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석촌호수 카페에서
오늘 하루는 원래의 궤도에서 살짝 벗어나 있었다. 1교시 수업이 있는 날이었는데 알람을 하나밖에 맞춰놓지 않았고, 그 알람마저 듣지 못했다. 일어나 보니 수업 시작까지는 30분 남아 있었다. 나는 부랴부랴 머리만 감고 손에 잡히는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땅만 보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등에는 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고, 호흡은 가빠졌다. 그렇게 수업 시작 5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나는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반쯤 넋이 나간 채 시간을 보내고 1교시가 끝나 교수님이 쉬는 시간을 주셨다. 나는 황급히 학교 앞 커피숍으로 향했다. 커피 냄새를 맡자마자 정신이 조금 드는 느낌이 들었다. 갓 나온 커피를 한 입 들이켜는 순간 눈이 맑아졌다. 그렇게 카페인의 힘을 빌려 나머지 수업을 잘 들을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난 후 오후 수업까지는 시간이 조금 떴다. 나는 책을 읽으려 도서관을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엔 보지 못했던 만개한 꽃들이 보였다. 팝콘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벚꽃, 눈 부신 햇빛을 보고 있자니 어디든 놀러 가고 싶어졌다. 이런 날씨에 강의실에 박혀 수업을 듣는 것은 범죄라 느껴질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
그렇게 나는 봄이 올 때마다 갔던 잠실의 석촌호수에 가기로 했다. 석촌호수에 가는 방법은 다양했다. 나는 그중 오래 걷고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비교적 효율적이지 않은 방법을 택했다. 걸으며 자연을 즐기고 버스 안에서 자연의 풍경을 눈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천천히 나만의 방법으로 걷기 시작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던 길에서 한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고 계셨다. 그 미소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기분이 밝아졌다. 나 역시 그 미소에 답하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입꼬리를 올리고, 말을 건네기 위해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가까이서 본 할머니의 표정은, 내가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할머니는 웃고 계신 것이 아니라, 강한 햇빛에 눈이 부셔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계셨다. 나는 순간 멈칫했다. 마치 잘못된 장면을 본 것처럼, 머릿속이 잠깐 멈춘 느낌이었다. 조금 전까지 분명히 존재하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어색하게 시선을 거두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내가 본 것은 할머니의 미소가 아니라 나의 기분이었다. 내 기분에 따라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본다. 내가 슬프면 세상도 슬퍼 보이고, 내가 행복하면 세상도 행복해 보인다. 바뀌는 건 세상이 아니라 “나”이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내가 불행할 때는 오히려 다른 사람의 행복이 뚜렷하게 보일 때도 있다. 이를 잘 표현한 영화 올드보이의 한 대사가 있다.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이 말은 개인의 불행에는 관심 없는 세상에게 일침을 놓는 말로 들린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이다. 세상은 그대로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일 뿐이다.