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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Jan 04. 2023

육중한 그

책의 몸을 즐기는 법

- 두꺼운 책의 쓸모


내가 만난 이 중에 육중함으로 말하자면 단연 그가 일등이다. 2006년부터 시작한 블로그의 서로이웃이 권한 책으로 책값이 무려 58,000원이며, 2013년 4월 1일 출생이다. 표지의 제목 글자는 그 덩치에 걸맞게 어림짐작으로도 300포인트는 되겠다. 책의 두께는 벽돌의 너비에 견줄만 하다. 등짝에서 풍겨나오는 여유는 무엇이든 알려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책은 내 지적 욕망의 충실한 충족자이다. 이 비슷한 책이 몇 권 더 있지만 이 책이 단연 최고다. 제목도 멋진, 『뇌과학의 모든 것』 (박문호 저, 휴머니스트, 2013), '모든'이라는 단어가 마땅한 몸이다.

중세 서양 책은 이런 육중함을 기본으로 갖추고 있었다. 그 시대의 책은 읽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존재함으로 목적을 이루는 사물이었다. 보석을 박고 금테를 두른 대형 필사본은 많은 이들에게 경외심과 신앙심을 불러 일으켰다. 수도원이나 큰 부자만이 가질 수 있는 고가의 공예품으로 소유자의 영성을 겉으로 드러내야 했다. 큰 판의 책을 영어로는 커피테이블북coffee-table-book이라 부르는데, 이는 책을 여유 공간에 올려놓고 남에게 자랑하기에 적절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육중한 그


스케일이 큰 책은 제작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더욱 가치 있고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을 것이라고 은연중 생각하게 된다. 교수자에겐 이런 책이 꽤나 쓸모가 있다. 근래와서 실시간 zoom수업이 많아지면서, 방송에 출연하지 않고도 책장을 배경삼아야 할 일이 많아졌다. 난 의도적으로 내 책장이 나의 뒤에 오도록 노트북카메라의 각도를 조절하고서 화면에 드러날 책들을 다시 꽂고 정돈하는 잔꾀를 부렸다. 디자인전공서적부터, 현대철학, 뇌과학, 사회학 등 다양한 책의 등이 내 빽(백그라운드)가 되어줄때 얼마나 든든하던지. 나도 누군가에게 묵직한 백그라운드가 되어주고 싶다. 


내 방에는 참으로 두꺼운 책들이 많다.  책은 중세가 아닌 현재에도 존재함으로서 충분히 효력을 발휘한다. 센스 있는 손님이라면 아마도 그 책을 읽었느냐고 물어보지는 않을 것이다. 두꺼운 책이란 아무튼, 일단 사고 보는 책이고, 언젠가 읽어볼 책에 속한다고나 할까. 




최근에 어찌어찌 유투브 알고리즘의 연결로 박문호 박사의 뇌과학 강의를 열심히 청취하게 되었는데, 아, 그분이 바로 <뇌과학의 모든것>의 저자이셨답니다. 그래서 책장에서 책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아마 곧 읽게 될 것 같아요. 독서의 준비가 될 때 까지 팔 년은 족히 걸렸네요. 박문호 박사님이 '깡그리 모르는 것이 좋아요'라고 하셨으니 깡그리 몰랐던 세계를 듬직한 책과 함께 진입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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