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섬에서의 조우

[도서] 건지감자껍질파이북클럽, 메리앤섀퍼&애니배로스

by 애매한 인간 채도운

내가 운영하는 서점, 보틀북스는 하나의 섬이다. 사람들이 배를 태고 와서 정박하기도 하나, 결국은 떠나가고야 마는, 때가 되면 비워지는 그런 섬말이다. 섬은 적막하다. 그 고요에, 그 침묵에, 그 외로움에 침몰되지 않기 위해서 애써야 한다. 나는 책을 읽을 때나 섬을 벗어날 수 있었다. 책을 덮고 나면 공허함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은 괜찮다. 사람들이 올 시간이 되었으니까. 사람을 만나는 유일한 시간이 찾아왔으니까. 항구가 붐비기 시작한다. 자, 독서모임이 시작되었다.

섬에서의 조우


《건지 감자껍질 파이 북클럽》은 그 낯설고도 긴 제목만으로도 시선을 붙잡는다. 제목 속 ‘건지’는 섬의 이름이다. 건지섬은 영국해협에 위치해 있지만,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과 더 가깝다. 이 작은 섬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점령당했고, 주민들은 통행금지와 식량 배급, 검열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돼지 한 마리, 빵 한 조각조차 마음대로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한 주민이 금지된 돼지 한 마리를 몰래 숨겨 키웠고, 극심한 배고픔 끝에 결국 잡아먹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하나둘 조심스레 초대해 음식을 나눈다. 감자껍질파이와 함께. 전시 상황이라 밀가루, 버터, 설탕은 구할 수 없었다. 대신 감자를 으깨 반죽을 만들고, 파이의 결을 흉내 내기 위해 껍질을 가로세로 겹쳐 올렸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감자껍질파이’였다. 모처럼 배불리 먹고 나니, 세상에, 통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사람들은 허겁지겁 흩어져 집으로 돌아가려 했고, 그중 몇 명이 귀가하던 길에 독일군에게 붙잡히고 만다. 그 순간, 한 사람이 급히 둘러댔다.

“우리는… 독서모임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황급히 말을 보탠다.

“모임 이름은… ‘건지 감자껍질 파이 북클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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