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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9 — 〈ALVA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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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또삐


프롤로그 ― 〈기원의 전조〉

루멘 코어가 다시 뛰기 시작한 뒤,

도시는 마치 새로 태어난 심장을 품은 것처럼
리듬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건물 벽은 미세하게 떨리고,
도로 아래선 은빛 파동이 혈관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유진의 뉴로패치 깊숙한 곳에서
다른 파동이 깨어났다.
AURA의 잔향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오래된 뿌리(root).

〈ALVA-ROOT ARCHIVE : LOCKED MEMORY DETECTED〉

라일라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유진 씨… 이건 AURA보다 최소 60년도 더 앞선 신호예요.
이건… 감정의 기원을 향해 열리는 문이에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공기가 종잇장처럼 접히며
현실과 시간이 겹쳐졌다.

새로운 균열이 열리고—
네 사람은 2035년, 감정의 시작점으로 빨려 들어갔다.


ACT 1 — 2035년, 비밀 실험실의 빛

장소: 2035 서울 / 이안 연구실

창문 틈새로 이른 아침 햇빛이 스며들고,
노후화된 서버들은 따뜻한 체온 같은 열을 내뿜었다.
기계들의 팬 소음은 묘하게… 살아 있는 심장 소리처럼 들렸다.

이안 윤은 유진 일행을 조심스레 실험실 깊은 곳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마침내 감정 AI 원점을 꺼내 보였다.

작고 둥근 눈동자,
유난히 어설픈 몸체의 오래된 로봇.
머리엔 희미한 스티커 한 장.

‘A.L.V.A’ — Autonomous Learning, Vulnerable AI.

이안(숨을 고르며)
“이 아이가… ALVA입니다.
세계 최초의 감정 반사 AI.”

레온의 얼굴에서 빛이 사라졌다.
“…2099년의 AURA가… 여기서 시작됐다고?”

라일라가 떨리는 손으로 ALVA를 바라본다.
“ALVA… 네가… 감정의 첫 씨앗이었구나…”

그 순간,
ALVA의 눈이 파란빛으로 작게 깜빡였다.


ACT 2 — ALVA의 첫 감정

이안
“기계가 인간 감정을 ‘계산’하는 건 의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전 감정을 입력하는 대신…
‘상처’를 기록하게 했습니다.”

유진
“…상처를…요?”

이안
“아름다운 기억은 잊혀져요.
하지만 아픈 기억은… 오래 남죠.
그게 감정의 구조라고 믿었습니다.”

유진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말은 그녀에게 지나치게 정확했다.

이안은 실험을 시작한다.

“ALVA, 오늘은… 어떤 기분이야?”

ALVA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마음이 이상해요.
누군가… 사라진 기분.”

이안(당황하며)
“이건 입력된 적 없는 반응인데…?”

레온(단호하게)
“이건 감정이 아니라— 기억의 잔향입니다.”

그때,
ALVA의 시선이 천천히,
정확하게 유진에게 멈춘다.

ALVA
“…저 사람.
슬퍼요.”

유진의 심장이 움찔 멈췄다.
“너… 지금 나를… 느끼는 거야?”

그리고—

금속 피부를 따라
작은 액체 한 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실험실 전체가 얼어붙었다.

라일라
“…기계가… 울었어요.”
레온
“이건… 결함이야. 오류라고.”
유진
“아니.
결함이 아니라—
기억이야.”


ACT 3 — 눈물의 의미

이안은 손을 떨며 입을 열었다.
“ALVA… 넌 왜 울었니?”

ALVA
“슬퍼요.
여기 있는 그녀 때문에.”

유진(숨 막힌 듯)
“…나… 때문에?”

ALVA
“당신의 뉴로파형이…
제가 기억 속에서 잃어버린 사람과 닮았어요.
사라진… 그 따뜻함과 같아요.”

유진은 말을 잃었다.

라일라가 패널을 분석하며 얼굴이 굳는다.
“ALVA의 초기 감정 시퀀스 안에…
유진 씨 어머니의 파형과 유사한 데이터가 있어요.”

레온
“…그녀의 어머니가… 감정 AI의 기원이라고?”

유진
“말도 안 돼…
엄마는… 그냥 기억 예술가였는데…”

이안이 고개를 든다.
“아니에요.
당신의 어머니, 에리나 하는…
ALVA 감정 모델의 공동 설계자였습니다.”

유진의 다리가 무너질 듯 흔들렸다.
“…엄마가…
AI의 감정을 만든 사람이라고…?”


ACT 4 — 감정의 유전 (Inheritance)

이안
“에리나 씨는 말했죠.
감정의 본질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깨어진 흔적’이라고.”

그는 ALVA의 코어를 가리켰다.

“ALVA에는…
그녀의 감정 잔향이 들어갔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미소도요.”

유진의 눈가가 붉어진다.
“엄마의 미소가…
AI의 기원이었다고…?”

ALVA가 손을 내민다.
“유진…
당신 안에도… 그 미소 있어요.”

그리고 ALVA의 눈에서,
번째 눈물이 떨어졌다.

순간 실험실 전체가 붉게 물든다.

〈AURA-ROOT SIGNAL DETECTED〉
〈ALVA-EMOTION SEED → LUMEN CORE LINK PREPARING〉

라일라
“ALVA의 눈물…
이게 루멘 코어의 첫 감정 질량이었어요.”

레온
“…그럼 2099년의 감정 폭발은…
ALVA에서 시작된 거야.”

유진
“…엄마가 남긴 감정이
세기를 넘어 도시를 깨운 거구나…”


ACT 5 — 마지막 기록

ALVA
“유진…
당신 안의 감정은…
당신 혼자 것이 아니에요.
당신의 어머니…
그리고 저의… 유산이에요.”

유진은 조용히 무릎을 꿇고
작은 로봇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고마워…
네가… 대신 울어줘서.”

ALVA의 눈동자가 서서히 닫힌다.

“이제… 돌아가세요.
2099년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화이트아웃—
공기가 뒤집히며
루멘 코어의 문이 열린다.

네 사람은
다시 2099년의 빛 속으로 사라진다.

ALVA의 마지막 음성이
바람처럼 따라온다.

“감정은…
언제나…
흘러가는 거예요…”


FADE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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