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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tuti Nov 07. 2021

100점 맞는 공부가 아니어도 괜찮아

꾸준함의 힘

우리 둘째 기쁨이는 참 예민한 아이였다.

학교에서 잘 지내다가도 내가 아이를 학교에서 픽업할 때 자신이 원하는 간식을 안 가져왔다고 내 뒷좌석을 발로 차고 소리를 지르며 때를 쓰고 울는 아이.

양말 안에 실밥 때문에 양말을 신고 신발을 신는데 몇십 분이 걸리는 아이.

옷에 태그 때문에 살점이 뜯기도록 목 뒤를 긁어 대는 아이.

그래. 태그와 실밥은 아토피 때문이라고 하자. 하지만 여전히 자기가 원하는 건 내가 당장 해 줘야 직성이 풀리고 내가 그에게 원하는 건 자기가 내켜야만 했다.

글씨는 개발 새발 써서 알아보지도 못하게 쓰고, 그걸 고치라 그러면 지우개 질을 하다 종이를 찢어 버리거나 연필로 그 위에 일부러 아주 진하게 굴게 써서 종이에 구멍을 내곤 했다. 그걸 다시 야단치면 이젠 종이를 구겨 던져버리고 소리를 부리고 지*를 하기 시작한다. 미친 아이처럼.


학교생활을 물어봐도 "Good" 또는 "I don't know." 이렇게 단답형으로만 이야기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학교에서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참 뭔가 잘하다가도 조금만 안 되는 게 있으면 포기를 하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면서도 완성을 잘할 줄 모르는... 특히 2살 위 누나와 함께 할 때면 못 한다고 하기 싫다고 때를 쓰기가 일수였다.


자기 조절 능력이 없어 밤에 몰래 태블릿을 들고 이불 속에 들어가 밤새도록 게임을 한다거나 내 핸드폰을 숨기고 주지 않는 등 게임 중독의 모습도 보였다.


자신의 옷에 낙서를 하고, 가위로 자르는 등 자신의 물건을 소중히 다루지 않거나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고 매일 하는 루틴인데도 아침저녁으로 세수했니? 머리는 빗었니? 옷은 갈아입었니? 등등 하나하나 일일이 말해줘야 했다.

아들을 키운다는 게 그것도 예민한 아들을 키운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


아들에게 난 모질게도 '너를 키우는 게 엄마는 너무 힘들어' 하고 울며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 아이도 나에게 '나도 엄마처럼 소리 지르는 엄마는 싫어요. 빨리 나도 여기서 나가서 혼자 살고 싶어요.' 하면서 대들기도 했다. 하지만 밤이 되면 아이는 나에게 늘 꼭 안아달라고 부탁을 하며 굳 나잇 키스를 청했다. 엄마를 힘들게 하면서도 엄마의 사랑을 고파하는 것이었다.


ADHD 일까 걱정이 돼서 3학년부턴 1년 가까이 상담을 받으러 다니기도 했다. 상담 선생님의 결론은 많이 믿어주고, 들어주고, 지지해 주고, 스킨십과 퀄리티 타임을 많이 가지라는 것이었다.


아이에게 화내지 않기, 소리 지르지 않기, 소리를 질렀더라도 자기 전엔 꼭 사과하고 꽉 껴안아 주기. 사랑한다는 말과 표현을 과할 만큼 쏟아부어주기.


코로나로 인한 1년간의 화상수업은 가족 간의 돈독함을 쌓아가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때론 나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스트레스 최강의 시기이기도 했다.

출장이 많던 남편의 출장은 모두 취소가 되었고 아이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매일 온 가족이 저녁 식사 이후 공원에서 운동을 했고, 비가 오는 날이면 댄스파티와 노래방, 보드게임, 탁구를 하며 집에서 가족 간의 시간을 보냈다.


한편, 학습에 있어서는 둘째는 화상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컴퓨터로 계속 유튜브를 본다거나, 게임을 하며 수업태도가 좋지 않았고, 내가 옆에서 계속 지켜보지 않으면 과제물을 제때 제출하지 못해 학교에서 연락이 오곤 했다. 3학년 때 학교에서 에세이를 쓸 때면 컴퓨터로 쓰면 쉬운데 종이에 에세이 쓰는 건 못하겠다는 핑계를 대곤 했었는데 이제 완전 컴퓨터로만 과제물을 제출하니 기쁨이 스스로 3학년 때의 자신의 발언은 그저 핑계에 불과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냥 하기가 싫은 것이었다고.


때론 곁에서 보기에 어떻게 에세이를 써야 하는지 몰라 쩔쩔매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담임 선생님께 연락 해 차트로 설명문, 주장문, 비교분 석문, 에세이를 각각 어떻게 시작하고, 본론을 쓰고, 결론을 내리는지 수학공식처럼 된 글쓰기 도움 차트를 부탁드렸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이 도움 차트와 더불어 동의(지지)나 반박할 때 쓸 수 있는 말,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제목을 만드는 법, 큰 이펙트로 독자를 이끄는 첫 문장을 쓰는 법, 다양한 감각 단어를 통해 글을 더 다채롭게 쓸쑤 있는 법을 차트로 만들어 공유해 주셨다.


나는 아이에게 성장 마인드셋을 키워주기 위해 옆에서 같이 차트를 보며 어떤 문장을 어떻게 나열할지, 어떤 단어를 골라 쓸지 함께 들여다보며 글쓰기가 벽에 막혔다고 생각될 때 어떻게 그걸 뚫고 앞으로 나아가 글을 완성할지 같이 생각을 정리해 보고, 글을 고쳐가며 글 다듬기를 도와줬다. 글뿐만 아니라 악기를 꾸준히 연습하도록 해 한 달이 지나고 한 학기가 지나고 일 년이 지났을 때 매일매일 거의 비슷한 걸 연습하는 것 같더라도 때론 처음 배우는 걸 할 땐 하나도 못 따라 하는 것 같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때 자신이 스스로 성장한 모습을 느끼고 배울 수 있게 했다. 타고난 능력 보단 성실함에 초첨을 두어 아이를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박사를 받은 사람도 출근을 제대로 안 하면 회사에서 잘리지만 신체나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이들도 성실히 제시간에 출근을 해 자신의 맡은 일을 하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고 강조 해 이야기해 주었다.


매일 같이 책을 소리 내 읽으며 새로운 단어도 접하고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도 나눴다. 학생 뉴스를 읽으며 요즘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경제, 사회, 과학, 역사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설명도 해 주기도 하고 질문을 하고 아이의 생각을 듣기도 했다.


아이가 수업시간에 자신이 좋아하거나 잘 아는 토픽이 나올 때 선생님 말씀을 끊고 끼어들거나 발언권을 주었을 때 수업 진도를 벋어나 한도 끝도 없이 계속 이야기를 해 수업을 방해하는 일이 허다했다.  그런 걸 선생님이 막을 경우, 화장실을 가겠다거나 손을 씻겠다거나 물을 마시고 싶다고 하여 자리를 이탈하고 수업에 집중을 하지 못했었다. 그런 일로 인해 학교에서 지적을 받아 교장실로 끌려가는 일도 잦았다. 펜데믹에 화상수업을 하는 만큼 수업시간 이 외에 시간에 아이가 자신이 본 유튜브 비디오에서 나온 과학, 수학, 경제, 또는 만화 영화에 관한 이야기든, 게임에 관한 이야기 든 간에 아이가 이야기를 하면 내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끝까지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아이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야기, 양자 물리학, 다중 우주, 게임이론, 확률, 파스칼의 삼각형과 이항 계수, 마술의 원리, 마블 캐릭터들의 분석,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과 요정들의 관계와 파워, 마인 크래프트 게임을 잘하는 방법, 닌텐도 회사의 역사와 그 게임 캐릭터들의 등장과 변화, 게임 유투버들의 인맥관계, 유투버들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와 아이들이 어떤 유투버들의 콘텐츠를 좋아하는지 등 아주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아이가 달라졌다.


1년간의 화상수업을 끝내고 8월부터 다시 학교에 돌아갔다. 이젠 누나 없이 학교의 제일 큰 형아가 돼서 다니는 학교.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학교 생활에 대해 물어보면 조잘조잘 자기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때론 학교에서 잘못해 야단맞은 이야기까지. 내가 아이를 믿고 있고, 또 무슨 잘못을 했든 간에 그것을 통해 배우고 고치면 되고 엄마는 항상 자신의 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젠 학교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 까지 나에게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왜 그런 상황이 됐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때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하고, 때론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하기도 하면서.


그럼 또 난 스스로 이렇게 자신을 평가하는 모습이 너무 멋져. 너무 잘하고 있어. 너의 성장하는 모습이 멋져. 하면서 격려해 준다.


가끔은 내가 잊어버리고 간식을 챙기지 않고 간 날도 "집에 얼른 가서 간식 먹자, 조금만 기다려." 하고 말하면 쉽게 수긍하고 기분의 업 다운이 많이 줄어들었다.


특히 저녁 식사 이후엔 항상 엄마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 칭찬을 해 주며 사랑스러운 코멘트를 날려준다.


학교 공부 이외에 집에서의 학습은 아이가 할 수 있을 만큼만 아이 스스로 하기로 했다. 타이핑 연습, 칸 아카데미 수학 하나, 악기 연습, 책 읽기. 그걸 다 마치면 아이는 2시간의 미디어 타임을 가질 수 있다.


놀랍게도 아이의 변화는 성적에서도 나타났다.


기쁨이는 영재 판단을 받았지만 이제까지 성적으로 그것을 나타 내 보여주진 않았다. 학교 수업을 지루해했고 학교 생활이 성실하지 못했다. 작년 화상수업 동안에도 늦게 제출하거나 아예 제출하지 않는 과제들 때문에 성적은 평소보다도 더 엉망이었다. 하지만 배려심 많은 선생님들 덕분에(많은 아이들이 화상수업을 제대로 잘하지 못했다.) 성적을 모두 상향 조정해 주셔서 모든 과목에 B를 받았다.


지난 학년 말, 주 교육청에서는 학생들의 성취도가 뒤쳐지는 것을 걱정 해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중요과목에 대한 학습평가를 했고 많은 아이들이 전반적으로 낙제점을 받았다. 기쁨 이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수학과 과학 부분은 기준을 넘었으나 영어 쓰기 부분에서 기준을 달성하지 못했었다.


새 학기가 시작하고 한 달이 채 되기 전, 주 교육청에서 AIMSWEB TEST를 실시한다. 아이들의 진단평가이다. 5학년은 영어와 수학 두 과목에 대해 측정을 해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과제물을 컴퓨터를 활용한 자율 학습 시간에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AIMSWEB TEST는 문제를 맞히면 더 어려운 문제가 나오고, 틀리면 비슷한 수준이나 약간 쉬운 문제가 나온다. 그래서 아이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 인지를 측정한다. 기쁨이는 올 8월 말에 실시한 이 시험에서  영어는 미 전국 상위 6%, 수학은 상위 1%를 달성했다. 아마도 영어 시험에서 쓰기는 없었기에 가능한 점수였지 싶다. 하지만 꾸준히 나와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단어를 접하고 책을 읽은 후에 나에게 줄거리를 요약해 이야기해 준다거나 나와 책 내용에 대해 토론을 한다거나, 자신이 혼자서 유튜브 비디오를 본 것을 나에게 설명해 주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글이나 비디오의 맥락을 설명하는 연습을 해 왔기에 높은 성적을 낸 것 같다. 기쁨이는 선생 학습을 하지 않는다.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 이미 글도 다 읽고 쓰고 수학도 1-2학년 수학 수준(그래 봤자 더하기 빼기이다)이라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선생님이 집에서 가르치지 말라고 그러셔서 학교 생활을 더 열심히 하고 학교에서 배우는 기쁨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서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았다. 선행이라고 해 봤자 방학 동안 5학년 수학을 뭘 다루는지 슬쩍 본 게 다 였다. 영재 아이들의 특성상 반복학습을 싫어하고 이해력이 빠르기 때문에 가령 분수에 대해 가르친다면 도형으로 분수를 표현하는 것에서 시작해 분수의 덧샘 뺄셈, 곱셈과 나눗셈, 분수의 크기 비교, 분수와 소수의 차이와 소수를 분수로 표현하는 법, % 에 대한 설명과 %를 구하는 법을 한 30분 이내에  아이에게 질문을 주고받으며 한꺼번에 죽 설명해 큰 그림을 그려주는 게 다이다. 그럼 신기하게도 아이는 거침없이 나의 설명을 아주 쉽게 이해하고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 나간다. 100점 맞는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이다. AIMSWEB TEST에서 상위 1%라는 평가는 5학년 과정을 뛰어넘어 6학년 과정의 일부도 안다는 것이다. 문제집을 반복하여 풀지도 않고 지금 하는 칸 아카데미 수학도 자신이 배우는 과정보다 한 단원 정도 앞 단원을 하고 있는 게 전부인데 처음 보는 문제 유형을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유추해서 풀어냈다는 것이 대견하다.

내가 아이를 향해 보여 준 믿음은 아이 스스로에게도 작용 했다.

이적 씨의 어머니로도 유명한 박혜란 선생님은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에서 아이를 믿어주면 스스로 아이는 성장한다고 말씀하신다. 난 선생님의 글과는 달리 아이들이 어릴 적 나의 일을 그만두고 아이에게 맞춰 가정주부로, 엄마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서도 아이를 믿어준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가족과 떨어져 살며 출장이 잦은 남편을 둔 탓에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내 일을 그만두지 않고는 아이들을 믿고 맡길 곳이 없었다고 나름 변명을 해 본다. 첫째 아이에게서 영재성이 보였기에 그 영재성을 키워주기 위해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아이를 서포트 해 주는 방법은 내가 직접 끼고 가르치는 방법 밖엔 없었다고 위안을 해 본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 보면 첫째 꾸미같은 아이는 손이 하나도, 힘이 하나도 들지 않는 무난한 성격의 아이라 내가 옆에서 굳이 끼고 가르치지 않았어도 스스로 잘 컷을 것 같다. 둘째 기쁨이에게 난 이테까지 마치 병의 증상에 맞춰 증상만을 없애기 위해 양약을 처방하는 것처럼 대처하지 않았나 싶다. 아이의 마음을 알아봐 주고 믿어주는 것, 그것은 마치 오장육부의 성질을 알고 그 기의 흐름을 읽어내 보약을 처방하여 약한 부분을 강하게 다져주고 너무 활성화되어 지쳐있는 부분은 살짝 누그러트려주는 그런 기능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1회성 처방이 아닌 꾸준함. 믿는다는 건 어제도 오늘도 그랬으니 내일도 당연히 그럴 거라는 그런 신뢰 속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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