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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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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Oct 03. 2019

카메라 없이 여행을 할 줄이야

#마카오일기 1. 가진 것은 오래된 아이폰 6S 뿐


grabpic film 1. NOIR



카메라가 없어!


오전 7시 55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선 옆동네에서 적어도 새벽 4시 44분 리무진 버스를 타야 했는데, 우리 집에서 출발하는 시내버스 시간이 간당간당했다. 그래서 엄마가 옆동네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10분 조금 넘어 도착한 터라 첫차인 29분 리무진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캐리어를 끄는 순간 느낀 가벼움. 내 캐리어가 이렇게 가벼울 리가 없는데. 이럴 수가. 어제 배터리 두 개를 모두 풀로 충전해놓은 카메라를 놓고 왔다. 엑소 해외 콘서트 간다고 뉴리디봉*과 시우민 슬로건 등 응원도구에만 신경을 쏟아부었더니 결국 이 사달이 나고 말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언제나 1순위로 챙기는 게 카메라였는데.


리무진 버스에 앉아 별 생각을 다했다. 공항 면세점에서 급하게 똑딱이를 살까? 그러나 이건 가격 부분에서 큰 메리트가 없어 패스. 그렇다면 홍콩에서? 이건 정말 끌렸다. 가격도 한국에서 살 때보다 훨씬 저렴했고, 관세도 자진 신고하면 얼마 나오지 않는단다. 그러나 나는 마카오 그것도 코타이 부근에서만 짧게 있다 오는 건데 홍콩섬까지 다녀오기가 마땅치 않았다. 별 수 없이 이것도 패스. 인터넷을 뒤져보니 인천공항에서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판다기에 그것을 사기로 했다. 이거라도 있어 다행이다. 그렇지만 막상 인천공항에 도착해 구석구석 뒤져보았으나 일회용 필카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보았던 글을 다시 자세히 보니 몇 년도 더 된 글이다. 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지. 마지막으로 친구가 알려준 그랩픽(grabpic)이란 어플을 깔기로 했다. 안될 놈은 안된다고 하필이면 어제 카드를 바꿨는데 애플스토어에 새 카드를 등록하고 어플을 구매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왜 이렇게 복잡하게 해 놓은 거야. 하마터면 면세점에서 눈에 보이는 카메라를 살 뻔했다. (심지어 매장에도 들어갔다 나왔다.) 겨우 마음을 다스리고 카드를 등록했다. 그리고 그랩픽 어플에서 5,900원짜리 흑백 필름 한 롤을 샀다.


난생처음으로 해외여행에서 카메라 없이 핸드폰만으로 사진을 찍는다. 나의 여행은 거진 사진 여행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인데. 이런 내게 카메라가 없다니. 아쉬운 한편으로는 기대도 된다. 카메라가 없다면 사진에 집착할 나도 없고 그렇다면 온전히 이 여행에 집중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여행을 계기로 사진에 대한 집착을 조금은 버릴 수 있게 될까.


*엑소의 두 번째 응원봉, 현재는 세 번째까지 나왔으며 세 번째 응원봉은 또리디봉이라 한다.





어설프게나마 카메라 문제를 해결하고 비행기에 탔다.


와, 내내 불편한 비행을 했다.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지금 자신의 눈이 좋지 않으니 비행기 창문의 셔터를 계속 내려달라고 했다. 나는 창 밖을 보려고 이 자리를 예매한 건데.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내려줬다. 그런데 난데없이 왜 신경질을 내냐고 나한테 욕을 하는 거다. 아무 생각 없이 좋게 원하는 대로 해줬는데 왜 이러는 거야? 똥 밟았다 생각하고 무시했는데 계속 뭐라 했다. 미친놈.

거기다 마카오에 거의 다 왔을 무렵에는 난기류가 심해져 비행기가 엄청 흔들렸다. 내 엉덩이는 좌석에서 붕 뜨고 사람들은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놀이기구 중 위에서 아래로 훅 떨어지면, 몸은 붕 뜨고 놀이기구는 아래로 내려가서 내 몸과 놀이기구 사이에 잠깐 틈이 생기는 딱 그 순간, 심장이 훅 떨어지는 느낌이 나는데 그때와 같았다. 아 이게 싫어서 놀이공원도 잘 안 가는데 비행기에서 느낄 줄이야.





어쨌든 무사히 살아서 도착했으니 다 괜찮다.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호텔 셔틀 표지판을 따라 이동했다. 미리 찾아둔 대로 연두색 버스만 보며 직진. 셔틀버스 부근을 서성이면 직원이 내가 타야 할 버스를 알려준다. 내가 예약한 <홀리데이 인 마카오 코타이 호텔>로 가는 버스는 총 네 곳의 호텔에 서는데, 그중 나의 호텔은 첫 번째였다.



버스에 탑승한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벌써 호텔에 도착했다. 11시 조금 넘어 입국 심사를 받았고 11시 15분에 호텔에 도착했다. 우와. 2시 체크인이라 짐만 맡겨두고 밖으로 나왔다.


(이번 여행은 급하게 예약한 터라 1박 숙박비만 35만 원이 넘는 호텔을 잡았다. 하지만 마카오의 호텔은 어디든 다 이 정도 하는 것 같아. 엑소를 보는 건 좋지만 35만 원을 홀로 내는 건 부담이라 이번 '엘리시온 닷 인 마카오' 콘서트를 보는 팬들 중 룸 쉐어 할 사람을 구했다. 다행스럽게도 시우민 팬과 연락이 닿아 룸 쉐어를 하기로 했다. 공항에서부터 연락했는데 답변이 없어 결국 나 혼자 묵어 야한 건가 하고 초조해하던 차에 답장이 왔다. 그에게 체크인 시간을 알려주고 2시에 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가 기대한 홍콩


밖으로 나와 길을 건너자마자 보이는 풍경에 감탄했다. 여긴 대체 뭐지? 내가 지금 아시아가 아닌 유럽에 있는 듯했다. 내가 생각했던 마카오는 이런 곳이 아니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마카오는 홍콩 영화에서 보던 그런 느낌이었다. 좁은 골목들 사이로 얽혀있는 전선들과 다닥다닥 정신없게 붙어있는 간판들.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그런데 내가 서있는 지금 이 곳은 너무나도 화려하고 지나치게 깔끔했다. 내가 홍콩을 기대하며 마카오 여행 준비를 하고 있자니 주변 사람들이 "마카오는 네가 기대하는 그 모습이 아닐 텐데."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 마카오는 내 바람과 같은 홍콩이 아니었다.

콘서트 장소 근처, 호텔이 즐비한 곳에 자리를 잡았더니 내가 처음 본 마카오는 이렇게 되었네.



건물 안은 더 놀라웠다. 천장도, 바닥도 전부 휘황찬란했다. 입점해있는 건 죄다 명품 브랜드에 여기도 카지노 저기도 카지노. 나 역시도 늘 일확천금의 꿈을 꾸고 있으나 카지노에서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아 처음엔 그저 흘끗 바라보고 스쳐 지나갔다.



걷다 보니 마카오 여행기에서 많이 보았던 실내 쇼핑센터를 찾았다. 쇼핑센터를 가로지르는 임의로 만든 가짜 운하와 그 위를 다니는 곤돌라도 보았다.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진짜' 베네치아는 이렇지 않겠지? 그래야 할 텐데.




grabpic film 2. DAY24



마카오에서의 첫 끼는 유명한 에그타르드! 인천공항에서 김밥 한 줄을 다 먹고 에어마카오 비행기에서도 맛없는 기내식을 먹어둔 터라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뭔가 먹긴 해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하던 차에 에그타르트를 발견했다.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길래 유명한 집이구나 하며 함께 줄을 섰다. 다들 홍콩 혹은 마카오의 에그타르트를 찬양했으니 당연히 맛있겠거니 하며. 그러나 그냥 에그타르트 맛이었다.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은 평범한 에그타르트. 에그타르트를 먹으며 돌아다니다 푸트코트를 발견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현지 음식을 먹었을 텐데.




처음에는 스쳐 지나갔으나 어딜 가든 카지노로 가는 길이 나와 한번 들어가 봤다. 입구에서 가드가 여권 검사를 해서 괜스레 움츠러들었다. 나의 여권을 쓱 보더니 한국인인 것을 알고 "감사합니다~"하고 씩 웃으며 나를 들여보내 주긴 했지만. 

카지노에 들어오긴 했으나 아는 것은 슬롯뿐이고 이마저도 뭐가 뭔지 몰라 근처만 어슬렁 거리다 나왔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잭팟이 터지거나 대박이 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리고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게임 앞에 앉아 있는 사람도 없었다. 



밖으로 나와보니 또다시 곤돌라. 계속 눈에 보이니 한 번 타볼까 싶다가도 이걸 탔다간 모든 중국인들의 사진 모델이 되어버릴 것을 알기에 슬그머니 돌아 나왔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슬슬 체크인 시간이다.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입구를 찾았다. 안에서 아무 생각 없이 돌아가니기도 했지만 여러 채의 건물이 이어져 있다 보니 안에서 길을 잃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에도 너무 늦었다. 다 포기하고 정처 없이 걸었다. 이렇게 걸어 여기까지 왔으니 또 이렇게 걷다 보면 언젠간 밖으로 나가겠지. 그리고 마침내 입구를 찾았다. 살았다!


2018년 8월 11일

아이폰 6S + 어플 그랩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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