. 동기부여 자극을 주로 하는 사람들이 현대인을 비판할 때, 현대인들의 기억력은 몇 초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납득이 되었다. 신경을 끄고 몇 초에서 몇십 초만 보내면 잊어버리는 것은 비판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를 통해 바보와 싸움을 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먼저 승산이 크게 보이는 싸움이라고 할지라도 싸움은 싸움이다. 게다가 벌어진 판에 올라서서 들어오라고 외치는 그 장소는 기본적으로 진흙탕인 것이다. 무협지에 나오는, 무의 극에 다다른 신선 정도가 아니라면 진흙에 발을 담그지 않고는 참전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상대할 가치가 없는 상대를 격파한다 한들, 어차피 내 수준도 상대보다 조금 나을 뿐 위에서 예시로 들은 극에 달한 자일리도 없다. 이겨도 상처뿐인 승리가 될 것이다. 애초에 이런 판을 벌인 자들은 수준이 극히 저열하기 때문에 승복을 할 확률조차 극히 낮다. 물론 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면 정말 시간과 자원을 잃고 수치심만 얻을 것이니 끔찍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승산을 따져본 후 뛰어든 것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애초에 싸울 것인지 싸우지 않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싸울 것을 고르는 것은 결국 나쁜 선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손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정보 사회에는 수많은 싸움판이 있다. 그 대부분은 뛰어들 가치가 전혀 없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곳에 뛰어들지 않는 것은 뛰어들지 않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이기는 것이다. 가치가 없는 곳에 내 시간과 자원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그것 만으로도 큰 승리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자신은 남을 일깨울 수 있다"는 것도 오만함에서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 접했던 헛소리도 정말 수준 낮은 일갈이었다. 그냥 계속 그렇게 소신 있게 사는 것도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일 테니 존중해 주기로 했다. 다만 내게는 더 이상 들리지 않게 음소거 처리는 해버린 셈이지만 말이다.


   현대인의 삶은 피곤하다.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이 주는 편리함도 있지만 괴로움도 있는 법이다. 빠져들기 쉬운 바보들과의 논쟁을 멀리하는 것이 괴로움을 줄이는 유효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오늘은 단말기를 조금 멀리 두고 있고 싶어지는 하루가 될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알아보되, 가만히 있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