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겔의 그림과 속담으로 읽는 인간의 '지독한 반복'
16세기 화가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the Elder)의 대표작 [네덜란드 속담]을 보고 있으면, 하나의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500년이 지난 지금도 인간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화면을 가득 채운 수많은 인물들은 저마다 분주히 움직이지만, 그 기저에는 '어리석음'이라는 하나의 축이 흐르고 있다.
누군가는 속 마음을 숨기고,
누군가는 무의미한 일에 온 힘을 쏟으며,
또 다른 이는 이미 끝난 선택을 붙들고 후회를 되풀이한다.
브뤼겔은 왜 이렇게까지 많은 어리석음을 한 화면에 담아냈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이 그림 앞에서 묘하게 웃음과 씁쓸함을 동시에 느끼게 될까.
브뤼겔은 당시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서민들의 삶을 누구보다 면밀하게 관찰한 화가였다.
그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조롱하기 위해 붓을 들지 않았다. 인간이 살아가며 반복하는 삶의 패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
어리석음은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와 문화를 넘어 반복되는 인간의 보편적 구조임을 드러내려 한 것이다. 그래서 말로만 주고받던 속담이 그림으로 옮겨졌을 때, 우리는 거창한 도덕적 훈계 없이도 인간의 본성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브뤼겔의 그림은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어 준다. 수백 년이 흘렀지만 이 그림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은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흔들리고 후회하며, 때로는 불가능한 벽을 다시 한번 들이받곤 한다.
벽에 머리를 박고 있는 이 인물을 보자. 한쪽 발에는 신발을 신었지만 다른 쪽은 맨발이며, 오른손에는 칼까지 든 채 벽을 들이받는다. 성급한 성정과 무모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 장면은 묘하게 익숙하다.
" 계란으로 바위 치기 "
"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
" 곤장을 매고 매 맞으러 간다 "
" 참을 인(忍) 세 번이면 살인도 피한다 "
우리는 오래전부터 속담을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반복해서 이야기해 왔다. 브뤼겔이 그려낸 장면도, 우리말 속담 속 인물들도 서로 시대만 다를 뿐 같은 인간의 초상이다.
브뤼겔의 그림 속 인물들은 특별한 영웅도, 악인도 아니다. 어제를 견디고 오늘을 살아내며 내일을 기대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때때로 미련 때문에 과거에 머물고, 떠나야 할 것을 끝까지 붙잡으며, 되돌릴 수 없는 일에 마음을 빼앗긴 채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때 브뤼겔의 그림은 조용히 말한다.
"인간은 원래 이런 존재다. 그러니 너무 자신을 미워하지 말라."
어찌 보면 그의 그림은 우리의 하루와 닮아 있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장면들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하고, 그 선택 위에 또 후회를 쌓는다. 그러나 16세기 화가가 남긴 이 풍자극은 이렇게 속삭인다.
" 중요한 것은, 그 어리석음을 지각한 순간부터 다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제의 실수 앞에서 멈춰 서 있었다면, 오늘은 조금 더 단단한 마음으로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브뤼겔의 그림 속 사람들이 각기 다른 어리석음을 품고 살아가듯, 우리 또한 완벽함보다 '불완전한 인간다움'을 반복하며 하루를 이어간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그림을 보며 묘한 위로를 얻는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우리 모두는 조금씩 비슷한 어리석음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라고.
그리고 이러한 반복적 인간의 모습은 오늘 우리의 삶을 이해하는 데에도 유효하다. 속담은 오랜 세월 축적된 삶의 지혜이며, 브뤼겔의 장면은 그 지혜의 시각적 기록이다. 두 세계가 만날 때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더 깊고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래서 다음 회차부터는 브뤼겔의 [네덜란드 속담] 속 장면 하나와 한국속담 또는 관용구를 하나를 나란히 놓고, 시대와 문화를 넘나드는 인간의 모습을 차근히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글은 그 여정의 첫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